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해외 포스터, 한국 포스터

작년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2020)에서 공개된 영화 <Spree>의 한글 (번역) 제목(<구독좋아요알림설정>)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기가 차다"는 듯한 반응을 보냈다. 영화 제목이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이라니. 속된 말로 '쌈마이' 같은 느낌으로 인해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물론 예고편의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을 외치는 이 영화의 예고편을 용감하게 누른 이들은 곧바로 반응을 뒤집었다. "기가 막힌" 제목이라고, 이제 보니 초월 번역이었다고 말이다. 흔한 말로 '관종의 삶'을 불쾌하고 흥미롭게 그린 이 영화를 담아내기에 <구독좋아요알림설정> 만큼이나 기똥찬 어구는 없었으리라. 이 영화의 제목이 왜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영화는 당신이 상상도 못 한 답을 전할 것이다.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은 왓챠에서 만나볼 수 있다.


커트 컨클은 아무도 찾지 않는 채널에 영상을 올렸다.

그 영상들의 조회 수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 웰컴_투_커트의세상 # 어서와_살인은_처음이지

커트(조 키어리)에게 있어 삶의 모든 것은 '콘텐츠'로 귀결된다. '커트의 세상(Kurt's World)'이라는 채널명처럼, 밥을 먹을 때에도, 반려견과 시간을 보낼 때도 카메라를 드는 커트는 24시간 제 삶을 스트리밍한다. 단연 커트의 꿈은 수십만,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다. 현실은 두 자릿수 조회 수에 기운을 차리는 초라한 스트리머지만 말이다. 구독자 수가, 조회 수가, 좋아요 수가 곧 가치 있는 인간을 채점하는 기준으로 전락한 사회에서 커트는 스스로를 0점짜리 인생이라 비하한다.

관심을 못 받는 '관종’이라니.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10년 넘도록 '무플'인 스트리머 인생을 청산할 법도 하지만, 커트는 차원이 다른 콘텐츠를 떠올린다. '우버(Uber)'와 같은 카풀 서비스, '스프리(Spree)'의 운전사가 되어 승객들과 소통하는 '#더 레슨(#TheLesson)'을 기획한 것이다. 진행 방법은 간단하다. 차량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한다. 승객이 있는 곳까지 차를 몬다. 택시를 탄 승객에게 물을 건넨다, 마시면 곧바로 기절하는 독극물을 몇 방울 섞어서 말이다. 승객이 기절하는 데까지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뒤이어 커트는 글로브 박스에 감춰둔 전동 드라이버와 총을 꺼내 뒷좌석으로 향한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냐고? 그러니까 '#더 레슨'은 '살인 라방(살인 라이브 방송)', 살인 생중계 방송이라는 말이다.


# 구독자분들 # 여러분도_모두_살인자예요

YouTube, Snapchat, Instagram, Facebook, TikTok, Twitter…. 당신의 삶은 어디에 전시되어 있는가.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관종인가? 당신은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가? 타인이 누르는 하트 버튼 하나하나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 물음표에 어쩐지 불쾌함을 느낀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SNS한다고 다 관종인가? 관종이 나쁜 건가? 역시 아니다. 소셜 미디어 세상 속에서 타인의 관심은 능력이고 재능이며 이는 곧 경제적 능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독자 수와 팔로워 수는 과거 방송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의미하듯 높으면 높을수록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더 비싼 광고를 불러오는 지표가 된 지 오래니까.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이 주목한 지점 역시 여기에 있다. 소셜 미디어가 하나의 경제적 권력을 의미하는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괜찮은 콘텐츠를 가져오거나, 클릭을 안 하고는 못 배길, MSG가 팍팍 쳐진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거나. 물론, 어느 쪽이 더 쉽고 편리한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커트가 고안해낸 '살인 생중계'는 후자의 극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비현실적이지 않다.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은 SNS의 졸개로 전락한 비양심적인 이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꼬집는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와 현실의 괴리를 좁힌 건 주인공 커트가 아니다. 살인 스트리밍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청자다. 시청자들의 '역한' 댓글들을 보며 우린 토막살인보다 더 끔찍하게 잘려 나가는 인류애를 마주한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별풍선', '후원'이라 알려진 기능을 통해 살인을 종용하는 그들의 모습.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손가락'을 통해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은 묻고 있는 것이다. 이게 혹시 남의 이야기 같다면 잘 들으라고, 너도 혹시 누군가의 죽음을 '관전'하지는 않았냐고 말이다.


# 실시간_방송_시청자가_된_듯한_기분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을 채우는 배우들의 면면은 다소 낯설다. 주인공을 제외한 조연 배우들은 일반인을 캐스팅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소한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는 감독의 의도적인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이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는 93분짜리 스트리밍 방송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생경함에 있다. 유명 배우가 SNS 스타인 척을 하는 게 아닌, 실제 인플루언서들을 섭외한 듯한 리얼한 연기는 한 명의 영화 '관객'이 아닌 라방 '시청자'가 된 듯한 착각을 안긴다. <아이 필 프리티>(2018)를 본 이들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셰르 자마타가 연기한 제시 애덤스 외에도 모든 조연 배우들의 생활 연기 덕분에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은 한 편의 페이크 (호러)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묘한 이야기>

# 이_구역의_미친X # 기묘한이야기 # 조키어리

슬그머니 돌아왔지만, 단연 이 영화의 최대 미장센은 조 키어리의 얼굴이다. <기묘한 이야기>의 스티브로 전 세계에 형형한 존재감을 드러낸 조 키어리. 그의 출세작은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배우로서 그가 가진 잠재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이라는 의견에 힘을 보태고 싶다. 조 키어리가 연기한 커트는 구독자 증식을 위해서라면 납치도, 폭행도, 살인도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신기한 건 망설임 없이 드릴을 목에 갖다 대는 커트의 얼굴에 살기가 없다는 거다. 살인을 하는 그 순간 커트의 얼굴은 오히려 순진무구하다. 악(惡)보다는 광(狂)에 가깝고, 광보다는 어쩐지 공허에 가까운,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조 키어리의 눈빛이 오히려 이 영화의 광기를 배가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친' 유튜버 특유의 과장된 톤을 쏙 빼내며 광인의 전형성을 탈피한 조 키어리는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을 입체적으로 빚어낸 일등 공신이다. 조금 더 보태자면, 영화는 커트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다. 커트는 그저 SNS가 만든 괴물일 뿐이니까. 이렇듯 맹목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커트는 다소 뜬금없거나 어색해 보일 수도 있었는데, 그 모든 공백을 채워낸 조 키어리 '미친' 연기 덕분에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은 빈틈없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 전설의_남자가 # 여기서_왜_나와

여기서 잠깐. <구독좋아요알림설정>에는 한국인이라면(!) 반가워할 수밖에 없는 몇몇 장면들이 등장한다. 먼저, 새빨갛게 '전설의 남자'라고 쓰여있는 티셔츠를 입고 운전을 하는 커트의 모습.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살해한 뒤, 그 집에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선택한 티셔츠가 바로 저것이다.(티셔츠의 반대쪽엔 파란색 글씨로 '도그맨을 대한'이라고 써져있는 듯 보인다) 왜 한국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연출한 유진 코틀야렌코 감독이 한국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커트가 태그(@kurtsworld96)를 구걸하기 위해 만나는 세계적인 인플루언서 DJ 우노 역시 한국인으로 출연하기 때문. 전 세계 팬들과 한국어로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우노의 모습, '전설의 남자' 티셔츠를 입은 조 키어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국내 관객들만의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


# 관객들을_온라인_세계로_초대합니다

SNS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시대의 요구에 맞춰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넷플릭스 효자 작품인 <블랙미러>부터 <너브>(2017), <언프리티 소셜 스타>(2018) 등이 파격적인 전개로 관심을 받았다. 이와 비슷하게 <서치>(2017) 역시 SNS와 실종 범죄라는 소재를 엮어내며 큰 사랑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그동안 스크린에서 보지 못했던 편집 방식 덕분이었다. 촘촘한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영화관을 꽉 채운 딸(미셸 라)의 컴퓨터 화면. 그 안의 메신저 대화들과 영상들의 움직임만으로도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기 충분했다.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의 가장 큰 재미 역시 촬영 방식과 편집으로부터 기인한다. <서치>의 편집이 조금 정적인 것에 가깝다면, 이 영화는 쉴 새 없이 화면을 전환하고 분할한다. 유튜브와 트위터·구글·틱톡 등 스트리밍 플랫폼을 계속해서 오가는 것은 물론, 글자를 읽을 수도 없는 속도로 댓글 창이 움직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촬영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스트리머들의 촬영 방식을 그대로 빌려왔다. 실제로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은 여러 대의 아이폰(iPhone)과 바디 캠, 고프로(GoPro) 등을 사용했고, 한 장면을 찍어도 약 8~10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렸다. 덕분에 관객들은 스크린이 아닌 온라인상에 머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은 물론이요. 9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눈과 귀가 혼미해지는 순간까지 찾아온다. 한눈팔 시간을 주지 않는 화면 구성에 멈출 줄 모르고 점점 빨라지는 BPM 속도가 지속적으로 감각을 건드리기 때문. 때론 신경계가 과부화된 듯한 느낌까지 든다면, 당신은 '성공적으로' 이 영화를 관람한 것이다.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은 관객들을 소셜 미디어 세계 한가운데로 초대하는 게 목적이었다. 점점 더 지독해지는 소셜 미디어의 행태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며 영화는 우리들의 정곡을 찌른다. 조회 수를 위해, 구독자 수를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때론 그 죽음을 조롱하기까지 하는 몇몇 괴물들, 그 괴물을 만든 건 진정 누구냐고 말이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