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올 추석 최고 이슈는 나훈아 콘서트가 아닌가 합니다. 이순을 넘어 칠순에 접어 든 나이임에도 그가 무대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대체 불가였으니, 가히 가황(歌皇)이라 칭함에 손색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도 과거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 그닥 새롭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오랫동안 인기를 누린 터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 가능하니 말입니다. 1971년 <풋사랑>을 시작으로 <인생유학생> <고향을 묻지마라> <미움이 변하여> <우정> <쥐띠부인> <나 혼자 못산다> <어머니의 영광>, 당시 라이벌이었던 남진과 함께 출연한 <친구> <동반자> <어머님 생전에>, 그리고 1983년에 출연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그리고 <3일낮 3일밤>까지 그의 출연작이 13편이나 된다는 것은 좀 의외입니다. 당시에는 가수가 영화에 출연하는 자체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고 이렇게 다작을 한 경우도 정말 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푸른 언덕>

영화에 출연한 최초의 가수는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른 현인으로 1949년에 개봉된 <푸른 언덕>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합니다. 이 영화의 신문 카피가 ‘가요계의 왕자 드듸여 스크링에’ 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 그의 인기를 그대로 가지고 가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과거를 묻지 마세요’ ‘아리조나 카우보이’를 부른 나애심 가수가 1954년 <여군>과 <백치 아다다>등에 출연하는데 꽤나 흥행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분은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이기도 하지요. 윤복희는 시작은 가수가 아니라 아역배우였는데 첫 영화가 1959년작 <곰>이었습니다. 가수 나미도 아역배우로 시작하는데 1967년 가수 이미자를 영화화 한 <엘리지의 여왕>에서 이미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나훈아, 남진을 시작으로 1974년 <속 이별>이라는 영화에 패티김이 출연합니다. 혜은이도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첫 영화는 자신의 히트 곡 ‘당신만을 사랑해’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영화로 흥행성적도 꽤 좋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제 3한강교> <멋대로 해라>에 출연하지요. 전영록도 이때 활동을 시작하는데 시작은 영화배우였습니다. 당시 유행한 청춘영화 <말해버릴까> <소녀의 기도> <제 7교실> <짝> <푸른 교실>등에 출연합니다.

<고래사냥>

1980년대 들어서면서 영화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듭니다. 이때 한국영화의 저질 문제가 불거지면서 흥행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를 타파해보려 당시 인기 가수들을 마구 섭외하게 되는데, 그런 이유로 가수들의 영화출연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가왕(歌王) 조용필을 시작으로 말입니다. 1981년 <그 사랑 한이 되어>에 조용필이 출연합니다. 이 영화는 그의 첫 영화이자 마지막영화가 되어 버립니다. 같은 해 ‘슬픈 계절에 만나요’ ‘잊지는 말아야지’를 부른 백영규도 같은 제목의 <슬픈 계절에 만나요>에 출연합니다. 1982년에는 인순이가 출연한 <흑녀> 그리고 이은하가 출연한 <날마다 허물벗는 꽃뱀>이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1983년에는 당시 그룹사운드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송골매(배철수, 구창모 등) 출신들이 대거 출연한 <대학들개>라는 영화가 나오더니 1989년에는 88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타며 혜성같이 등장한 이상은의 인기를 업고 초스피드로 제작된 <담다디>까지 거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가수의 인기를 등에 업는 식이라 영화의 저질문제는 오히려 더 추락하고 말지요. 그런 중에도 의외의 영화가 한편 나오게 되는데, 역시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김수철이 출연한 <고래사냥>(1984년)이 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당시 한국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서울에서만 40만, 지금으로 하면 전국 800만 정도의 흥행세라 할 수 있습니다.

<정글스토리>

90년대 들어서 가수들을 캐스팅함에 있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1991년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에 ‘보라빛 향기’ ‘흩어진 나날들‘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강수지가 출연합니다. 인기도 인기였지만 강수지의 청순한 이미지가 영화에 필요했던 것이죠. 1992년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에는 가수 이승철이 출연하는데 당시에는 의외의 캐스팅이었습니다. 록커의 이야기를 다룬 김홍준 감독의 <정글스토리>에는 윤도현과 김창완이 출연하지요. 김창완은 이 영화를 시작으로 <행복한 장의사> <하루> <내 사랑 싸가지>등에 출연하면서 연기 생활도 병행하게 됩니다. 1996년에 개봉된 <꽃잎>이라는 영화에는 이정현이 출연합니다. 이후 가수로 전향한 후 활동하다가 최근에 다시 영화로 복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군함도> <반도> 등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는 당시 인기를 끈 ‘젝스키스’ 멤버가 전부 출연한 <세븐틴>이라는 영화가 개봉되는데, 아이돌 가수가 출연한 첫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그들의 인기에 비해 흥행은 초라했습니다. 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가수들의 영화 출연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연기력이었죠.

<발레교습소>

2000년으로 접어들면서 본격 멀티 엔터테이너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 배경에는 대형기획사들의 등장과 엔터테인먼트 발전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은 영화나 TV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임창정, 엄정화를 시작으로 본격화 되는데 임창정과 엄정화는 시작은 영화였습니다. 임창정은 1990년 <남부군> 단역으로 엄정화는 MBC 합창단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 <결혼이야기> 단역으로 데뷔합니다. 이어 임창정은 <비트>로 엄정화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에 가야 한다>로 본격 활동을 시작합니다. 2003년 <오! 해피데이>에 출연한 장나라, 드라마는 괜찮았는데 영화에서는 이렇다 할 흥행이 이어지지 않고 있는 가수 비. <B형 남자친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스크린 도전을 시작한 정려원, 2004년 <발레교습소>를 시작으로 <범죄도시> <말모이> 등 이제는 개성적 연기로 인정받고 있는 윤계상, 2004년 <몽정기2>를 시작으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전혜빈까지 많은 가수들이 만능 멀티 엔터테이너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건축학개론>

2010년 들어서서는 연기활동과 가수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이 당연한 듯 흔한 일이 되었고 그 만큼 다방면으로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가수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거의 대부분은 아이돌 출신이고요. <변호인>으로 영화를 시작한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 <카트>로 시작한 ‘엑소’ 도경수, <건축학개론>으로 시작한 ‘미스에이’ 수지, <포화 속으로>로 시작한 ‘빅뱅‘ 최승현, <뜨거운 것이 좋아>로 시작한 ’원더걸스‘ 안소희, <강남 1970>으로 시작한 ’AOA‘ 설현, <고사 두 번째 이야기 : 교생실습>의 ‘슈가’ 황정음,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의 ‘티아라’ 은정, <고 死:피의 중간고사>로 시작한 ‘씨야’ 남규리 ,<배우는 배우다>로 시작한 ‘엠블랙’ 의 이준, <0.0MHz>로 시작한 ‘에이핑크’의 정은지, <물괴>로 시작한 ‘걸스데이’ 혜리, <공조>로 시작한 ‘소녀시대’ 윤아, <빅매치>에 출연한 보아, <5백만불의 사나이>에 출연한 박진영까지 다양하게 영화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초미의 관심사>의 치타, <검객>에 출연한 ‘비투비’ 이민혁, <페르소나>와 독립영화 <아무도 없는 곳>을 통해 영화를 시작한 아이유, 개봉예정작인 <애비규환>에 출연한 ‘에프엑스’ 크리스탈까지 젊은 피 수혈이 간절한 영화판에 있어 선한 영향력과 함께 이제는 연기력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가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가수가 아닌 연기자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흥행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