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과 스트리밍 업체들의 신작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특히 디즈니 플러스는 <완다비전>, <팔콘 앤 윈터솔져>를 공개하며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영화의 부재를 아쉬워했던 팬들을 다시 열광시켰다. 이처럼 만화, 즉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을 각색한 작품들은 그림 속 다양한 인물을 지구 어딘가에 실존하는 사람처럼 적절히 변형시키고 구체화하며 원작과 차별화된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5편의 드라마 또한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다. 국내에도 원작 만화가 정발된 경우가 있으니 원작과 TV 시리즈를 서로 비교하며 본다면 즐기는 맛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The Umbrella Academy)

<엄브렐러 아카데미>

넷플릭스의 대표 히어로물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프론트맨 제라드 웨이와 가브리엘 바가 공동 집필한 인기 코믹스에 뿌리를 둔다.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나고 한 억만장자에게 입양되어 자란 슈퍼히어로 7남매가 세계 종말을 막기 위해 벌이는 엉망진창 고군분투를 다뤘다. 시즌 1 방영 후 한 달 동안에만 무려 45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끌어 모으며 2019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작품으로 꼽혔고, 소셜미디어 상에서 막강한 팬덤이 형성되는 등 지금까지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4부작이면 끝날 얘기를 10부작으로 끌었다”며 질질 늘어지고 엉성한 전개를 비판하기도 했으나,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강렬하고 배우들이 이를 워낙 잘 표현한 만큼 그러한 인기는 당연해 보인다. 2월경 촬영이 시작된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3의 방영 시기는 2022년 상반기로 추정된다. 시즌 2 피날레에서 어렵게 현재로 돌아온 하그리브스 7남매 앞에 또 다른 초능력자 가족 ‘스패로우 아카데미’가 나타난 만큼 훨씬 시끌벅적한 전개가 기대된다.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Warrior Nun)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넷플릭스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는 벤 던의 그래픽 노블 <워리어 넌 아렐라>를 각색한 작품으로 여성 서사에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난다. 고대 유물 헤일로의 힘으로 죽음에서 되살아난 소녀가 수녀들로 구성된 비밀 결사대에 가입해 악마와 싸운다는 줄거리는 <콘스탄틴> 등 기존 퇴마물과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사로서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는 수녀들을 통해 종교적 색채를 한층 강화했고, 험난한 과거로 인한 상처를 서로 보듬고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한 움큼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주인공 에이바를 맡은 포르투갈 출신의 신예 알바 밥티스타의 연기는 때로 발랄하면서도 무거운 숙명을 진 채 성장해야 하는 새 히어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2020년 7월 초 공개된 후 한 달 만인 작년 8월 후속 시즌 제작이 확정됐으나, 시즌 2 방영 시기에 대해 알려진 소식은 없다.


왓치맨(Watchmen)

<왓치맨>

앨런 무어와 데이브 기번스가 공동 집필한 DC코믹스의 대표작 <왓치맨>은 2009년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로 먼저 관객을 찾아왔다. 그러나 영화 버전은 잭 스나이더 특유의 빼어난 영상미로도 원작의 극도로 섬세하고 우울한 감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그래도 훗날 공개된 감독판과 최종판(Ultimate Cut)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정확히 10년이 지난 2019년, HBO는 레지나 킹, 돈 존슨, 제레미 아이언스, 아히아 압둘-마틴 2세, 홍 차우 등 신구 배우들을 포진시킨 <왓치맨> 리미티드 시리즈를 선보였다. 1화 시청자만 15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HBO의 역대 최고 1화 성적을 갱신했고, 로튼토마토에서도 96%에 달하는 신선도를 획득했다. 시스터 나이트 역의 레지나 킹은 2019년 말~2020년 초 에미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등 각종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드라마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시즌, 시리즈온에서 VOD 구매로 이용 가능하다.


로크 앤 키(Locke & Key)

<로크 앤 키>

넷플릭스 호러 판타지 <로크 앤 키>의 원작 그래픽 노블은 스티븐 킹의 아들로도 유명한 조 힐이 스토리를, 가브리엘 로드리게즈가 작화를 맡아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한 가족이 아버지의 기이한 죽음 이후 유산으로 남겨진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삼남매가 집안 곳곳에서 수상한 열쇠들을 찾아내면서 사악한 힘과 불가피한 대결을 펼치는 과정이 제법 으스스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로크 앤 키>는 배우들의 열연과 시각 효과, 음악, 세트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찬사를 받았는데, 2016년 <기묘한 이야기>가 처음 방영됐을 때에 비견될 정도였다. 또한 <로크 앤 키>는 시즌 2가 아직 방영되지도 않았는데, 지난해 시즌 3까지 연달아 제작이 확정됐다. 로크 가족이 과연 새 시즌에서 과거의 트라우마와 강력한 악의 기운을 이겨내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 아니면 상상도 못했던 더 끔찍한 무언가가 찾아올지 주목된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ing World)

<빌어먹을 세상 따위>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찰스 포스먼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동반 가출로 시작된 사이코패스 소년과 반항적인 소녀의 사랑을 그린 ‘하이틴 다크 코미디’다. 포스먼의 또 다른 대표작 <아이 엠 낫 오케이> 역시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됐는데, 이쯤 되면 청소년 서사에 유독 강한 넷플릭스와 궁합이 잘 맞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가족과도,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어울리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두 10대가 서로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모든 일탈과 고난을 함께 하는 과정은 진지하면서도 사뭇 유쾌하다. 시즌 2가 완전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만큼, 무서우면서도 귀여운 제임스-앨리사 커플을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들다는 게 이 작품의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에그테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