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얼마 전 <베이비 드라이버>(2017) 속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올해 중에 공개될 신작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2021)에 이어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러닝맨>을 연출한다는 소식도 전해졌으니, 속편을 만나게 될 날은 아직 많이 먼 것 같지만 완성된 시나리오가 언젠가 영화화 될 가능성은 꽤나 높다고 볼 수 있겠다. 알아주는 '음덕' 감독이 작심하고 만든 <베이비 드라이버>를 음악을 중심으로 되새겨보자.


Bellbottoms

THE JON SPENCER BLUES EXPLOSION

<베이비 드라이버>는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의 'Bellbottoms'와 함께 시작한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베이비 드라이버>가 개봉하기 22년 전인 1995년에 이 노래를 듣고서 주인공이 범행 장소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떠올렸고, 음악과 운전과 로맨스가 조화를 이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오프닝은 완벽한 실천이다. 베이비(안셀 엘고트)는 차 안에서 아이팟으로 'Bellbottoms'를 틀고, 노래를 비롯한 트랙에 새겨진 모든 악기들을 연주하는 시늉까지 하면서 음악을 만끽한다. 그리고 그 음악에 딱 맞춰, 은행털이를 마친 팀원들이 돌아오자마자 시내 한복판을 질주한다. 실제로 크게 두 갈래로 나눠진 'Bellbottoms'의 구성에 딱 맞춰진 활용이다. 블루지한 록 연주에 현악 스트링을 조합한 초반부와 달리 속도감 있게 로큰롤 리듬을 쏟아놓는 대목에 맞춰, 베이비와 일행들이 탄 새빨간 스바루는 애틀란타의 넓은 도로를 마음껏 질주한다.


"Was He Slow?"

KID KOALA

작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베이비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버릇처럼 녹음한 박사(케빈 스페이시)의 말을 듣다가 "그건 느리다는 건데, 쟤가 느려?"를 듣고는 느닷없이 비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박사의 말을 카드 리더기에 옮겨 소리를 따서 그걸 스크래치 하듯 변형하고 신디사이저, 드럼 머신, 스타일로폰으로 만든 리듬을 얹어서 그럴듯한 비트를 만든다. 서사와는 큰 연관이 없지만, 음악영화 특유의 잔재미를 보여주는 보너스 신이다. 이 독특한 비트를 만든 건 캐나다 DJ 키드 코알라다. 2000년대 초반 일련의 작업물들을 발표한 키드 코알라는 라디오헤드, 비스티 보이즈,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대가들의 투어에 초대받는 등 큰 인기를 노렸다.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과거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와중, 2017년에 만나는 키드 코알라의 재기발랄한 비트가 굉장히 반갑게 들렸다.


Let's Go Away for Awhile

THE BEACH BOYS

음악과 로맨스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베이비가 연인 데보라(릴리 제임스)를 처음 만날 때 나오는 음악이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에드가 라이트는 거기에 비치 보이스의 'Let's Go Away for Awhile'을 썼다. 나른하게 들리는 음악은 한산한 식당에서 혼자 멀뚱히 앉아 있는 베이비를 비출 땐 그의 외로움을 수식하는 것 같다가도, 창문에 데보라가 지나가면 첫눈에 반한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황홀한 BGM이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Let's Go Away for Awhile'는 팝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 <Pet Sounds>의 중반에 배치된 2분 25초 짜리 연주곡이다. 세상 모든 소리의 향연이라 할 만한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비하면 차라리 심심하게 들리는 곡이지만, 그 가벼운 소리들이 만나는 그 텐션의 밀도는 정말 강력하다. 극한으로 밀어붙인 나른함이 결국 관능을 퍼트리는 경지. 데보라가 옷을 갈아입고 주문을 받을 때에도 노래는 여전히 흐르고 있고, 베이비는 넋을 놓고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라고 중얼거린다.


Debora

TYRANNOSAURUS REX

엄마가 일했고, 이제는 데보라가 일하는 식당에 간 베이비는 뭘 원하냐는 데보라의 질문에 "너의 이름"이라고 답한다. 그 이름을 듣고는 "노래에도 나오는?" 묻자, 데보라는 "벡(Beck)이 부른 거? 거기 나오는 건 '데브라'고 난 '데보라'야" 말한다. 노래에 나오는 이름에 대해 대화하던 두 사람은 세탁소에서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Debora'를 듣는다. 자기 이름을 딴 노래는 도통 없다면서 툴툴대던 데보라를 위해 베이비가 직접 찾은 노래다. 훗날 70년대 글램록의 신화가 되는 티 렉스(T-Rex)의 전신인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기타를 치는 마크 볼란과 퍼커셔니스트 스티브 페레그린 툭으로 이뤄진 2인조 포크 밴드였다. 날렵하게 귀를 간지럽히는 퍼커션 리듬 위로 데보라에게 구애를 바치는 가사가 잔뜩 새겨지는 노래는 옷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소의 풍경과 함께 이어폰을 나눠 끼고 서로 호감을 나누는 이 예쁜 커플과도 잘 드러맞는다. 에드가 라이트는 데보라라는 제목의 노래를 찾다가 이 곡을 발견했고, 데보라에게 잔뜩 사랑을 바치는 노랫말을 가진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Debora'를 선택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베이비는 바이닐로 벡의 'Debra'를 들으면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범죄에 손 떼기로 마음먹는다.


Every Little Bit Hurts

BRENDA HOLLOWAY

어쩔 수 없이 다시 박사의 작전에 가담하게 된 베이비와 일행들은 막무가내인 뱃츠(제이미 폭스)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총격전을 벌이고 데보라가 일하는 식당에 둘러앉는다. 데보라가 일하고 있기에 거기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뭔가 눈치챈 듯한 뱃츠는 부득불 저 식당에 가야겠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묘하게 나쁜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고, 뱃츠가 베이비를 두고 데보라에게 질문을 하면서 긴장은 극으로 치닫는다. 이때 레스토랑에선 브렌다 할라데이의 'Every Little Bit Hurts'가 흐르고 있다. 브렌다 할라데이의 소울풀한 목소리가 노래하는 발라드의 평온함과는 동떨어진 상황 때문에 공간에 흐르는 긴장이 더 크게 느껴진다.


Hocus Pocus

FOCUS

위기 국면에 접어든 이상, 박사 일행의 은행털이 작전이 순탄히 흘러갈 리가 없다. 뱃츠, 버디(존 햄), 달링(에이사 곤잘레스)이 돈가방을 들고 차에 타지만, 베이비는 운전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뱃츠를 죽게 만든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베이비와 버디-달링 커플은 각자 도망친다. 네덜란드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포커스(Focus)의 'Hocus Pocus'는 베이비의 만만치 않은 도주 과정 내내 빵빵하게 울리면서 박진감을 높인다. 한 곡 안에 다채로운 구성이 혼재된 프로그레시브록 답게 내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숨을 고르기도 하고 쇼핑몰에 숨어 범인이 아닌 척 여유롭게 걷는 대목까지 죄다 아우를 수 있는 음악 활용이 돋보인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시퀀스에 맞춰 원곡의 구성을 재조합해서 얻어낸 성과다.


Never, Never Gonna Give Ya Up

BARRY WHITE

뱃츠가 식당에서 데보라를 죽이려고 했던 신에서 예감했던 것처럼, <베이비 드라이버>의 절정은 데보라의 식당에서 시작된다. 돈가방을 들고 도주한 베이비를 찾아내고자 버디가 데보라의 식당에 찾아온 것. 베리 화이트의 소울 넘버 'Never, Never Gonna Give Ya Up'은 이 신의 처음과 끝을 완전히 장악한다. 드럼이 찰랑대는 도입부는 베이비가 식당에 들어서는 모습에 딱이고, 드디어 세 사람이 서로 시선을 맞출 땐 베리 화이트의 그윽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날카롭게 유영해 불안하게 들리는 스트링은 커피조차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데보라의 불안은 부풀리지만, 이 노래의 제목이 '결코, 결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걸 떠올리면 이 긴장 속에서 베이비가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갈지 기다리게 된다. "음악은 끝났어" 하면서 노래를 끄는 버디가 원망스러울 만큼 근사한 노래다.


Brighton Rock

QUEEN

퀸은 에드가 라이트가 특히 사랑하는 밴드 중 하나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퀸의 'Don't Stop Me Now'를 아주 중요하게 사용한 데 이어,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Brighton Rock'을 무려 두 신에 배치했다. 처음은 작전 회의를 위해 모인 베이비와 버디가 아이팟 속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베이비와 버디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 베이비의 킬러 트랙인 'Brighton Rock'을 나눠 듣는다. 버디는 "그 노래 기타 솔로 죽이지. 어릴 때 형이 <Sheer Heart Attack> 앨범을 크게 틀어 놓곤 했거든" 이라면서 아주 즐겁게 노래를 듣는다. 그 다음에 나오는 'Brighton Rock'은 전혀 다르다. 베이비와 버디가 마지막 결투를 벌이는 대목에 쓰이기 때문이다. 물귀신처럼 베이비 커플을 추격해온 버디는 차를 몰고 총을 갈긴다. 버디가 죽인다고 했던 기타 솔로가 펼쳐질 때, 베이비와 버디는 서로 쫓고 쫓기며 주차장을 질주한다. 퀸의 세 번째 앨범 <Sheer Heart Attack>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Brighton Rock'는 5분 남짓한 러닝타임에 브라이언 메이(Brian May)의 기타 솔로만 3분 넘게 담겨, 브라이언 메이의 거의 모든 콘서트에서 연주되어 온 명곡이다.


Baby Driver

SIMON & GARFUNKEL

영화 제목 'Baby Driver'는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곡을 아는 이들이라면 언제쯤 'Baby Driver'를 썼겠지 하면서 기다릴 텐데, 아니나 다를까, 에드가 라이트는 영화 마지막을 'Baby Driver'로 장식한다. 버디와의 혈투 끝에 베이비는 자수해서 감옥에 가지만, 영화는 결국 베이비가 출소해 다시 데보라를 품에 안는 거로 끝나면서 해피 엔딩에 마침표를 찍는다. 한국에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로 널리 알려진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수록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마지막 앨범에 속한 'Baby Driver'는, 평범한 집에서 편하게 살지만 실은 모험을 원하는 소년이 첫경험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는 노랫말을 유쾌하게 풀어낸 노래다. 단 한시도 상쾌함을 놓지 않는 노래가 베이비와 데보라의 재회를 축복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