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여파로 굵직한 신작들이 죄다 개봉을 미루면서 과거의 명작들을 어렵지 않게 멀티플렉스에서 만나는 요즘, 왕가위 영화 리마스터링 재개봉 러쉬가 계속되고 있다. 왕가위 리마스터 기획의 물꼬를 튼 <화양연화>에 이어 또 다른 대표작 <중경삼림>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했다. 왕가위에 관한 사실들을 정리했다.


**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손꼽히는 왕가위는 사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문화혁명이 중국에 미칠 영향을 내다보고 그가 다섯 살 때 (영국령) 홍콩으로 이주했다. 국경이 닫히는 바람에 나중에 홍콩으로 오기로 했던 형, 누나를 10년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공심대소야>(1983) / <신용향쌍포 2>(1985) / <최후승리>(1987)

** 어머니를 따라 자주 극장에 가서 어릴 적 유일한 취미가 영화 보기였다. 학창시절에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학부에서도 그걸 전공했지만, 졸업 후에는 방송국 TVB에 입사해 80년대 초반부터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TV드라마와 영화 통틀어 10개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공식적으론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 컬러 활용을 비롯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담가명 감독의 <최후승리>(1987)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고, 이듬해 감독 데뷔작 <열혈남아>(1988)를 발표했다. 홍콩 영화계가 호황이었던 덕분에 신인감독들이 대거 데뷔할 수 있던 시기였다. <열혈남아>는 왕가위가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들의 제작자이자 배우였던 등광영 감독이 설립한 ‘인 기어’에서 제작한 작품.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1986)의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인해 갱스터 영화가 단연 영화계 주류였고, 왕가위 역시 대세를 따랐다. 다만 왕가위가 초점을 맞춘 건 ‘액션’이 아닌 ‘젊음’이었다. 등광영의 영향력 덕분에 첫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등 당시 홍콩 최고 청춘스타들을 캐스팅해 청춘의 표상을 그려낼 수 있었다.

<열혈남아>의 유덕화와 장만옥

<아비정전>

** 본래 <아비정전>은 연작의 첫 파트로 계획됐지만 개봉 당시 박스 오피스의 저조한 성적 때문에 결국 후속편은 제작되지 못했다. 양조위가 연기한 마지막 장면 속 이름 없는 남자가 2부의 주인공이었을 거라고.

<아비정전>

** 쿠엔틴 타란티노는 미라맥스의 자회사인 배급사 ‘롤링 썬더’를 운영하면서 <중경삼림>(1994)을 미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북미판 DVD엔 타란티노가 <중경삼림>을 소개하는 서플먼트도 담겨 있다. 왕가위가 영미권 관객에게 널리 알려진 게 타란티노의 공이 크다고 할 만하다.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소나티네>(1993)는 ‘롤링 썬더’가 배급한 또 다른 아시아 영화다.

** 왕가위는 1994년 신작 두 편을 내놓았다.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이다. <중경삼림>은 7월 14일, <동사서독>은 9월 17일에 개봉했다. 사실 <동사서독>은 1992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홍콩 최고 스타들이 죄다 모인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빠듯한 제작비와 왕가위 특유의 무계획적인 촬영 방식 때문에 오랫동안 지연을 거듭했다. <중경삼림>은 왕가위가 몇몇 장면의 사운드를 보완하고자 홍콩에 돌아와 두 달간 휴식을 가졌을 때 촬영한 작품이다. 왕가위는 머리 식힐 겸 만든 영화인 <중경삼림>을 ‘학생 영화’처럼 만들었고, 촬영에만 23일, 완성까지 딱 6주가 소요됐다.

<동사서독>

** <동사서독> 제작이 계속 지연되면서 홍콩 톱스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어정쩡해진 배우들의 상황도 고려하고 제작비도 벌 겸, <동사서독>의 프로듀서였던 유진위 감독은 그 배우들 그대로 데리고 설날 특수용 코미디 영화 <동성서취>를 날림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1993년 설날 시즌에 개봉한 <동성서취>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결국 <동사서독>을 완성하는 데에 보탬이 됐다.

<동성서취>

** 왕가위는 영화 완성을 오랫동안 지연시키는 거로 악명 높다. <중경삼림>은 개봉 당일까지 붙들고 있다가 극장들에 완성본을 늦게 전달하는 바람에 시내에서 거리가 먼 극장에선 제대로 된 엔딩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80분 분량이 상영된 극장의 관객은 경찰 663(양조위)과 페이(왕페이)가 헤어지는 비극이라고 여겼고, 더 먼 극장에서 70분짜리만 본 관객은 “훌륭한 예술영화구나” 생각했다고. <중경삼림> 때문에 홍콩에서 모든 필름이 도착하기 전까지 상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중경삼림>

** 다섯 번째 영화 <타락천사>(1995)는 사실 <중경삼림>의 세 번째 파트로 구상됐던 이야기다. 왕가위 스스로도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3시간짜리의 한 영화와도 같고, 두 작품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성무가 연기한 하지무는 두 영화를 묘하게 가로지르는 캐릭터다. <타락천사>의 하지무는 어릴 적에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을 먹고 실어증에 걸린 남자고, <중경삼림>의 하지무는 유통기한이 자기 생일인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만 사는 사복 경찰로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는 명대사를 내뱉는다. <타락천사> 하지무의 죄수 번호와 <중경삼림> 하지무의 경찰 번호는 일치한다.

<타락천사>와 <중경삼림>의 금성무

** 왕가위 특유의 비선형적인 스토리텔링은 아르헨티나의 명작가 마누엘 푸익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에서 영향을 받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찍은 <해피 투게더> 촬영 당시 가제 역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 표지 / <해피 투게더> 포스터

** <화양연화>의 영어 제목을 ‘Secrets’로 붙이려고 했으나, 후반 작업 중에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가 1999년에 발표한 커버곡 ‘I'm in the Mood for Love’를 듣고 ‘In the Mood for Love’를 결정했다.

** <화양연화> 촬영은 본래 베이징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완성된 시나리오를 요구했고, 결국 마카오로 촬영지를 변경했다. 왕가위는 끝내 시나리오를 쓰지 않은 채 무려 15개월 동안 촬영이 진행됐고, 칸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기 일주일 전까지 편집을 붙든 끝에 완성될 수 있었다.

<화양연화>

** 칸 영화제가 유독 사랑하는 감독들 중 하나다. 데뷔작 <열혈남아>가 감독주간 부문에서 상영되긴 했지만, 경쟁부문에 초청된 건 여섯 번째 영화 <해피 투게더>(1997)부터. <해피 투게더>로 중화권 감독 최초로 칸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화양연화>(2000), <2046>(2004),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7)가 연이어 경쟁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쳤다. 2006년엔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그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만장일치로 선택된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었다.

2000년 칸 영화제, <화양연화> 팀

<일대종사> 현장의 장숙평

** 미술감독 장숙평과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왕가위의 영화 세계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다. 장숙평은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부터 최신작 <일대종사>(2013)까지 미술감독으로 이름을 올렸고, 편집과 의상(<화양연화>의 장만옥의 치파오 역시 그의 솜씨다!)까지 도맡아오고 있다. 왕가위 영화 팬들이 그 눈부신 비주얼에 탄복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장숙평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겠다. 호주 출신이지만 주로 아시아 감독들과 작업해왔던 크리스토퍼 도일은 왕가위 스스로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아비정전>부터 <2046>까지 카메라를 관장했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8)는 다리우스 콘지, <일대종사>는 필립 르 솔드가 촬영감독을 맡았다.

크리스토퍼 도일과 왕가위

** 그렇다면 왕가위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누구일까? 예상 가능하듯, 양조위다. <아비정전>부터 왕가위 영화에 얼굴을 비춘 양조위는 <동사서독>,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2046>, <일대종사> 등 총 7편을 협업했다. 그는 장만옥과 함께한 <화양연화>를 통해 홍콩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홍콩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홍콩영화금상장에서 모두 5번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그중 네 작품이 왕가위의 영화였다.

<화양연화>, <일대종사>의 양조위

** 왕가위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아이템. 바로 선글라스다. 세간에 공개된 왕가위는 언제나 새카맣고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영화평론가 존 파워스가 왜 항상 선글라스를 쓰는지 물었고, 왕가위가 대답했다. “선글라스를 쓰면 상황에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어요. 일종의 암실 같은 거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처신도 잘하고, 행동도 자연스러워요. 전 그러질 못해요. 특히 영화 촬영 현장에선 처리할 게 너무도 많은데, 그럴 때 적절하게 대응할 시간을 1초 2초라도 벌어줄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장국영과 왕가위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