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드 를르슈 감독의 인생작이라 할 <남과 여>의 최종장인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이 개봉했다.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제작된 이 삼부작은 배우들이나 감독 자신에게도 단순한 치정극을 떠나 가히 사랑과 인생에 대한 대서사시라 부를 만하다. 29살의 젊은 청년 감독이었던 끌로드 를르슈는 이 다섯 번째 작품으로 그간의 혹평과 실패에서 벗어나 스티브 소더버그(<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수상했을 때 26살이었다!)가 나타나기 전까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최연소 감독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칸뿐만 아니라 오스카를 비롯해 세계 각국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고, 흥행에도 성공해 누벨바그가 다져놓은 6∼7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 또 다른 전성기를 이끌었다.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

비록 이후 <남과 여>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내놓진 못했지만, 를르슈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자는 제의를 뿌리치고 프랑스로 돌아와 <리브 포 라이프>, <비열한 남자>,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여정>, <레 미제라블> 등 다양한 장르의 상업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으면서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과 멜로적인 정서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85세를 바라보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일선에서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는 그는 20년 뒤에 제작된 <남과 여 20년 후>에 이어 다시 33년 만에 속편을 내놓으며 진정한 "남과 여"를 매조지었다. 이를 위해 은퇴했던 장 루이 트랭티낭과 역시 고령의 아누크 에메를 다시 모신 건 물론, 전작들의 아들과 딸로 나왔던 앙투안 사이어와 수어드 아미두도 그대로 캐스팅해 연결성을 이었다.


<남과 여>

누구나 다 아는 그 음악, 남과 여

물론 <남과 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 끌로드 를르슈와는 30편이 넘는 작품을 함께 해온 영화음악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한번 들으면 결단코 잊을 수 없는 마성의 멜로디를 선사하는 이 곡은 (국내에선 과거 코미디 프로에서 사용돼 더 유명해졌지만) <남과 여>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불멸의 러브 테마로, 당시 유럽영화를 따로 홍보하지 않았던 미국에서도 알아서 널리 퍼질 만큼 센세이션한 인기를 누렸다. 가수이자 배우인 니콜 크로이실과 피에르 바루가 보컬로 참여해 "라/라/라 라바라바랍 라바라바랍" 속삭이는 두 남녀의 스캣은 사랑의 설렘과 흥분, 긴장과 엇갈림 등을 기가 막히게 담아낸다. 샹송으로 대표되는 프렌치 팝과 재즈, 그 시절 가장 유행하던 최첨단의 보사노바까지 아우른 프란시스 레이의 감성적인 사운드는 그야말로 사랑의 음악이 어떠한 건지 손쉽게 증명해 보였다.

<남과 여 20년 후>

그 뒤 프란시스 레이가 로맨스나 성애물에서 중용된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러브 스토리> 이후 <매들리>, <개인교수>와 <끌로드 부인> 시리즈, <엠마뉴엘 2>, <빌리티스> 등 작품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주옥같은 선율들을 뽑아내며 사랑의 메신저급으로 활약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20년 뒤에 나온 속편 <남과 여 20년 후>에서 별 고민 없이 전작의 곡들을 마구 재활용(?)한 것도 이런 범우주적 인지도를 발휘하고 있는 테마의 힘 덕분일 것이다. 리샤르 베리와 릴리앙 데이비스가 보컬을 맡고, 프란시스 레이와 오랜 호흡을 맞춰온 편곡가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티앙 고베르의 재즈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센티멘털한 스코어는 중후하게 농익은 묵직함을 선사하는데, 80년대 유행하던 신디 영향에서 빗겨나 지금 들어도 낡지 않고 고루하지 않은 세련된 감성을 전달한다.

프란시스 레이

멜로물의 지존, 프랑스의 거장 프란시스 레이

1932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프란시스 레이는 다른 여타 뮤지션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악기(아코디언)을 배우며 음악에 심취하고, 지역 악단에서 연주하며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니스를 벗어나 마르세유로 옮긴 그는 재즈와 50년대 프랑스의 인기가수 클로드 고티를 만나며 본격적인 개안을 하게 되는데, 더 큰 무대인 파리로 터전을 옮겨 영화음악가 미셸 마뉴, 전설적인 샹송의 여제 에디트 피아프, 평생지기인 피에르 바루 등과 만나며 반주자로 또 작곡가로 서서히 지명도를 쌓았다. 그러나 인생 역전을 가져다준 건 친구 바루가 소개시켜준 끌로드 를르슈 감독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예산과 일정이 빠듯한 저예산 멜로물을 위해 작곡가를 구하고 있었던 를르슈에게 이국적이고 모던한 색채의 사운드를 선사해 국제적인 화제를 불러오게 된다.

프란시스 레이

나름 몇몇 히트곡도 있었지만 이전까지 경력이 일천했던 프란시스 레이는 이 데뷔작으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이름이 각인되며 순식간에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세계적인 작곡가로 급상승했다. 를르슈와 바로 이어 작업한 "파리의 정사"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리브 포 라이브>를 비롯해, 스타일리쉬한 프랑스 동계올림픽 다큐 <프랑스에서의 13일>과 영국에서 제작된 <비우>, 할리우드에 진출한 <하우스 오브 카드> 등 60년대 말 빛나는 활동을 기록했고, 그 정점을 찍은 건 지미 웹 대신 음악을 맡게 된 <러브 스토리>였다. 이 작품으로 모리스 자르 이후 두 번째로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음악상을 거머쥔 프랑스 영화음악가가 된 그는 70년대 내내 한해에 3편 이상씩 작품을 소화하며 미셸 르그랑과 조르쥬 들르뤼, 그리고 앞서 언급한 모리스 자르 등과 함께 프랑스 작곡가 전성시대를 누렸다.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찬란한, 남과 여

감독 자신도 패착으로 여기는 2편 <남과 여 20년 후>을 슬쩍 뭉개버리고, 진정한 의미의 후속편임을 내세운 이번 영화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에서도 예의 그 유명한 프란시스 레이의 테마는 여전하다. 반세기가 넘게 흘렀어도 낭만적이고, 관능적이며, 시적이면서 아름답다. 여기에 노년의 삶이 반추해내는 상실과 인연의 의미들마저 끼어들며 이들의 전설적인 사랑의 노래는 삶의 노래로 치환된다. 고혹적인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는 호소력 깊은 성찰의 목소리는 53년 전 원래 주제가를 불렀던 (아쉽게도 피에르 바루는 빠졌지만) 니콜 크로이실이다. 이제는 호흡도 짧고, 탄력도 줄고, 음색도 탁해졌지만, 관록으로 커버하는 아우라와 여유는 경이롭다. 그녀의 새로운 파트너로 낙점된 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프란시스 레이와 공동 작업한 프랑스의 유명 락스타 칼로제로다.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

이태리 피가 섞였고, 대중음악을 하다 영화음악을 시도한 부분들이 묘하게 프란시스 레이와 겹쳐지기도 한 칼로제로는 탁월한 멜로디 제조기였던 대가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그 못지않은 감성과 선율을 뽑아냈다. 프랑스 인기 뮤지컬 <십계>에서도 3곡의 노래를 작곡한 바 있는 경험도 도움이 됐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4개의 테마가(그것도 과거에 작곡된 “un homme et une femme”나 “Plus fort que nous”같은 곡까지 포함) 악기 편성만 조금씩 달리해 반복돼 쓰이는 만큼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작품들을 인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를르슈 영상과 함께 지켜보면 자연스레 이 중첩된 효과가 캐릭터의 진실성과 세월의 더께를 극대화시켜주며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진부하고 보편적인 사랑 타령에서 벗어나 이렇게 영화 자체가 영생을 얻은 건 바로 프란시스 레이의 힘이다.

프란시스 레이는 <남과 여>로 영화음악을 시작해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으로 영화음악을 마무리 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시작과 맺음은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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