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저스티스 리그> 감독판, 이른바 ‘스나이더 컷’이 HBO Max를 통해 내년 공개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잭 스나이더가 가정사로 감독직에서 하차한 이후, 조스 웨던이 마무리한 2017년작 <저스티스 리그>에 극도로 실망했던 팬들이 꾸준히 #ReleaseTheSnyderCut 캠페인을 펼쳐 얻어낸 값진 결과다. 물론 스나이더 컷이 무조건 기존의 극장판보다 나을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확장판으로 재평가받은 작품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전보다 개선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나온 슈퍼 히어로 영화 중, 확장판 덕에 부정적인 평가를 뒤집거나 완성도에 방점을 찍은 작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데어데블 감독판 (Director’s Cut)

102분 → 134분

2003년작 <데어데블>은 벤 애플렉이 직접 “출연하지 말았어야 할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차게 욕을 먹은 영화다(개인적으론 재미있게 봤다). 평단과 관객들은 구멍투성이인 개연성과 원작 파괴에 가까운 캐릭터 설정에 혹평을 가했고, 결과적으로 간신히 본전을 회수하며 쓸쓸하게 박스오피스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듬해 ‘감독판’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조금 달라졌다. PG-13 등급의 본편과 달리 R등급인 감독판은 메인 빌런 킹핀을 몰락시킨 중요한 열쇠였던 재판 장면 등을 추가해 러닝타임이 30분이 길어졌고, 이로 인해 부족했던 서사가 조금이나마 채워졌다며 재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은 이후 <엘렉트라>와 <고스트 라이더>라는 희대의 영화들을 각각 제작, 연출했다.


2. 왓치맨 감독판 / 최종판 (Director’s Cut / Ultimate Cut)

161분 → 190분, 215분

원작은 타임지 선정 ‘최고의 영문 소설 100선’에 오른 그래픽 노블/코믹스일지 몰라도, 잭 스나이더 감독의 <왓치맨>은 원작과 다르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다. 원작에 충실하려 노력한 부분은 모두가 인정했지만, 러닝타임이 지나치게 길고, 분위기가 극도로 우울하고 어두우며, 원작과 다른 결말에 아쉬움을 표한 이들이 많았다. 잭 스나이더 특유의 액션 연출이 <왓치맨>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190분짜리 ‘감독판’과 215분짜리 ‘최종판’이 공개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극장판에서 편집된 1대 나이트 아울의 비극적인 죽음과 단편 애니메이션 <검은 수송선> 등이 추가된 두 확장판은 본편보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자아성찰적이라며 호평을 받았다.


3. 더 울버린 확장판 (Extended Cut)

126분 → 138분

배경이 일본인 탓에 국내에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이들도 많고 <엑스맨> 시리즈 중 가장 낮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 작품이지만, 사실 <더 울버린>은 나름 준수한 평가를 받은 영화다. 당시에는 울버린의 ‘배드애스(badass)’스러움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기도 했다. 무려 예순다섯 부분이 수정된 확장판에서는 울버린 특유의 거친 매력이 도드라진다. ‘f 단어’ 등의 욕설은 물론이고 선혈 낭자한 액션 시퀀스도 다수 포함됐으며, 많은 팬들이 그토록 바랐던 오리지널 유니폼, 즉 ‘노란 쫄쫄이’가 등장하는 제2의 결말도 추가됐다. 확장판이 극장판의 단점들을 보완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울버린의 매력이 돋보인다고 호평하는 이들이 많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는 훗날 <로건>이라는 명작을 탄생시키는데, <데어데블> 마크 스티븐 존슨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4. 스파이더맨 3 편집판 (Editor’s Cut)

139분 → 137분

엄밀히 따지면 ‘감독판’은 아니지만, <스파이더맨 3> 편집본은 아마도 샘 레이미가 원했던 완성본에 가장 근접한 버전일지도 모른다. 극장 상영 10년이 지나 공개된 편집본은 극장판보다 러닝타임이 짧다. 보통 ‘확장판’, ‘○○판’이 극장판보다 분량이 긴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크리스토퍼 영의 음악뿐 아니라 몇몇 부분이 수정된 편집본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세 가지가 있다. 샌드맨과 딸이 함께 있는 모습을 추가하면서 캐릭터 서사를 부여했고, 피터 파커가 심비오트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추가됐으며, 무엇보다 해리가 집사의 조언 때문이 아닌 스스로 피터를 돕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보다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올블랙으로 깔맞춤한 피터의 흥겨운 춤사위는 편집본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5.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감독판 (Ultimate Edition)

151분 → 182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재미있게 본 관객도 분명 있을 테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희대의 명대사 “마사를 구해!”와 원더 우먼의 멋진 등장 시퀀스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작품일 것이다. 서사는 산만했고, 떡밥은 회수하지 못했으며, 인물들의 행동은 당위성이 부족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슈퍼맨의 분량도 적었다. 여러 이유로 혹평을 면치 못했던 이 작품은 “극장판보다 100배는 낫다”는 평가를 받은 확장판을 통해 팬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었다. 상영 등급이 R등급으로 바뀌면서 액션이 늘어났고, 렉스 루터가 슈퍼맨을 모함한 방법이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사건, 로이스 레인의 비중과 역할이 추가되면서 극장판을 볼 당시의 많은 의문들이 해결됐다고.


6.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확장판 (Rogue Cut)

131분 → 148분

지금 소개할 작품들은 앞서 소개한 다섯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후자가 확장판을 통해 부족함을 채웠다면, 이들은 ‘완벽에 완벽을 더한 느낌’이랄까?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시간 여행 개념을 통해 <엑스맨> 오리진 시리즈와 리부트 시리즈를 한데 모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동안 <엑스맨>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작품 간의 설정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대교체를 해내고, 극중 악역인 센티넬의 압도적인 강함과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잘 표현해 호평이 쏟아졌다. 또한 극장판에서 마지막 한 장면을 제외하고 편집당해 아쉬움을 자아냈던 로그 역의 안나 파킨 분량도 살아났다. 17분이 추가된 확장판에는 팬들이 원하던 로그의 서사와 암울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 등이 더해졌다고.


7. 슈퍼맨 2 감독판 (Richard Donner Cut)

127분 → 115분

리처드 도너 감독은 1978년 <슈퍼맨>을 촬영할 당시 속편도 동시에 준비했다. 그러나 제작사와 마찰이 잦아지면서 결국 하차를 결정, 리처드 레스터가 도너의 자리를 대신했다. 레스터는 약 70% 완성된 도너의 <슈퍼맨 2>를 마무리하는 대신, 재촬영을 통해 영화를 자신의 스타일로 완성시켰다(<저스티스 리그>가 머리를 스쳐가는 대목이다). 레스터의 <슈퍼맨 2>는 전작 못지않은 수작으로 꼽히지만, 리처드 도너의 완성본을 원하는 팬들은 여전히 있었다. 그리고 2006년, 팬들이 그토록 원하던 <슈퍼맨 2>의 리처드 도너 감독판이 공개됐다. 도너가 보유하고 있는 옛 촬영분과 레스터의 작품을 조합한 결과물이라고. 코믹한 장면들이 두드러졌던 레스터의 <슈퍼맨 2>와 달리 영화 분위기는 진중해졌으며, 2004년 세상을 떠난 ‘영원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를 위한 헌사가 담겨있어 팬들에게 색다른 매력과 진한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에그테일 에디터 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