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돌연 해체를 발표했다. 근작 <Random Access Memories>(2013) 이후 새 작업을 기다렸던 수많는 팬들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 그 와중에 흥미로운 건, 다프트 펑크가 정확한 해체 메시지 대신 업로드한 비디오 클립을 보면서, 마지막까지 '다프트 펑크스럽게' 작별 인사를 하는 다프트 펑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점이다. 1993년부터 2021년까지, 28년간 지구인들을 춤추게 한 위대한 듀오 다프트 펑크의 영화 속 흔적들을 소개한다.


'Aerodynamic (Slum Village Remix)'

DAFT PUNK

<키스 오브 드래곤> (2001)

이연걸이 주연을 맡고, 뤽 베송이 제작을 맡은 프랑스 액션 영화 <키스 오브 드래곤>은 일렉트로니카와 힙합 음악으로 사운드트랙을 채웠다. 악당들에 붙잡힌 제시카(브리짓 폰다)가 탈출을 시도하는 신에서 다프트 펑크의 'Aerodynamic'이 쓰이긴 했는데, 원곡이 아닌 힙합 그룹 슬럼 빌리지(Slum Village)의 리믹스 버전이다. 슬럼 빌리지는 'Raise It Up'에 다프트 펑크의 멤버 토마 방갈테르(Thomas Bangalter)가 솔로로 발표한 'Extra Dry'를 무단으로 샘플링 한 바 있는데, 슬럼 빌리지의 프로듀서 제이 딜라(J Dilla)의 팬이었던 다프트 펑크는 매니저의 제안을 통해 샘플링 비용 대신 'Aerodynamic'의 리믹스를 제공 받았다. 그럼 슬럼 빌리지의 'Aerodynamic' 리믹스는 제이 딜라가 만든 거라고 예상하기 십상인데, 이 트랙은 딜라가 아닌 슬럼 빌리지와 동향(디트로이트)의 프로듀서 카림 리긴스(Karriem Riggins)의 작품이다.


bande originale du film

THOMAS BANGALTER

<돌이킬 수 없는> (2002)

다프트 펑크의 걸작 <Discovery>가 세상에 나온 이듬해인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돼 맹렬한 논란을 일으킨 <돌이킬 수 없는>의 영화음악을 토마 방갈테르가 만들었다. 방갈테르가 만든 <돌이킬 수 없는>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하우스와 디스코를 기반을 한 다프트 펑크의 음악과는 전혀 다르다. 신나지 않다. 감독 가스파 노에의 영화 속 축축하고 혼란스러운 파리의 풍경과 더 어울린다. <돌이킬 수 없는>의 사운드트랙은 방갈테르가 90년대 중반부터 운영해온 레이블 'Roulé'에서 발매됐다.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트랙들과 더불어, 방갈테르가 다프트 펑크의 1집 <Homework>와 2집 <Discovery> 사이에 내놓았던 3개의 솔로 트랙이 포함됐다.


<Discovery> 전곡

DAFT PUNK

<인터스텔라 5555> (2003)

<은하철도 999>의 작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애니메이션 <인터스텔라 5555>는 우주에서 활동하는 밴드가 군대의 습격을 받고 납치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인터스텔라 5555>는 다프트 펑크의 앨범 <Discovery> 전곡을 사용해 마치 앨범의 뮤직비디오처럼 제작됐다는 점이 큰 화제를 모았다. 대사와 사운드 이펙트 하나 없는 애니메이션에서 소리를 차지하는 건 오로지 다프트 펑크의 음악이다. 평소 <Discovery>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최애' 트랙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확인해봐도 좋겠다.


'Robot Rock'

DAFT PUNK

<아이언맨 2> (2010)

상당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프트 펑크의 명곡들은 좀처럼 영화 안에서 만나기 힘들었다. 저작권료가 상당하거나 다프트 펑크가 사용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전작의 어마어마한 성공에 힘입어 삐까번쩍하게 제작된 <아이언맨 2>는 당당히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사용했다. 세 번째 앨범 <Human After All>에 수록된 'Robot Rock'이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술에 취해 정신없이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워 머신(돈 치들)이 끼어들어 그를 말리다가 난투극을 벌이는 신에서다. 퀸(Queen)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 롭 베이스 앤 DJ E-Z 락(Rob Base and DJ E-Z Rock)의 'It Takes Two'에 이어 나오는 'Robot Rock'은 두 로봇 수트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면서 나는 깡깡 대는 소리와 어우러져 웃음을 더한다.


original music by

DAFT PUNK

<트론: 새로운 시작> (2010)

가스페 노에는 다음 작품 <엔터 더 보이드>(2009) 역시 음악 전반을 방갈테르에게 청했으나 결국 사운드 이펙트로만 참여했다. 다프트 펑크가 음악감독을 맡은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2010, 이하 <트론>) 작업 때문. <트론> 제작진은 'Alive 2006/2007' 투어가 한창이었던 시기부터 꾸준히 다프트 펑크에게 컨택한 끝에 결국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다프트 펑크는 오케스트라와 일렉트로니카의 접목하는 방향을 두고 영화가 완성되기 2년 전부터 <트론> 음악을 작업했다. 오케스트라 편곡을 맡은 조셉 트래패니스(Joseph Trapanese)와의 협업한 결과물은 85인조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사운드로 완성됐다. 다프트 펑크의 멤버 기마누엘 드 오멩크리스토(Guy-Manuel de Homem-Christo)는 원작 <트론>의 음악감독 웬디 카를로스(Wendy Carlos)를 비롯해 버나드 허먼, 반젤리스, 존 카펜터 등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Within'

DAFT PUNK

<에덴: 로스트 인 뮤직> (2014)

프랑스 감독 미아 한센 뢰베의 <에덴: 로스트 인 뮤직>은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음악 신을 향한 존경을 담은 영화다. 90년대 중반부터 친구와 함께 DJ 듀오로 활동한 폴의 흥망성쇠를 그린 영화엔 당시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신을 주름잡은 명곡들이 대거 사용됐다. 물론 그 신의 최고 스타인 다프트 펑크의 음악이 빠질 리 없다. 데뷔 앨범의 'Da Funk', 2집의 'One More Time'과 'Veridis quo', 결국 다프트 펑크의 마지막 앨범으로 남게 된 <Random Access Memories>의 'Within' 모두 4곡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폴이 클럽에서 홀로 회한에 젖는 후반부에 흐르는 'Within'이 일으키는 감정의 파고가 특히 강력하다. 다프트 펑크는 제 음악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줬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화에 대해서도 정보를 제공해 당시의 사실적인 공기를 나타낼 수 있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


'Black Skinhead'

KANYE WEST

<수어사이드 스쿼드> (2016)

2007년 다프트 펑크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샘플링한 'Stronger'를 내놓은 바 있는 칸예 웨스트는, 야심작 <Yeezus>에 다프트 펑크를 프로듀서로 초대해 그들의 사운드에 힘입어 4곡을 완성했다. 전자음이 가득한 첫 곡 'On Sight'부터 'Black Skinhead', 'I Am a God'에 이르는 초반부의 매끄러운 흐름과 후반의 'Send It Up'은 다프트 펑크의 인장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트랙이다. DC 유니버스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선 'Black Skinhead'가 사용됐다. 데드샷(윌 스미스)이 감옥에서 굉장한 사격 솜씨를 선보이는 신에서다. 반가운 한편, 활용의 효과 자체는 아쉽다. 곡 자체가 드라마틱하고 비트도 아주 선명해서 영화에 인용되면 효과가 배가 될 만한 곡인데, 그 대신 어떤 힙합이 쓰여도 상관이 없을 법한 BGM으로 그치고 말았다.


'Sangria'

THOMAS BANGALTER

<클라이맥스> (2018)

<돌이킬 수 없는>으로 시작된 토마스 방갈테르와 가스파 노에 감독과의 연은 노에의 근작 <클라이막스>까지 이어졌다. 총 3개의 트랙이 쓰였는데, 그 출처가 각각 다르다. 영화가 시작한 지 거의 50분이 지나서야 등장하는 오프닝 크레딧은 방글테르가 1995년 발표한 'What to Do'가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그리고 다프트 펑크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Rollin' and Scratchin'', 방갈테르가 <클라이막스>를 위해 만든 신곡 'Sangria'가 가스파 노에의 기괴한 이미지들을 수식한다. 다프트 펑크의 신나는 혹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만 익숙한 이들이라면, 토마 방갈테르가 관여한 가스파 노에의 영화 속 기괴한 소리들을 찾아들어보길 권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