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밝히는 순간, 나는 그 커뮤니티가 대표하는 정체성의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물론 정치 성향도 같이 따라온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일베 회원이라고 밝힌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이하 <밈 전쟁>)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느 사이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즐겨 찾는 커뮤니티에서 한번쯤 봤을 슬픈 표정의 혹은 성난 표정의 개구리 밈(meme)에 대한 영화다.

참고로 최근 밈이라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짤’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긴 하다. 짤은 디시인사이드에서 만들어졌다. 갤러리(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해당 갤러리의 성격에 맞는 사진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있었고 사진이 없으면 글이 삭제됐다. 디시 회원들은 글의 삭제를 막기 위해 짤림 방지용 사진을 넣기 시작했고 이를 줄여서 짤방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줄여 짤이라고 쓰게 됐다. 참고로 게시글에 사진을 꼭 넣어야 했던 이유는 이 사이트의 원래 이름이 디지털 카메라(Digital Camera, DC) 인사이드였으며 갤러리는 ‘디카’ 사진을 공유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30대 중후반 이상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법한 짤의 어원을 길게 설명해봤다. 말하자면 짤은 디시인사이드 사용자들이 만든 일종의 밈이다. 짤의 어원에 대한 위 글이 흥미롭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밈 전쟁>을 정말 재밌게 볼 수 있다고 장담한다. <밈 전쟁>은 개구리 페페 밈의 탄생부터 죽음, 부활까지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페페의 탄생

개구리 페페를 만든 아티스트 맷 퓨리.

누군가 개구리 페페를 그리고 있다. 항상 눈부터 그린다고 설명한다. 능숙한 솜씨로 거침없이 그림이 완성된다. 쓸데없이 ‘고퀄’인 것 같다. <밈 전쟁>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 인물은 페페의 창시자인 아티스트 맷 퓨리다. <밈 전쟁>이 맷을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시킨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밈 전쟁>은 미국에서,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밈을 만든 사람이 누구이고 그는 이 놀랍고 비참한(!) 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영화일 것이다. 다시 말해 <밈 전쟁>은 기본적으로 맷의 인터뷰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보통의 다른 다큐멘터리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견해를 밝히는 인터뷰 영상이 영화 곳곳에 삽입되기도 하지만 <밈 전쟁>의 많은 부분은 맷과 그의 파트너, 친구의 인터뷰에 기댄다. 또한 그의 인터뷰 내용과 심경을 대변하는 짧은 애니메이션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페페와 그의 친구들이다. 페페는 퓨리가 그린 만화 <보이즈 클럽>(Boys Club)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였다. 그 만화 속 이미지가 4chan(포챈)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쓰이기 시작하면서 밈으로 발전했다. 페페의 탄생과 기원을 보여주는 <밈 전쟁>의 전반부에서 아서 존스 감독은 안쓰러움을 표현하는 듯하다. 특히 미국 서부에서 파트너와 딸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맷의 일상을 비추는 영상에서 따뜻하고 동정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페페의 죽음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트럼프 대통령과 합성된 페페와 턱을 괴는 듯한 손동작의 맥락까지 설명한다.

존스 감독이 표현한 맷에 대한 안쓰러움은 페페가 죽어야 했던 이유와 관련이 있다. 국내 관객 가운데 <밈 전쟁>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페페 밈을 둘러싼 미국의 정치 상황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페페는 원작자의 의지와 다르게 변해갔다. 여기서부터 영화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주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한 페페를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혹시 그 밈을 보고 단순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밈 전쟁>은 4chan 사용자들이 우경화되는 과정과 페페 밈을 이용한 그들의 농담이 어떻게 정치, 구체적으로 미국 대선과 연결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관객에게 전달한다. 4chan의 게시글을 캡처한 이미지와 트럼프, 힐러리 후보가 맞붙은 미국 대선의 뉴스 클립 등 다양한 푸티지(Footage)가 교차로 보여지고, 트럼프 대선 캠프의 전략분석가, 미국의 극우 세력인 이른바 대안 우파들의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대안 우파는 페페를 네오나치로 만들어버렸다. 페페의 변질과 죽음을 다루는 이 부분은 국내 관객들에게도 질문을 남긴다. 서두에 쓴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내용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국내의 각 커뮤니티, 온라인 집단에는 그들만의 밈이 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네오나치가 되어버린 페페처럼 혐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몇몇 단어들과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들은 결코 단순한 농담, 신조어, 유행어가 아니다.


페페 부활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등장한 페페들.

<밈 전쟁>은 맷이 페페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을 보여준다. 맷은 인포워즈(Infowars)라는 극우 사이트를 운영하는 앨릭스 존스를 고소했다. 무단으로 페페를 혐오의 상징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소는 이어졌고 극우 단체들은 패소했다. 맷은 페페를 다시 찾아왔을까. 그렇지 않다. 밈은 저작권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국에서 페페는 절망적인 운명에 놓여 있지만 <밈 전쟁>은 희망을 전한다. <밈 전쟁>에 출연한 데일 베란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보자. 그는 4chan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를 다룬 책을 쓴 작가다. “갑자기 뜬금없이 페페가 홍콩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청년운동의 상징이 되었어요. (…) 페페가 모두의 뇌 속에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됐어요. 만화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다고들 하지만 미키 마우스보다 강력한 건 또 없잖아요. 안 그래요?” <밈 전쟁>은 페페라는 캐릭터의 탄생부터 죽음, 부활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 문화적인 측면을 탐구한 다큐멘터리다. 원작자 맷이 참여한 애니메이션,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 푸티지 영상 등이 고루 등장하며 관객에게 친절하게 페페의 여정을 보여준다. <밈 전쟁>을 보며 이상한 상상을 해봤다. 펭수가 극우의 상징이 된다면 어떨까. 펭수를 페페에 대입해보니 <밈 전쟁>은 꼭 봐야 할 작품처럼 느껴진다. 지금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혐오는 온라인에서 만들어지고 유포되고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