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으로 발매된 ‘몬스터 헌터’는 헌팅 액션 게임의 포문을 연 전설적인 작품이다. 플스3를 비롯해 Wii와 닌텐도 3DS, 온라인, 엑스박스, PC 그리고 오는 3월에 발매되는 신작은 닌텐도 스위치에서 출시되는 등 다양한 플랫폼에 이식되며 오랜 생명력을 자랑해왔다. 제목 그대로 거대 괴수에 가까운 대형 몬스터들을 다양한 무기들로 사냥하는 게 메인이벤트인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의 숨겨진 사냥 본능과 잊혀진 수렵 생활을 일깨우며 단숨에 히트작 대열에 올라섰다. 애초 제작사인 캡콤은 그리 큰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뜻밖의 성공으로 확장판 개념의 발매가 이뤄지며 다소 복잡한 넘버링과 여러 스핀오프를 거느린 거대한 세계관으로 확장됐다.
‘몬스터 헌터’는 판타지 게임에서 익숙한 레벨과 마법이 등장하지 않으며, 오롯이 무기와 기술에 의존해(더욱이 멀티 플레이라는 방식을 극대화시켜) 거대 괴수들을 때려잡아서, 레어한 소재들로 장비를 발전시켜나가는 독특한 상상력과 매력으로 게이머들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이(異)세계라는 컨벤션화된 특징을 줄이고, 비현실적인 장르의 현실적인 접근법으로 재미와 흥미를 다 잡은 이 게임은 시리즈가 거듭되며 점점 더 디테일한 설정과 리얼한 그래픽이 추가돼 전 세계적으로 6600만 장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언제나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할리우드가 이런 초대박 아이템을 놓칠 리 만무한데, 2008년 일본을 여행하며 ‘몬스터 헌터’를 접한 폴 W. S. 앤더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게임 원작 영화의 달인 폴 앤더슨
폴 앤더슨의 이력에 비춰본다면 이는 당연한 선택처럼 다가온다. 그는 게임 원작 영화로는 최초로 전 세계 흥행 1억 달러를 돌파한 <모탈 컴뱃>의 감독이자, 총 12억 달러라는 가장 성공한 게임(역시 캡콤이 제작했다!) 원작 프랜차이즈인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각본/제작/연출을 맡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4년에 연출한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는 원작만화 못지않게 아케이드 게임(이 역시 캡콤 게임이다!)이 유명했고, 2006년 제작에 참여했던 <DOA> 역시 유명한 대전 격투 게임이 원작이니 이쯤 되면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자랑할 정도다. 결국 ‘바이오 하자드(=레지던트 이블)’를 성공시킨 전적을 인정(?)받아 캡콤은 ‘몬스터 헌터’의 영화화 권리도 폴 앤더슨에게 넘겨준다.
2012년부터 구체적인 구상에 들어가 캡콤에게 직접 <몬스터 헌터>의 영화화 의사를 타진했던 ‘겜덕후’ 폴 앤더슨은 <레지던트 이블>처럼 자신의 아내인 밀라 요보비치에게 주연을 맡겼고, 토니 쟈와 론 펄먼 등을 기용해 소니 산하의 마이너 장르 제작사인 스크린 젬스에서 6천만 달러로 제작됐다. 애초 북미에선 2020년 9월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스케줄 변동으로 개봉일이 계속 바뀌다 최종적으로 2020년 12월 중순으로 결정됐다. 중저예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각종 몬스터, 무기들은 제법 충실히 구현됐단 평가를 받았지만, 게임 설정을 제대로 녹이지 못한 컨셉과 빈약한 내용, 인종차별적인 농담 논란으로 일부 장면이 삭제되는 등 구설수에 오르며 <원더우먼 1984>와 <소울> 등에 밀려 흥행엔 적신호가 켜졌다.
탠저린 드림 출신의 영화음악가 폴 하슬링어
<몬스터 헌터>의 음악을 담당한 건 국내에선 조금 생소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폴 하슬링어다. 폴 앤더슨과는 <데스 레이스>를 시작으로 <삼총사 3D>, 레지던트 이블의 마지막을 장식한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에 참여하며 호흡을 맞췄고, <언더월드> 시리즈라는 알짜배기 프랜차이즈의 음악 절반을 도맡으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할리우드 톱클래스 대우의 작곡가는 아니지만, 스릴러와 호러, 판타지 등 하부 장르에서 활동해오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영역을 구축했다. 196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빈 음악원(비엔나 국립 음악대학교: MDW)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본격적인 세션 플레이로 활약했던 그의 인생을 뒤바꾼 건 1985년 바로 전설적인 밴드 탠저린 드림에 합류하면서부터였다.
탠저린 드림은 1967년 결성돼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크라우트록을 시작으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밴드 중 하나로, 초창기부터 신디사이저를 받아들여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70년대 중반 영화음악에도 뛰어들어 반젤리스나 장 미셀 자르, YMO, 조르지오 모르더 등과 함께 전자음악의 유행을 주도했다. <공포의 보수>를 리메이크한 <소서러>를 시작으로, <도둑>, <악마의 성>, <위험한 청춘>, <초능력 소녀의 분노>, <리젠드>, <청춘의 승부>, <3시의 결투>, <죽음의 키스> 등 80년대 내내 다이내믹하면서 스타일리쉬한 감성의 사운드트랙들을 선보였다. 에드가 프로에제와 함께 밴드의 쌍두마차였던 크리스토퍼 프랑케가 탈퇴해 본격적으로 영화음악가의 길을 걷는 것을 본 하슬링어는 자신도 90년에 탈퇴해 솔로 뮤지션이자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언더월드 시리즈의 성공, 앤더슨과의 만남
탠저린 드림 시절부터 영화음악에 참여했고, 영화음악가 그레이엄 레벨의 작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솜씨를 발휘했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앞서 언급한 <언더월드>의 폭발적인 성공 덕이 컸다. 2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5배 가까이 흥행한 영화의 가성비 못지않게, 세련된 고딕적인 분위기에 화끈하고 감각적인 액션을 버무린 영상과 어둡고 음울하면서 독특한 어반 판타지의 색채를 탁월하게 구현해낸 음악은 단연 주목받았다. 영상보다 음악이 더 돋보이는 짐머 스타일이 트렌드가 되던 할리우드에서 고전적인 일렉트릭 색채에, 실험적인 엠비언트를 끼얹고,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무게감을 전달하는 하슬링어의 언더스코어링은 제법 신선하게 다가왔다. 속편에서 마르코 벨트라미로 교체됐지만, 이후 3편과 4편의 음악으로 컴백하며 그의 거칠고 다크한 사운드는 <언더월드> 세계관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존 스톡웰과 협업한 로맨스물 <크레이지 뷰티풀>을 비롯해 코미디나 스포츠 장르에도 손을 대며 그는 다양한 관심사를 피력했지만, 무엇보다 중간 규모의 상업영화들에서 예산보다 훨씬 큰 스케일과 감각적인 센스를 들려주는 스코어에 최적화되어있었던 만큼 비슷한 지점에서 쏠쏠한 흥행 타율을 보이던 폴 앤더슨 감독 시야에 폴 하슬링어가 들어온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들이 호흡을 맞춘 세편의 영화들은 모두 본전치기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다시 한번 <몬스터 헌터>에서 의기투합한다. 아쉽게도 게임에서 웅장하게 흐르던 - 코우다 마사토가 작곡한 – 몬헌의 상징과도 같은 테마 ‘영웅의 증표(英雄の証)’은 사용하지 않지만, 하슬링어는 자신만의 캐리커처 사운드로 이 단순하고 직관적인 액션물에 방점을 찍는다.
게임음악을 닮은 영화음악, 몬스터 헌터
마치 할리우드 고전 대작의 음악을 듣듯 화려하고 웅장한 심포닉 사운드로 영웅적인 모험담을 연상케 하던 원작의 게임음악과 달리, 하슬링어는 싸이키델릭하며 반복적인 일렉 톤과 단조롭지만 묵직한 스트링을 교배시켜 긴박감 넘치고 미스터리하며 파워풀한 액션 스코어를 들려준다. 디스토션 걸린 기타와 기괴한 코러스, 각종 노이즈와 이펙트가 곁들어지며 혼돈과 파괴의 생태를 묘사해가는 방식은 <언더월드> 프랜차이즈에서 인간사 이면에 공존하던 뱀파이어와 라이칸 간의 암흑의 대립을 담아내던 방식과 사뭇 닮았다. 인상적인 테마나 귀에 박히는 선율을 배제하고 시퀀스의 서사를 아우르며 상황을 묘사해가는 사운드디자인은 액션과 비주얼에 최적화돼 한 몸으로 다가온다. 이는 과거 탠저린 드림이 전체적인 분위기와 세계관을 그리던 영화음악들을 연상케 한다.
표피적이며 말초적인 사운드지만 시종일관 스펙터클에 몰두하는 이 영화에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우러진다. ‘몬스터 헌터’의 게임음악이 노골적으로 영화음악을 닮았다면 반대로 <몬스터 헌터>의 영화음악은 절묘하게 게임음악을 따라간다. 실제로 하슬링어는 <파크라이: 인스팅트>나 <레인보우 식스: 베가스>, <니드 포 스피드: 언더커버>, <레인보우 식스: 시즈> 등 다양한 게임음악을 담당하며 스케일과 서스펜스, 액션 쾌감에 주력하는 법에 익숙하다. 캐릭터들의 감정이나 과거 사연 따위에 집착하지 않은 채, 몬스터의 습격과 전투, 이세계의 분위기에 대해 깊게 다루는 음악은 따로 감상하기에 매력적이지 않지만 영화 내에선 충분히 효과적이다. 사실 하슬링어의 거의 모든 영화음악들이 그래왔다. 속편을 암시하는 영화의 결말대로 이들은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