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길고 힘들었던 2021년도 막바지를 향해가고, 크리스마스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 시대의 크리스마스 영화 고전 <러브 액츄얼리>(2003) 속 음악들을 소개한다.


Christmas Is All Around

BILL NIGHY

<러브 액츄얼리>는 히드로 공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장면들로 채워진 인트로를 보여준 후, 가수 빌리 맥(빌 나이)이 크리스마스 캐롤 'Christmas is All Around'를 녹음하는 모습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순탄하게 부르는 것 같더니만 가사를 틀리는 바람에 지독한 말을 내뱉으며 투덜댄다. 빌리가 가사를 틀리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노래는 영국의 거라지 록 밴드 트록스(The Troggs)가 1967년 발표한 노래 'Love is All Around'를 크리스마스 버전으로 리메이크 한 노래인데 (리차드 커티스 감독이 직접 개사했다), 'love' 대신에 'christmas'로 불러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한번 실수한 다음에는 무사히 녹음은 계속 진행되고, 쇼핑몰에 놓인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추면서 '크리스마스 5주 전'이라는 자막이 뜬다. 'Christmas is All Around'의 연주부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앞으로 <러브 액츄얼리>에 등장할 인물들이 하나둘 소개된다. 원곡 'Love is All Around'는 '워킹 타이틀'의 또 다른 로맨틱코미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에도 사용됐다.


All You Need is Love

LYNDEN DAVID HALL

'All You Need is Love'가 울려퍼지는 교회 결혼식 신. <러브 액츄얼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줄리엣(키이라 나이틀리)과 피터(추이텔 에지오포)의 결혼식이 평화롭게 치러지는 가운데, 다른 시퀀스에서 등장할 캐릭터들이 속속 눈에 띈다. 두 사람이 식장을 나설 때,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love~ love~ love~" 익숙한 멜로디를 노래하는 목소리들이 올라온다. 영국의 영원한 국민 밴드 비틀즈(The Beatles)의 'All You Need is Love'다. 1967년 7월 처음 발표된 노래는 혼란과 격변을 통과하던 당시 어지러운 세상에 '사랑'을 강조하는 노랫말로 현재까지도 수많은 대중문화에서 인용되고 있다. 갑자기 나타나 감미로운 목소리로 원작엔 없는 바이브레이션을 들려주는 가수는, 영국의 R&B 뮤지션 린든 데이비드 홀(Lynden David Hall)이 직접 연기한 것. 객석 곳곳에서 악기 연주자가 속속 나타나 더욱 풍부한 소리를 만들면서 식장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Bye Bye Baby (Baby Goodbye)

BAR CITY ROLLERS

다니얼(리암 니슨)은 얼마 전 아내를 떠나보냈다. 장례식장에서 "조안나와 저는 이 순간을 준비했습니다" 라고 운을 뗀 그는 아내가 장례식에 파트너로 클라우디아 쉬퍼를 데려오랬다는 농담을 전한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대니얼은 클라우디아 쉬퍼와 똑같이 생긴 여자와 만난다) 그리고 아내가 부탁한 대로 베이 시티 롤러스의 노래 'Bye Bye Baby'를 튼다. 장례식에서 흔히 들릴 법한 엄숙한 음악이 아닌, 농담 같은 선곡.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과 영화를 보는 관객은 스크린에 띄워진 조안나의 생전 모습과 그걸 등지고 선 다니얼의 얼굴을 바라본다. 작별을 말하는 노래지만 그걸 감싸는 연주들은 너무 청량하기만 해서, 그 순간의 기묘한 비감이 더욱 배가 된다. 프랭키 밸리를 주축으로 한 4인조 보컬 그룹 포 시즌즈(The Four Seasons)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Bye Bye Baby'는 1975년 봄부터 무려 6주 간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줄리엣과 피터의 결혼 파티에서 마크(앤드류 링컨)는 사라(로라 리니)에게 난처한 질문을 받자 파티에서 'Bye Bye Baby'를 트는 DJ가 사상 최악이라며 말을 돌린다.


River

Both Sides Now

JONI MITCHELL

이번엔 캐런(엠마 톰슨)과 해리(앨런 릭먼) 부부의 신. 캐런이 영국 수상을 오빠로 둔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해리는 대뜸 오만상을 찌푸리며 지금 틀어놓은 음악이 뭐냐며 묻는다.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River'라고 대답하니, 아직도 이런 걸 듣냐고 면박을 주고, 캐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응수한다. "그녀를 사랑해. 진정한 사랑은 평생 가거든. 조니 미첼은 내 스승이야. 멋이라곤 몰랐던 나한테 '정서'라는 걸 일깨워줬지." 그렇다, 캐런의 말이 백번 옳다! 'River' 같은 노래를 만든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그런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구식이라고 콧방귀를 끼는 놈이니까 회사 직원 미아의 유혹에 넘어가지, 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대목이다. 미첼의 걸작 앨범 <Blue>에 수록된 'River'는 마음이 모두 닳아버린 관계를 노래하는 크리스마스송이다. 사실 이 노래야말로 캐런과 해리의 관계를 너무나 잘 나타내는 노래인 셈. 나중에 해리는 예쁜 목걸이를 미아에게 주고, 캐런에게는 조니 미첼이 2000년에 발표한 커버 앨범 <Both Sides Now>이나 띡 건네줘서 캐런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때 캐런은 미첼이 자기 노래를 다시 부른 'Both Sides, Now'를 들으며 슬픔을 억누른다.


Turn Me On

NORAH JONES

사라는 회사의 디자이너 칼(로드리고 산토로)을 "2년 7개월 3일 1시간 반"째 사랑하고 있고, 세상 모든 사람, 심지어 칼까지도 그걸 알고 있지만, 좀처럼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사라와 칼의 거리는 하루아침에 확 좁혀진다. 파티에서 칼이 사라에게 춤을 청한 것.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Like I Love You'가 울리던 공간은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자 무드 있게 춤추기 좋은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만개하길 기다렸던 꽃처럼, 새카만 방 안의 전등처럼" 칼과의 사랑을 기다렸던 사라의 마음이 눈처럼 녹고 있는데, 칼이 먼저 더 확실하게 마음을 드러낸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관능적인 에너지를 터질 듯 부풀리는 노래는 노라 존스(Norah Jones)의 'Turn Me On'이다. 2002년 발표, 현재까지 3천만 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린 노라 존스의 데뷔 앨범 <Come Away with Me>에 수록된 이 노래는 마크 디닝(Mark Dinning)이 부른 버전으로 1961년 처음 세상에 나왔지만 당시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40년이 지난 후에 존스가 리메이크 하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All Alone on Christmas

DARLENE LOVE

어느새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러브 액츄얼리>의 주인공들이 품은 사랑도 각자의 운명을 따라 진행되고 있다. 인기 없는 콜린(크리스 마셜)은 미국행을 결심한다. 존은 촬영장에서 만나 꽤 말이 잘 통하는 상대배우에게 크리스마스 데이트 신청에 성공한다. 제이미(콜린 퍼스)는 언젠가 만나게 될 오렐리아를 위해 포르투갈어를 공부한다. 이 과정을 달린 러브(Darlene Love)의 캐롤 'All Alone on Christmas'가 수식한다. 역사상 최고의 크리스마스 앨범으로 손꼽히는 <A Christmas Gift for You from Phil Spector>의 주역이었던 달린 러브가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2>(1992)의 주제가로 부른 노래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밴드 'E 스트리트 밴드'와 관악기 밴드 '마이애미 혼스'가 함께 연주한 사운드에 달린 러브의 푸근한 목소리가 더해진 명곡이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MARIAH CAREY

<러브 액츄얼리>의 인물들은 크리스마스 기념 공동 학예회에 모인다. 캐런의 딸이 가재 연기를, 다니엘의 아들 샘(토마스 생스터)이 짝사랑 하는 조안나(레베카 프라이언)가 노래를 선보이는 자리다. 조안나가 부르는 노래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캐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다. 조안나의 출중한 노래 실력을, 홀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샘의 드럼 연주가 뒷받침 한다. 그 사이에 무대 뒤에서는 영국 수상(휴 그랜트)이 꾹꾹 마음을 감춰오던 나탈리(마틴 맥커친)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조안나의 퍼포먼스가 끝나고 커튼이 열려 수상과 나탈리가 키스 하는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사랑이 전부라고 열심히 이야기 하는 영화로선 최적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한 풍경이다. 조안나가 부른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1994년 처음 발표돼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전세계에 울려퍼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2021년 12월에도 이 노래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