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의 집> 파트 1~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이의 집>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사방에 벽이 있을 뿐 전쟁 영화나 다름없다.” 베를린을 연기한 페드로 알론소는 <종이의 집> 파트 5를 이렇게 소개했다. 강도단과 경찰 사이의 두뇌 싸움 수준은 한참 전에 지났다. 자유와 저항을 구하는 이들의 전쟁, 그 끝엔 뭐가 남아 있을까. 지난 시즌에서 강도단은 나이로비(알바 플로레스)를 잃었지만, 리스본(아치아르 이투뇨)을 경찰로부터 구출하면서 고비를 넘기는 듯했다. 시에라 경감(나지와 님리)이 교수(알바로 모르테)의 거처를 알아내고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기 전까진. 이들은 3년 전 조폐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립은행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의 효자 시리즈 <종이의 집>은 설계자 ‘교수’와 강도단의 인질극을 그린다. 파트 1과 2에서 이들은 스페인 조폐국을 장기 점거해 9억 유로를 찍어 밖으로 빼냈고, 파트 3부터는 국립은행 지하에 보관된 90톤의 금을 터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 작전의 결말을 포함할 다섯 번째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 <종이의 집> 파트 5는 오는 9월 3일과 12월 3일 1부와 2부로 나뉘어 공개된다. 씨네플레이는 작품을 만나기에 앞서 촬영 현장에 초대받았다. 보통 같았으면 마드리드로 날아가 직접 세트를 방문했겠지만, 팬데믹 상황에 달리 방법이 없어 아쉽게도 온라인으로 함께해야 했다.

교수가 추적을 피해 경찰과 통화할 수 있도록 돕던 외부조력자, 마르세유를 연기한 루카 페로시가 현장을 안내했다. 교수 역의 알바로 모르테, 스톡홀름 역의 에스테르 아세보, 베를린 역의 페드로 알론소. 코스튬 디자이너 카를로스 디에스와 미술감독 아브돈 알카니스. 페로시를 따라 세트 곳곳에서 <종이의 집> 파트 5의 핵심 멤버 5명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한 촬영장 가상 방문기를 독자에게 전한다. 촬영장을 돌아보고 나서는 <종이의 집> 세계관을 만든 두 주역, 총괄 프로듀서 알렉스 피나와 감독 헤수스 콜메나르를 만났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아래 링크로 확인하자.


빨간 점프수트만 500벌을 만들었다

코스튬 디자이너 ┃ 카를로스 디에스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빨간 점프수트, 달리 가면, ‘벨라 차오’(Bella Ciao), 도시 이름. <종이의 집>의 인기에 한몫한 장치들이다. 이 중에서도 점프수트와 가면은,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시리즈를 있는 그대로 상징하게 되었다. 페로시가 첫째로 보여준 공간은 <종이의 집>의 모든 코스튬을 보관한 의상실이었다. 옷걸이로 가득한 의상실의 반절 이상을 이 빨간 의상이 차지했고, 이 옷은 코스튬 디자이너 카를로스 디에스가 만들었다. 디에스가 말하기를, “파트 1, 2의 점프수트는 지금 입는 것과 다르다. 파트 3, 4, 5용으로 다시 디자인했다. 점프수트만 500벌쯤 만든 듯하다.” 새 디자인의 수트를 만들었다고 지난 것을 버릴 수도 없었다. “방영 순서대로 촬영하지 않았고 각본팀이 어느 순간에 어떤 플래시백을 삽입할지 모르기에, 의상을 전부 보관하고 있어야 했다. 어떤 건 깨끗하고, 어떤 건 조금 지저분하고, 어떤 건 아주 지저분하고, 어떤 건 피가 조금 묻어 있고, 어떤 건 피로 완전히 물들어 있고… 배우당 못해도 여덟 벌씩은 준비해야 했다.”

강도단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아닌 멤버가 있다. 마르세유의 애완 흰담비 소피아다. 파트 3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소피아가 능수능란하게 경찰을 교란하던 때만큼은,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는 도쿄(우르술라 코르베로)나 팔레르모(로드리고 데 라 세르나)보다도 대견해 보였다. 이때 소피아는 다른 멤버들처럼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의상실에서 우리는 소피아의 점프수트도 볼 수 있었는데. 후드가 달린 이 작은 옷은 디에스가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들었다고 한다. 듣고 있던 페로시는 촬영을 하며 소피아에게 여러 번 물렸다며 여담을 더하기도 했다.

강도와 인질 모두가 같은 옷을 입었지만, 그렇다고 다 같은 모습을 한 건 아니다. 캐릭터들은 옷매무새를 달리하고 있거나 저마다의 무기를 끼고 있다. 알바 플로레스가 누누이 말했다. 그가 연기한 나이로비는 강도가 되지 않았다면 보석상이 됐을 거라고. 디에스는 극에 등장하는 액세서리로 탁자 하나를 꽉 채워 보여주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나이로비의 것이었다. 나이로비는 강도 작전 중에도 액세서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벨트 버클을 펜던트로 한 목걸이부터 브로치, 반지 등이 있었다. 나이로비 하면 떠오르는 소품이 하나 더 있다. 검수를 담당하던 그가, 지폐의 워터마크를 살필 때 썼던 단안경이다. 이날 단안경의 실물은 볼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플로레스가 이것을 아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금까지 긴박하게 흐르는 플롯에만 집중해 극을 따라갔다면, 새 시즌을 맞이하기에 앞서 전 시즌을 복습하며 디에스의 정성이 깃든 디테일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겠다.

시청자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국립은행 세트 속 트릭들

미술감독 ┃ 아브돈 알카니스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이탈리아, 포르투갈, 콜롬비아, 파나마, 인도네시아, 태국, 그리고 스페인. 파트 3의 첫 에피소드, 단 한 화에서 다룬 나라들이다. 조폐국 강도 종료 후 새 국면에 들어선 <종이의 집>은 세계를 확장했다. 안전가옥에 숨어 지내던 리우(미겔 에란)가 경찰에 잡히고 강도단이 새 작전에 돌입하면, 마드리드는 다시 사건의 구심점이 된다. 페로시가 다음으로 안내한 공간은 스페인 국립은행 세트다. 입구와 중앙 계단 사이, 온갖 예측 불허의 일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아브돈 알카니스 미술감독을 만났다. 조명의 장식, 난간의 철조, 은행 엠블럼. 크기나 중요도와 관계없이 세트를 구성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창조한 이가 그와 그의 동료들이다. 알카니스는 <종이의 집>의 미술이 신표현주의 예술 운동에 기반을 두었다고 했다. “극 중 어떤 캐릭터가 “파티할까?”라고 한다. 파티는 무슨. 그 말은 곧 “다 날려버리자”는 거다. 신표현주의는 폭발성을 주요 가치로 삼았고, 이는 <종이의 집>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빨간색은 분노와 열정, 광기를 상징한다.” 색은 그 자체로 폭발성을 함의하며, “빨강이 돋보이도록 세트의 채도를 낮췄고 이러한 설정의 총체가 시청자의 무의식에 스며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로비에서 벗어나 은행 내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로비가 인질들의 거점이었다면, 도서관은 강도단의 거점이었다. 내분도 화합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앵글은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미술팀의 손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닿아 있었다. 2층으로 된 이 공간의 벽은 책이 메웠는데. 알카니스는 이 세트에 숨겨진 몇 가지 트릭을 밝혔다. 페로시가 책장의 책 한 권을 꺼내 들려 하자, 한 칸에 꽂혀있던 열 몇 권쯤 되어 보이는 책 뭉텅이가 딸려 나왔다. 기역자 모양으로 책등과 윗단면 부분만 있을 뿐, 종이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야 할 부분은 텅 비어 있었다. “2층에 있는 책은 전부 가짜다. 책이 꽂혀있는 모양을 주형으로 떠서 모형을 만들었다. 모형을 쓰면 하중을 줄일 수 있기에, 미적 효과와 더불어 물리적 효율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벽을 장식하는 초상화에도 이스터 에그가 숨겨져 있다. 은행을 거쳐 간 고위급 인사 정도 되는 이들의 얼굴이 걸려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림들의 주인공은 실은 <종이의 집> 제작진과 출연진이다. “미술팀 동료 파코 레히도르의 얼굴도 있고, 파트 2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모스크바(파코 토우스)를 기리는 그림도 있다. 심지어 내 얼굴도 있다.”

스포일러를 흘렸다가는 제작진 손에 죽을 거다

스톡홀름 役 ┃ 에스테르 아세보

베를린 役 ┃ 페드로 알론소

교수 役 ┃ 알바로 모르테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페로시는 세트 이곳저곳에서 한창 촬영 중인 배우들을 찾아 나섰고 우리는 몇몇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종이의 집> 제작에 있어 프로듀서가 설정한 제일 목표는 ‘사연 있는 캐릭터들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작중인물 모두의 사연이 소중하지만, 그중 가장 다이내믹한 변화를 겪은 이들이 있다. 경찰과 강도의 경계를 넘어선 전 라켈 현 리스본(아치아르 이투뇨)과, 인질과 강도의 경계를 넘어선 전 모니카 현 스톡홀름(에스테르 아세보)이다. 페로시가 첫 번째로 마주한 배우는 스톡홀름을 연기한 에스테르 아세보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덴버(하이메 로렌테)에 기대던 그는 이제 장총을 쥐고 스스로를 보호한다. 아세보는 비서에서 강도단 멤버가 된 것을 즐기고 있다며 “미친 짓을 할 용기도 생겼다”고 덧붙이다가, “너무 많이 말하면 안 되겠다”며 이내 말을 줄였는데. 그 미친 짓이란 것이 뭘 의미할지는 기다려 봐야 알겠다.

이 대규모 인질강도극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스크바, 베를린 그리고 나이로비. 이들의 죽음이 가혹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이유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종이의 집>이 지금의 사건만을 그리는 건 아니란 것이다. 현재에서 계획을 실행하는 장면과, 과거에서 계획을 설계하던 장면을 교차편집하여 보여준다. 그렇게 첫 강도 작전의 내부책임자 베를린은 파트 2의 마지막에서 희생으로 생을 마감하고도, 플래시백 속 설계자로 파트 3과 4에 등장했다. 파트 5에서도 앞 시즌과 마찬가지로 활약하리라 기대된다. 현장에서 페드로 알론소를 만났다. 그는 마지막 시즌 방영을 앞두고 4년 전 시작된 <종이의 집> 여정을 마무리하며 감회를 전했다. “들뜨지 않으려 한다. 여기 이곳에서 찍은 작품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고, 내가 그것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그걸로 감사할 뿐이다. 첫 시즌 때에는 발로 바닥을 쿵 치면 와르르 무너져버릴 법한 세트에서 촬영했다. 지금은 이런 세트에서 찍고 있다. 아직도 놀랍다.”

시리즈 내내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며 힘의 중심이 이동한다. 속도감 있는 전개는 <종이의 집>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이 되었다. 하지만 출연진이라고 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모두 미리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 교수는 그가 짠 계획에 관해서라면 그것이 일으킬 사소한 파장까지 꿰고 있지만, 알바로 모르테는 아니었다. “지금 8화를 찍고 있다. 9화와 10화의 대본은 받지 못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몰라서 힌트를 줄 수도 없지만. 만약 결말을 알았더라도 발설한다면 나는 제작진 손에 죽을 거다. 엔딩이 좋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말 못 해도, 이건 말할 수 있다. 이번 시즌은 액션이 특히 많고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넘칠 거다.” 모르테에게는 교수와 닮은 면도 있었다. 태국에서 라켈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가 다시 위험으로 뛰어든 것은 팀 때문이었다. 모르테는 <종이의 집>에 참여하며 제일 좋았던 점으로 팀과의 추억을 꼽았다. “혹독할 정도로 힘들 거란 걸 알고 뛰어들었다. 팀에 나를 맡겨야 했다. 우리는 기름칠 잘한 기계처럼 잘 맞물려 굴러갔다. 좋은 경험이었다. 작품이 흥행한 건 다 팀 덕분이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