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반쯤 열린 문과 문 사이에서, 국수를 사러 가는 가파른 계단에서, 남녀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그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다. 두 사람이 스쳐 갈 때마다 미세하게 바뀌는 공기의 흐름을. 서로를 향해 흔들리는 눈빛을. 온몸의 세포가 곤두설 정도로 강력하게 끌리는 인력을. 여자의 이름은 수리첸(장만옥). 그런 여자를 애틋한 눈으로 좇고 있는 남자는 차우(양조위)다.
자신들의 배우자가 서로 부정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게 된 수리첸과 차우는 이 고통스러운 시기를 통과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맞이한다. 그들 사이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실 그 모든 건 별다른 일이었고, 그들의 삶은 통째로 흔들린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를 떠난다. 그리고 몇 년 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벽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세월이 흘러도 버려지지 않는 그녀와의 비밀을. 그렇게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영원히 봉인한다.
봉인됐던 <화양연화>(2000)의 비밀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20년 만에 다시 펼쳐진다길래 주저 없이 극장을 찾았다. 사실 줄거리가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심지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봤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영화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아 왔던 건, 영어 제목 ‘In the mood for love’가 웅변하듯 스토리보다 ‘무드’로 읽히는 영화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용은 흐릿했지만, 영화가 품고 있던 몽환적인 선율과, 가로등 불빛과, 여자의 손 위에 수줍게 포개진 남자의 손과, 흔들거리던 국수통과, 자욱한 담배 연기와, 장만옥의 치파오 차림과, 카메라 앵글과, 이 모든 것들이 뭉쳐서 발산했던 영화의 감각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화양연화>를 잊지 못했던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은 양조위 눈빛에서 기인한다. 감정을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게 더 힘든 연기라는 세계에서 그의 눈빛은 모든 걸 비워내고도 카메라의 압박을 밀도 높게 견뎌냈었으므로. 다시 만난, 그의 눈빛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 사랑의 심연까지 자맥질하는 듯한 눈빛. 배우를 평할 때 눈빛을 언급하는 것만큼 클리셰도 없지만, 양조위를 논하면서 이야기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 같아서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양조위의 눈빛을 사람들이 알아본 건 아니다. 홍콩 누아르 장르가 기지개 켜던 시절 배우 경력을 시작한 양조위는 80년대 내내 장르의 틀 안에 구겨져 있었다. 당시 홍콩은 다작 시스템이 유행이었고, 빠르게 찍어내는 환경 안에서 그 어떤 배우도 졸작은 피해갈 수 없었다. 양조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는 이연걸 같은 무술 유단자도 아니었고, ‘성냥 한 개비’의 쓸모를 아시아에 알리는 혁혁한 공을 알린 주윤발 같은 남성성을 지닌 것도 아니었으며, ‘아름답다’라는 수식어가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 장국영 같은 꽃 미모 부류에 속하지도 않았다. 다소 개성이 흐릿한 배우라는 인식이 양조위를 따랐다. 1년에 5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는 강행군 안에서 매너리즘이 그를 찾기도 했다.
그런 양조위 안에 내재 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에너지는 감지한 건 대만 감독 허우 샤오시엔이다. 허우 샤오시엔은 동시녹음으로 <비정성시>(1989)를 찍으면서 완벽한 대만어가 불가능한 양조위를 기용하기 위해 그의 캐릭터를 아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배우로서 팔다리가 잘린 것이나 다름없게 된 상황. 그러나 이러한 약점은 양조위에게 약점이 아니었다. 감탄스럽게도 영화에서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표정과 눈빛으로 모든 말을 해낸다. 양조위의 서명이자 트레이드마크로 불릴 ‘애잔한 눈빛’의 서막.
<비정성시>와 맞물려 그에겐 운명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훗날 양조위 전기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할 게 자명한 왕가위가 그의 인생에 등판한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아비정전>(1990). 알다시피 장국영이 주연이었던 이 영화에서 양조위는 영화 끄트머리에 맥락 없이 튀어나와 엔딩을 장식했다. 이는 <아비정전2>에 대한 예고편으로 결과적으로 2편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양조위는 <중경삼림>(1994)에서 왕가위와 다시 인연을 맺으며 본격적인 영화적 동지가 된다. 국내 관객들이 양조위를 알린 것 역시 이 영화. 실연의 고통 속에 놓인 경찰663(양조위)이 젖은 수건을 짜며 “계속 울기만 할 거야?”라고 독백을 내뱉은 후, 전국 실연당한 남자들 집에 마른 수건들이 출몰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문이 파다했던 ‘응답하라 1994’ 시절이었다.
이후 왕가위와 함께 한 영화들(<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2046> <일대종사>) 안에서 양조위는 어긋난 사랑의 시간을 끌어안고 배회하거나 견디거나 스스로 소멸했다. 홍콩 누아르 장르가 몰락하고, 남성 판타지가 힘을 잃고, 주윤발과 이연걸 등이 미국으로 떠난 홍콩에서 양조위는 흘러간 영웅이 아닌 시간을 품은 현재진행형의 얼굴로 홍콩영화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거듭났다. 왕가위 뿐 아니라 트란 안 홍(<시클로>), 장이모(<영웅>), 리 안(<색, 계>) 등도 자신들의 세계 안에서 양조위가 품고 있는 정서를 적극 활용했다.
양조위에게 어울리는 형용사를 고르자면 ‘쓸쓸하다’일 것이고, 명사로 꼽자면 ‘연민’과 ‘비애’일 것이다. 그의 어깨엔 늘 아련함이 얹어져 있고, 눈에선 바람이 분다. 그가 보여주는 감정선에 대중이 무방비로 전염되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종종 양조위의 뒷모습이 섹시하다고 느낀다. ‘키도 작고 어깨도 좁은 양조위의 뒷모습이 뭐가 섹시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그건 단순히 시각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뉘앙스로 읽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상의 최전선에 있었던 양조위의 자아는 <무간도>(2002)의 진영인이 아닐까 싶다.
홍콩 누아르의 화양연화를 떠올리게 한 <무간도>에서 양조위가 받아들인 운명은 범죄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 영화에서 양조위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인물의 고독하고도 불안한 심리를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표현하며 보는 이들의 심장에 다이너마이트를 심었다. 한마디로 ‘무간지옥’이란 뜻을 아예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놀랍게도 양조위의 차기작은 마블이 첫 아시아계 히어로를 내세운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더 텐 링스>다. 영화에서 양조위는 빌런 만다린으로 분할 예정. <샹치>가 기다려지는 이유의 99.999999%는 양조위 때문이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이 그의 개성을 훼손하면 어쩌나 하는 약간의 우려도 교차한다. 물론, 그의 눈빛이 만다린을 소모품 악당으로 만들지 않으리란 믿음이 크지만. <화양연화> 속편 격인 <2046>(2004)에서 양조위는 말했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스쳤다면 우리의 인연도 달라졌을까?” 사랑만 타이밍일까. 배우에겐 작품과의 만남도 그러할진대, 이 배우가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시공간에서 어떤 인연들을 쌓을지 궁금해진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