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덴버>

2020년 10월 8일, 국내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린 한 20대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씨는 커뮤니티에 “우울증으로 인해 힘들다”는 장문의 글을 남겼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위로가 아닌 “조용히 죽으라”는 등의 악성 댓글들이었다. A 씨가 남긴 유서에는 악플을 단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공간을 뜻하는 ‘사이버’에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불링’이 더해진 신조어 ‘사이버불링’은 사이버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으로 따돌리거나 악플 등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온라인 마녀사냥’과 다름 아닌 사이버불링은 디지털 사회에 대두된 악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구체적인 보호 장치나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다 건너 필리핀에서 일어났었던 실화를 그린 영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제6회 아동권리영화제 ‘디지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을 주제로 선정된 <#존 덴버>다.


<#존 덴버>

영화는 한 소년의 컴퓨터에 부착된 카메라를 경유해 소년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화면 속 소년들은 곧 다가오는 ‘지도자의 날’을 위해 소셜네트워크 라이브를 켜두고 한창 춤을 연습 중이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존 덴버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고, 화가 난 존 덴버는 연습을 중단하고 교실로 들어가 가방을 챙겨 나온다. 친구들과 집으로 향하려던 그를 불러 세운 건 “아이패드를 내놓으라"는 마코이의 목소리. 곧이어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세우고 가방을 가로챈 친구에게 화가 난 존 덴버는 다툼 끝에 친구를 폭행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이 모든 상황을 촬영한 카를로스는 자신의 SNS에 영상과 비난의 글을 게재하고 온라인상에서 존 덴버를 향한 비난은 커져만 간다. 그렇게 평범했던 14살 소년의 일상은 거침없이 몰락하기 시작한다.

<#존 덴버>의 오프닝은 이제는 익숙한 연출법이 되어버린 할리우드 영화 <서치>(2017)를 연상케 한다. 종종 컴퓨터 속 SNS 세계를 고스란히 제시하는 방법을 쓰기에 유사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서치>가 SNS의 장점을 활용해 실종된 딸의 행방을 찾는 것이라면, <#존 덴버>는 SNS 세계 속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사이버불링의 폭력성을 전면적으로 고발한다. 사소한 아이들의 다툼에 이름 모를 타인들과 어른들이 개입하고, 그 누구도 일말의 죄책감 없이 존 덴버를 향해 악성 댓글을 남긴다. 그뿐만 아니다. 악의적으로 조작되는 증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사람들은 전체적인 사건의 경위나 진실이 아닌 파편적인 거짓에 함몰되며 판단 능력을 상실한다.

<#존 덴버>

존 덴버는 자신을 향한 비난에 항의한다. 결코 아이패드를 훔치지 않았다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이다. 가까운 친구들까지 가방 안에 아이패드는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존 덴버의 호소는 마코이의 엄마와 경찰들한테까지 가닿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봐야 할 경찰마저 거짓을 강요할 따름이다. 존 덴버는 점차 자신의 목소리로 얘기하기를 멈추고 도망치고야 만다. 아덴 로드 콘데즈 감독이 거친 핸드헬드로 표현해낸 불안정한 심리는 보는 관객마저 소년이 서있는 벼랑 끝으로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손쉽게 접속할 수 있고 익명이라는 가장 큰 무기이자 방패로 타인을 공격하는 디지털 세상. 무방비하게 노출된 아이들은 윤리적인 판단력이 제대로 세워지기도 전에 그 기준을 잃어버리고, 뒤따르는 책임감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타인의 존엄을 훼손한다. 무작정 영화 속 아이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무수한 악성 댓글과 끝없이 이어져 온 온라인 폭력 속에서 반성은커녕 문제를 외면하고 심화시킨 것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인 ‘뉴커런츠’ 선정작으로 상영된 바 있는 <#존 덴버>는 낯선 필리핀의 풍경과 지역 주민들에게 법처럼 군림하는 전통적인 샤머니즘을 리얼하게 담아내 거리를 두는 동시에 익숙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고찰로 공감대와 경계심을 이끌어내며 밸런스를 맞췄다. 여기에 극을 이끄는 존 덴버 역의 신인 배우 쟌센 마푸사오의 강렬하고도 묵직한 인상이 더해져 긴 여운을 남긴다. 과거의 필리핀을 지나 현재의 한국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존 덴버>. 여전히 사이버불링의 피해자가 나오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존 덴버>는 2020년 1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되는 <제6회 세이브더칠드런 온라인 아동권리영화제>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영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존 덴버> 티켓 구매 방법 및 영화제 소개에 관한 상세 내용은 하단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