마이클 지아치노가 만든 <닥터 스트레인지>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역대 마블 영화의 음악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기존의 음악이 적절하게 사용된 순간이 있으니, 바로 천재 외과의사 스티븐(베네딕트 컴버배치)이 음악을 들으면서 수술을 진행하는 신이다. 스티븐은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Shining Star' 다음으로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이 나올 때, 이 곡이 언제 발표됐는지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한다. 이처럼 마블 영화에는 기존 명곡들을 배치하는 재주가 돋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그 리스트들을 소개한다.


<아이언맨>

Black Sabbath

"Iron Man"

"진실을 말하자면... 내가 아이언맨입니다." 기자회견에서 준비된 멘트를 포기하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아이언맨이라고 고백하자마자, 터져 나오는 하드록 사운드. 아이언맨 슈트만큼이나 육중한 소리가 인상적인 블랙 사바스의 명곡 'Iron Man'이다. 마치 이 영화가 '아이언맨'인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듯, 엔딩 크레딧이 오지 오스본의 보컬이 없는 연주곡 버전의 'Iron Man'이 지나간다. 영화 마지막에 같은 이름의 노래가 흐르기 때문에 아이언맨의 이름을 이 노래에서 따왔을까 의문이 들지만, 아이언맨은 블랙 사바스의 노래가 발표되기 7년 전인 1963년 처음 등장했다. 한편 토니 스타크는 <어벤져스>(2012)에서 블랙 사바스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며 하드록 마니아의 면모를 드러냈다.

'Iron Man'이 수록된 블랙 사바스의 앨범 <Paranoid>(1970)


<아이언맨 2>

<어벤져스>

AC/DC

"Shoot to Thrill"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하드록 밴드 AC/DC는 토니 스타크가 가장 사랑하는 밴드다. 첫 번째 편의 오프닝, 아프가니스탄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폭격을 맞을 때 나오던 노래가 바로 AC/DC의 최대 히트곡 'Back in Black'이었다. 2편에서는 아예 사운드트랙 전체를 1975년부터 2008년까지 아우르는 AC/DC의 명곡들로 채웠다. 그들이 발표한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토니 스타크가 가장 사랑하는 트랙은 'Shoot To Thrill'인 것 같다. <아이언맨2>(2010)에서는 스타크 엑스포 현장에, <어벤져스>에서는 수세에 몰린 어벤져스를 돕기 위해 저 멀리서부터 'Shoot To Thrill'을 빵빵 터트리면서 등장하는 걸 보면 말이다.

'Shoot to Thrill'이 수록된 AC/DC의 앨범 <Back In Black>(1980)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Jim Croce

"Time in a Bottle"

새로운 캐릭터 퀵실버(에반 피터스)가 자신의 장기인 속도를 뽐내며 주방을 초토화시키는 신은 단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대목이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활약상을 퀵실버의 속도에 맞춰 보여주는 이 장면은, 그가 헤드폰으로 듣고 있는 짐 크로치의 'Time in a Bottle'과 함께 펼쳐지며 진풍경을 이룬다. 느리고 장중한 노래 아래서 흐르는 속도의 아이러니로 유쾌함을 발산하는 신의 묘미가 더 커진다.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에서도 이와 비슷한 신이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유리드믹스의 히트곡 'Sweet Dream'이 사용됐다.

'Time in a Bottle'이 수록된 짐 크로치의 앨범 <You Don't Mess Around with Jim>(1972)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Marvin Gaye

"Trouble Man"

영화 초반, 스티브/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조깅 중 만난 샘/팔콘(안소니 미키)에게 지금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받아 적는다. 이 리스트는 국가별로 조금씩 다른데, 여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마빈 게이가 만든 <트러블 맨>의 사운드트랙이다. (미국은 너바나, 영국은 비틀스, 남미는 샤키라, 프랑스는 다프트 펑크가 적혀 있다고 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한 스티브와 버키/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의 사투가 끝나고, 스티브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부터 약 1분간 (샘이 틀어 놓은) <트러블 맨> 사운드트랙의 수록곡 'Trouble Man'이 BGM으로 깔리면서 에필로그로 향한다.

마빈 게이가 만든 사운드트랙 <Trouble Man>(1972)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Blue Suede

"Hooked on a Feeling"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의 OST는, 타일러 베이츠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와 스타로드/피터(크리스 프랫)와 지구를 잇는 유일한 물건인 워크맨 속 70년대 음악 믹스테이프인 <Awesome Mix Vol. 1>으로 나뉜다. 이 믹스테이프에 수록된 트랙들은 적재적소에 사용되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다채로운 분위기를 한껏 올려준다.

12개의 트랙들 가운데 가장 친숙한 노래는 단연 'Hooked on a Feeling'이 아닐까? "우가자가우가우가 우가자가우가우가~" 하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유쾌한 노래는, 영화 개봉 전부터 프로모션 영상에 사용됐다. 본편 속에서는 감옥에 온 스타로드가 관리자가 자기 워크맨을 듣는 걸 발견하곤 노래 제목, 밴드 이름, 발표년도를 읊으면서 "내 노래란 말야!" 하고 발악하다가 고문 당하는 신에서 등장한다. 최근 공개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2>(2017) 티저 예고편에서도 이 곡이 흐른다. 에디터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맨 처음 어린 피터가 엄마와 작별하기 전 병원에서 혼자 듣고 있는 10cc의 'I'm Not in Love'야말로 <Awesome Mix Vol. 1>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Hooked on a Feeling'이 수록된 블루 스웨이드의 <Hooked on a Feeling>(1974)


<데드풀>

Wham!

"Careless Whisper"

암을 선고 받은 웨이드/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은 연인 바네사(모레나 바카린)에게 왬의 앨범 <Make It Big>을 보여주고는, "다음 생에 자기를 찾아서 창밖에서 왬의 노래를 크게 틀게"라고 말하며 동거하는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집을 나간 후 생체실험으로 엉망이 된 외모 때문에 바네사를 만나지 못한다. 악당들을 물리치고 나서야 웨이드와 바네사는 재회한다. 마스크를 벗은 채 키스를 나누는 사이, 웨이드는 약속한 것처럼 왬의 노래 'Careless Whisper'를 휴대폰으로 재생한다. 역사상 가장 섹시한 사랑 노래를 배경으로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과 함께 <데드풀>은 막을 내린다.

'Careless Whisper'가 수록된 왬의 앨범 <Make It Big>(1984)


<앤트맨>

The Cure

"Plainsong"

작아서 안 보이겠지만 눈을 크게 떠보면 앤트맨과 옐로우자켓 모두 저 이미지 안에 있다.

앤트맨(폴 러드)과 옐로우자켓(코리 스톨)이 가방 안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사이, 앤트맨이 아이폰의 홈버튼을 밟고 뛰어오르자 시리가 활성화된다. 그리고 옐로우자켓이 "널 산산조각 내버리겠어!(I am going to disintegrate you!)"라고 외치자, 아이폰에서 큐어의 앨범 <Disintegration> 속 노래 'Plainsong'이 재생된다. 우주의 그것처럼 화려한 사운드로 시작하는 'Plainsong'이 흐르는 가운데 둘의 싸움은 계속 이어지다가, 가방이 풀장에 빠지면서 음악은 딱 멈춘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앤트맨>(2015)의 이 시퀀스는 그야말로 위트로 똘똘 뭉친 음악 활용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큐어의 앨범 <Disintegration>(1989)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