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서복>, <자산어보>

공격적, 전투적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TVING)의 몸집 불리기를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국내 대표 OTT 플랫폼의 왕좌를 꿰차기 위한 티빙의 질주가 매섭다. CJ ENM 이명한 본부장을 티빙 공동대표 자리로 옮기며 대대적인 콘텐츠 개혁에 들어간 티빙은, 티빙에서만 볼 수 있는 독점 콘텐츠들을 하나씩 공개하기 시작하며 콘텐츠 강화에 들어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왓챠 익스클루시브, 웨이브 오리지널에 이어 이젠 티빙 오리지널(Original), 티빙 온리(ONLY)의 시대가 밝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더욱이 독점 콘텐츠의 라인업이 꽤 화려하다. <여고추리반> <신서유기 스페셜 스프링캠프> <아이돌 받아쓰기 대회> 등 나영석을 필두로 한 tvN 스타 PD들이 선보이는 독점 예능 콘텐츠가 단연 눈에 띈다.

이와 함께 티빙은 영화 라이브러리 구축에도 각별히 힘을 쓰고 있는 눈치다. 이례적으로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 공개한 티빙 첫 오리지널 영화 <서복>에 이어, 오로지 티빙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티빙 온리' 영화로 <자산어보>가 5월 20일 월정액으로 독점 공개되며 티빙 가입자는 무료로 볼 수 있다. 예능과 드라마 분야에 제한되지 않고 영화 콘텐츠 풀 역시 넓혀가겠다는 포부가 엿보이는 지점. 티빙이 제 이름을 내걸고 선택한 독점 영화 콘텐츠, 팬데믹 시대 꿋꿋하게 개봉을 결심한 <서복>과 <자산어보>가 티빙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무얼까. 찬찬히 살펴보니 어째 닮은 점이 많아 보이는 두 작품. <서복>과 <자산어보>를 나란히 비교해가며 두 작품의 매력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산어보>는 5월 20일부터 티빙(TVING)을 통해 월정액 독점 공개됩니다.


(왼쪽부터) <서복>, <자산어보>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을 결심한 유의미한 두 작품

1 평행이론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까. <서복>과 <자산어보>는 어려운 시기, 아니 비슷한 시기에 극장을 찾았다. 3월 31일 먼저 관객을 찾은 <자산어보>의 뒤를 이어 2주 뒤 <서복>이 개봉했다. 한국 영화, 특히나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국내 영화들이 주춤주춤 개봉을 망설이는 상황 속 두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을 감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산어보>가 끌고 <서복>이 밀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두 작품은 침체된 한국 영화계를 되살리기 위해 뚝심 있는 결단을 내렸다. '선방했다'라는 말이 어쩐지 좀 씁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두 작품은 아쉬운 흥행 스코어에도 불구 관객과 평단의 고른 호평을 끌어냈다.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다면, 100만 스코어는 거뜬히 넘었을 작품들이기에 <서복>과 <자산어보>를 향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기자뿐만이 아니리라. 어려운 시기 속 유의미한 성적을 거뒀다는 점에서 어쩐지 <서복>과 <자산어보>는 전우애를 공유한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으쌰으쌰 하는 심정으로 국내 극장가를 견인한 두 작품이 이젠 티빙을 이끌 선두주자로 손을 잡았으니. 이 역시 남다른 인연이다.


<서복>

── 친구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동행을 그린다

2 <서복>과 <자산어보>를 동시에 떠올리며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쳐 간 생각. 두 작품의 스토리적인 재미는 친구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이 서서히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서복>과 <자산어보> 모두 친구가 될 수 없는 캐릭터들의 동행을 핵심 설정으로 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비교하기 흥미로운 지점을 맘껏 내어준다. 우선 <서복>.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을 극비리에 옮기는 임무를 맡게 된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과 서복(박보검)의 동행을 그린 <서복>의 두 캐릭터는 애초부터 어긋난 관계다.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기헌이 서복을 안전한 곳에 옮기라는 지시에 순순히 응한 건 서복의 줄기세포를 통해 제 죽음을 늦출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무슨. 기헌은 서복을 그저 '복제된'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물론, 기헌은 서복과 함께 여러 장소를 거닐며 죽음에 대해, 그리고 서복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하는데. 우정의 '우'자도 찾아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이 마음을, 힘을 합치기 시작하며 <서복>은 스토리적인 재미를 부풀린다.

<자산어보>

기헌과 서복이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이유가 인간과 비인간(非人間)사이. 다소 본질적인 영역에 고여있었다면, <자산어보>의 정약전(설경구)과 창대(변요한)가 마주한 관계의 벽은 신분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는 모든 면에서 끝과 끝에 놓여있는 캐릭터다. 나이는 물론이거니와 신분, 살아온 방식과 지역, 심지어는 삶의 지향점마저 다르다. 흔한 말로 상극(相剋)인 두 사람은 일종의 거래를 통해 의도치 않은 연대를 시작하는데. 흑산으로 유배되며 어류학서를 집필하고 싶었던 정약전은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며 창대를 꾄 것이다. 그렇게 두 인물은 주거니, 받거니를 계속하며 점차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이자 친구가 되어간다. "이질적인 관계가 동질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마따나 <자산어보>는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의 연대를 조명하며, 지극히 다른 두 사람이 손을 잡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극적인 재미로 승화한다. 친구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우정과 연대라는 역설적인 설정을 묵직하게 풀어냈다는 것. <서복>과 <자산어보>가 공유하는 가장 주요한 지점이다.


<서복> 공유, 박보검

── 공유와 박보검 그리고 설경구와 변요한

3 <서복>과 <자산어보>를 향한 관심의 대부분은 공유와 박보검, 설경구과 변요한의 만남이 어떻게 그려질지에 있었다. 소위 '브로맨스' 혹은 '남남케미'가 지대한 관람 포인트로 손꼽혔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서복>과 <자산어보> 모두 배우들의 합에 큰 빚을 진 작품으로 남게 됐다. <서복>은 사실 구구절절한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다, 공유와 박보검의 얼굴합. 수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두 사람의 얼굴을 한 화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복>은 제 소임을 다한 듯 비춰졌다. 역시나 영화를 까보니 두 사람의 '비주얼 케미'는 완벽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공유와 박보검은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메시지를 다루는 <서복>이 그저 무거운 영화가 되지 않도록, 아기자기한 케미를 만드는 데도 극진히 신경을 썼다. 까칠한 기헌과 직설적인 화법의 서복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마음을 내어 보이는 과정을 통해 극의 분위기를 가볍게 환기하는 데 성공했다. SF 장르임에도 불구, <서복>에 감성적인 자국이 덕지덕지 남은 데엔 공유와 박보검의 공이 컸다는 말과도 같다.

<자산어보> 변요한, 설경구

<서복>의 브로맨스가 맨들맨들한 무언가에 가까웠다면, <자산어보> 설경구와 변요한의 합은 좀 더 거칠거칠하다. 요즘 말로는 좀 더 '찐친(진짜 친구)' 케미스트리가 느껴진다고 할까나. 이를테면 이런 거다. <서복>이 소소한 사건들을 매듭지으며 두 사람의 관계를 조명한다면, <자산어보>는 날 것 그대로의 상황에 놓인 설경구와 변요한의 상반된 입장, 충돌을 통해 발전하는 관계를 그린다. 그렇기에 <자산어보>는 설경구과 변요한, 서로가 부딪히는 에너지, 대조되는 연기톤이 관건이었는데. 설경구과 변요한은 캐릭터의 다름을 때론 기품있게, 때론 한없이 뜨겁게 분출하며 정반대의 두 캐릭터가 친구가 되어가는 우정 서사를 완벽히 설득시켰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깊어진다'는 영화의 메시지에 고개가 끄덕여졌던 것 역시 두 배우의 확연한 온도 차 덕분이었을 터. 이렇듯 배우들의 연기합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활용된 <서복>과 <자산어보>는 두 명의 남성 배우를 중심에 세워두고, 브로맨스를 내세웠다는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공유와 박보검, 변요한과 설경구라는 배우 본체가 가진 특별한 기운들을 완벽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박수받아 마땅한 작품들이다.


(왼쪽부터)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변요한, 이정은, 설경구

── 이용주 감독과 이준익 감독의 '도전'

4 배우들의 이름도 이름이지만, <서복>과 <자산어보>는 만든 이, 감독의 이름에도 눈길이 가는 작품들이다. 더 나아가 두 작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두 감독의 야심이 그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 팬이라면, 해당 감독들의 팬이라면 꼭 챙겨봐야 할 '필람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먼저 <자산어보>를 만든 이준익 감독. 스스로를 '역덕(역사를 사랑하는 팬)'이라 칭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사극으로 꽉꽉 들어차 있다. <왕의 남자> <사도> <동주> <변산> 등 우리가 잘 알만한 사극들을 빼어나게 성공시킨 그가 또 한 편의 사극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럼에도 그 속엔 이준익 감독만의 또 다른 야심과 도전이 녹아있다. 바로 '사건'이 아닌 '사연'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비교적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다뤘던 이준익 감독이 <자산어보>에선 역사 속 일상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게 영화가 될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을 만큼 러닝타임 내내 방향키를 휙휙 돌려대는 큰 사건은 없지만, 소소한 사건과 인물을 통해 조선의 근대성을 선명하게 투영했다.

(왼쪽부터) <서복> 조우진, 장영남, 이용주 감독, 공유

반면, <서복>은 이용주 감독의 장르적 도전이 빛나는 작품이다. 데뷔작 <불신지옥>(공포)을 지나 <건축학개론>(로맨스) 그리고 <서복>에 이르기까지. 매번 새로운 장르를 꺼내 보인 이용주 감독은 <서복>을 통해 복제인간, SF 장르에 발을 담갔다. 무엇보다 <서복>은 SF라는 외피를 활용해 이용주 감독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꾹꾹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용주 감독은 <서복>을 자신의 데뷔작으로 여길 정도라고. 쉽사리 제 전철을 밟지 않는, 편안함을 경계하는 두 감독의 도전과 야망. <서복>과 <자산어보>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었으리라.


<자산어보>

<서복>

──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 그리고 디테일

5 티빙에서 만나볼 수 있는 두 작품을 소개하면서, "두 영화는 큰 화면으로 봐야 참 좋은 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쩐지 앞뒤가 맞진 않으나. <서복>과 <자산어보>가 지닌 공간의 힘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선 모바일보단 노트북, 노트북보단 TV로 두 작품을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서복>과 <자산어보>는 공간 곳곳을 뜯어보는 혹은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에서도 닮아있다. <서복>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공간은 서복이 살고있는 집이다. 인위적으로 인간을 복제하는 실험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서복의 집' 안엔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바다, 새, 나무, 꽃들이 곳곳에 놓여있어 더욱이 기괴하고 냉랭한 느낌이 든다. 노아의 방주 같은 선박 안 실험실이 이런 모습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서복>의 세트장은 <기생충>을 완성한 이하준 미술감독이 손길로 완성됐다. <서복>이 세트장의 설계 디테일을 감상하는 데 흥미로운 작품이라면, <자산어보>는 자연 풍광만이 담아낼 수 있는 광활함이 빛나는 영화다. 흑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자산어보>는 별빛이 쏟아지는 바다, 부서지는 바다의 새하얀 포말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동주>가 그랬듯, <자산어보>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인간 삶의 질감 하나하나를 온전히 담아내는데, 그리고 그것을 흑과 백으로 표현하는데 이준익 감독이 얼마나 탁월한 연출자인지 말이다.


<자산어보>

(왼쪽부터) <서복> 조우진, 장영남, 박병은

── 꽉 들어찬 조연 배우들의 얼굴들

6 두 작품은 빈틈없는 캐스팅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공유와 박보검, 설경구와 변요한만으로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라인업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이준익 감독과 이용주 감독은 극 사이사이를 메꿔줄 훌륭한 조연진들 꾸려 카메라 앞에 세웠다, 아니 모셨다. 특히나 <자산어보>는 비교적 적은 예산인데도 류승룡, 동방우, 정진영, 김의성, 조우진, 최원영, 윤경호 등이 자발적으로 힘을 합치며 완벽한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자칫하면 관객들을 심심하게 만들 수도 있는 흑백 화면에도 <자산어보>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던 건, 이름만 들어도 색깔이 뚜렷한 명배우들의 열연 덕분이었으리라. <자산어보> 못지않게 <서복> 역시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자산어보>에도 이름을 올린 조우진부터, 장영남, 박병은, 김홍파 등 묵직한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진 <서복>은 매 장면 반가운 얼굴들의 명연이 펼쳐진다.


<서복>

<자산어보>

── 결국은 우리에게 묵직한 물음표를 던지는

7멀리 돌아왔지만, <서복>과 <자산어보>는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묵직한 그리고 중요한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다. 복제인간을 통해 윤리적인 문제가 아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조명한 <서복>의 이용주 감독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미를 떠올리게 했고. 배움의 길이 다른 두 주인공을 중심에 세운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은 배움이란 누굴 위한 것인가,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낭만적으로 되물었다. 어쩐지 영화를 보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더욱 눅진하게 떠오르는 두 영화의 질문은 <서복>과 <자산어보>를 쉽사리 휘발되지 않는 작품으로 남게 했다. 그저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그저 볼거리가 가득한 영화도 좋지만. 삶과 죽음, 배움과 가르침의 고민을 다시금 곱씹고 싶은 이들이라면 <서복>과 <자산어보>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