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Naming)의 시대다. 기업체의 상품이건 문화 콘텐츠건, 분야를 불문하고 '이름을 짓는다'는 건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영화에 있어서도 제목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영화의 얼굴이자 정체성일 뿐만 아니라 영화를 팔아야 하는 마케팅 요소로도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네이밍은 '제목 짓기'가 아니라 '마음 끌기'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제목은 여러 사람의 관심과 호감을 사야 하는데, 영화 제목을 짓는 전략 중 하나로는 부제를 다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누군가는 영화의 부제를 사족으로 칭하며 평가 절하하기도 하지만 효과적인 부제목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도 있다. '부제의 세계', 부제목이 잘 어울렸던 국내영화 5편과 제목에 얽힌 비하인드를 소개한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감독 변성현│출연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120분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재호(설경구)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는 교도소에서 만나 서로에게 끌리고 끈끈한 의리를 다져간다. 출소 후, 함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던 중, 두 사람의 숨겨왔던 야망이 조금씩 드러나고, 서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믿는 놈을 조심하라! 믿음의 순간 배신은 이미 시작되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공식 줄거리
: 나쁜 놈들의 세상
'불한당'을 사전에 검색해볼까. '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들의 무리'라고 한다. '불한당'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 자체로도 '나쁜 놈들'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의 감독인 변성현 감독 역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갈 당시 '나쁜 놈들'을 지칭할 수 있는 단어를 찾다 보니 <불한당>이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불한당>이라는 짧고 굵은 제목을 제쳐두고 무려 7글자나 추가해 영화의 제목을 지은 걸까. 사실 마케팅적으로만 본다면 짧은 제목이 흥행 승률이 더 높다고도 하는데 말이다.
아쉽게도 <불한당> 측이 이에 대해 정확히 밝힌 바는 없다. 그럼에도 개봉 당시 몇몇 인터뷰에서 찾아보자면 변 감독은 "불한당이 좌지우지하는 세계, 불한당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 이게 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며 무리라는 뜻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와 세상'에 대한 의미가 담겨있다고도 밝혔다. 결국 <불한당>의 부제인 '나쁜 놈들의 세상'은 '나쁜 놈들을 만들어내는 세상'에 대한 의미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불한당'에 대한 명확한 뜻을 알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불한당>은 흥행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지만, 장르적인 측면에선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영화다. 설경구는 물론 배우로서 임시완의 호연, 심심하지 않게 엮어간 이야기 전개만으로도 <불한당>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미씽: 사라진 여자>
감독 이언희│출연 엄지원 공효진│100분
천사 같던 그녀의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거짓보다 더 무서운 진실 그녀를 찾아야만 한다. 이혼 후 육아와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워킹맘 지선은 헌신적으로 딸을 돌봐주는 보모 한매가 있어 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지선은 보모 한매와 딸 다은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지선은 뒤늦게 경찰과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양육권 소송 중 일으킨 자작극으로 의심한다. 결국 홀로 한매의 흔적을 추적하던 지선은 집 앞을 서성이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증언들로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녀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이름, 나이, 출신 등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는데…
<미씽: 사라진 여자> 공식 줄거리
: 사라진 여자
<미씽: 사라진 여자>의 시나리오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원제는 처음부터 <미씽: 사라진 아이>였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이야기 전개'에 비중을 둔 제목이다. 하지만 영화 제작 도중 이언희 감독은 "우리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목을 변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씽: 사라진 여자>로 새롭게 태어난 영화는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워킹맘 지선(엄지원)과 보모 한매(공효진)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문제와 더불어 결국 사라진 건 '아이'가 아닌 '여성'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모성이라는 소재를 풀어 간 <미씽: 사라진 여자>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장르 영화로도 평가받는다. 지선과 한매라는 두 여성에게 숨겨진 진실을 세밀하게 그려낸 엄지원과 공효진의 연기적 성취가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감독 허진호│출연 최민식 한석규│132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 20년간 꿈을 함께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두 사람이었지만 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세종은 장영실을 문책하며 하루아침에 궁 밖으로 내치고 그 이후 장영실은 자취를 감추는데...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장영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밝혀진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공식 줄거리
: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이 연기하는 장영실, 한석규가 연기하는 세종대왕,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두 배우. 더 이상 어떤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충분한 작품,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 이 영화의 제목이 만약 <천문>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봤다. 제목이 두 글자인 영화들이 흥행에도 유리하다는데 말이다. 여러 차례 곱씹어 봐도 '천문'이라는 두 글자로는 허진호 감독이 펼치고 싶었던 장영실과 세종의 감정적 관계가 그려지지 않는다. 허진호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을 제작자와 함께 직접 지었다. 세종과 장영실이 근정전 앞에서 함께 누워 별을 보는 장면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종과 장영실이 근정전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무언가 물어보지 않았을까 해서" 탄생한 제목이라고 한다.
'군신 로맨스'라고도 불린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20년 동안 신분을 뛰어넘고 장영실과 세종이 이룬 우정과 업적을 허진호만의 스타일로 그려냈다. 로맨스 장인답게 둘의 관계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탄생시켰다. 흥행만 놓고 보자면 아쉬운 스코어를 기록했고 영화가 가진 오락적인 재미에 대해선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최민식과 한석규라는 치트키를 영리하게 활용한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딘지 모를 벅참을 선사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진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나쁜 녀석들: 더 무비>
감독 손용호│출연 마동석 김상중 김아중 │114분
죄수들이 탈출했다! 교도소 호송차량이 전복되고 최악의 범죄자들이 탈주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경찰은 수감 중인 범죄자가 흉악범을 잡는 극비 프로젝트인 ‘특수범죄수사과’를 다시 소집한다. 미친개... 다시 풉시다! ‘오구탁’(김상중) 반장은 과거 함께 활약했던 전설의 주먹 ‘박웅철’(마동석)을 찾아가고, 감성 사기꾼 ‘곽노순’(김아중)과 전직 형사 ‘고유성’(장기용)을 영입해 새로운 팀을 구성한다.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해 더욱 강력하고 치밀하고 독해진 나쁜 녀석들. 이 사건을 파헤칠수록 배후에 거대한 범죄조직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그들은 더 나쁜 놈들을 소탕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나쁜 녀석들의 법 없는 검거작전!놈들처럼 생각하고 놈들처럼 행동할 그들이 온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 공식 줄거리
: 더 무비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OCN에서 방영한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후속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작년 추석 극장가를 떠올려 보자. <타짜: 원 아이드 잭>, <힘을 내요, 미스터리> 그리고 <나쁜 녀석들: 더 무비>. 3파전의 승리자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였다. 4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나쁘지 않은 흥행 성과를 거둔 <나쁜 녀석들>이 동명의 드라마 제목이 아닌 부제를 붙여서 개봉한 이유는 명확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동명의 영화가 이미 존재한다.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의 <나쁜 녀석들>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같은 제목을 고수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제목을 선택해 드라마가 가진 정체성을 포기할 수도 없었을 터. 그렇게 붙여진 '더 무비'라는 부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
감독 윤종빈│출연 최민식, 하정우, 조진웅│133분
2012년 2월,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비리 세관 공무원 최익현, 보스 최형배를 만나다! 1982년 부산.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순찰 중 적발한 히로뽕을 일본으로 밀수출, 마지막으로 한 탕 하기 위해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머리 쓰는 나쁜 놈과 주먹 쓰는 나쁜 놈, 부산을 접수하다! 익현은 탁월한 임기응변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형배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주먹 넘버원 형배와 로비의 신 익현은 함께 힘을 합쳐 부산을 접수하기 시작하고, 두 남자 앞에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식 줄거리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세상에 빛을 보기 전 제목을 두 번이나 변경했다. <무법자>, <무명대부>를 거쳐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달게 된 작품. 윤종빈 감독에 따르면 "시나리오 집필 당시 <무법자>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감우성 주연의 영화 <무법자>로 인해 포기해야 했고, 두 번째로 붙인 제목인 <무명대부>는 제작사와 투자사의 마음에 들지 않아 부득이하게 제목을 변경해야 했다고. 결국 투자 배급사인 쇼박스에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제안했고, '나쁜놈들 전성시대'라는 부제까지 붙여 지금의 제목이 태어난 것이다. 이 영화가 무려 14글자나 되는 긴 제목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 데는 마케팅적인 이유가 컸다.
<범죄와의 전쟁>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던 느낌이 '나쁜놈들 전성시대'라는 부제가 붙으니 별다른 홍보 문구가 필요 없어 보였다고 한다. 좁은 골목 거리를 가득 채우며 건들거리게 걷는 하정우, 최민식 무리의 분위기와 나쁜놈들 '전.성.시.대'라는 텍스트가 딱 맞아떨어진 것. 벌써 8년 전, 다시 보니 포스터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최민식과 하정우를 필두로 470만 명이라는 관객 수를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여러 측면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한국 영화 중 하나다.
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유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