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좋은 어른’이 되는 일은 사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좋은 어른, 나아가 좋은 사람이란 뭘까? SBS <라켓소년단> 속 해남서중 배드민턴부 구성원들에겐 아직 어려운 질문이다. 종일 체력훈련을 할 거라는 이야기에 진력이 난 배드민턴부 학생들이 훈련을 땡땡이치고 광주로 도망쳤던 날, 배드민턴부 구성원들은 그 질문을 오래 곱씹었다.
광주에서 신나게 놀고 올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었던 해강(탕준상)과 친구들은, 막내 용태(김강훈)의 실수로 가진 돈을 모두 잃고는 해남으로 돌아갈 차비를 벌기 위해 공사장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공사장에는 무책임한 태도로 “꼰대들 말 다 들을 필요 없다”며 불편하면 안전모 벗고 있어도 된다고 말하는 박총무(김성철) 같은 어른도 있고, 안전모를 벗고 쉬고 있던 해강이 큰 사고를 당한 걸 구해주고는 “규칙은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이라며 호되게 혼내는 유반장(이준혁) 같은 어른도 있다. 유반장 같은 어른은 믿을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한 사람 앞에 11만 원인 일당을 유반장은 야무지게 떼어먹었다. 배드민턴부원 네 명이 하루 종일 시멘트 포대를 짊어지고 공사장을 오르락내리락해서 받은 돈은 44만 원이 아니라 11만 원이었다. 세상에 믿을 만한 어른이 있을까?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인 걸까?
의문을 안고 해남으로 돌아온 부원들은, 크게 화가 났을 거라 생각했던 윤현종 코치(김상경)가 예상외로 너그럽게 넘어가며 한숨을 돌린다. 윤 코치 또한 자신에게 말도 안 하고 무단으로 훈련을 땡땡이친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지만, 친구 재준(박해수)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학생이던 시절 매 맞아가며 운동을 했던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는 걸 다시 확인한 이후 마음을 굳힌 것이다. 초등학생 배드민턴부원들을 데리고 웃으며 즐겁게 훈련하는 재준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 현종은 자신도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먼저 다가가려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 덕분에, 현종을 신뢰하던 용태도 마음을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윤코치가 정말로 때리면 어쩔 셈이었냐는 인솔(김민기)의 질문에, 용태는 단호하게 답한다. “그라고 모르요? 우리 쌤은 그럴 분 아니잖애요. 현종 쌤은 나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어른잉께. 쪼까 어설프긴 하셔도, 우리 땜시 애쓰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거 다 알잖애요.”
여기에서 끝이었다면 그냥 여느 드라마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뻔한 이야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배드민턴부원들 중 유일하게 땡땡이를 치지 않고 훈련에 참여했던 주장 윤담(손상연)은, 예정보다 일찍 집에 갔다가 동생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걸 깨닫는다. 운동하는 첫째, 부모님의 자랑인 윤담이 집에 올 때면 부모님은 늘 윤담의 입맛에 맞춰 피자를 사주곤 했다. 윤담이 몰랐던 건 동생들은 짜장면을 먹고 싶어 했고, 늘 집안의 맏이인 자신에게 맞춰 주기 위해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내색을 안 했다는 것이다. 자기 그늘 아래에도 누군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윤담만이 아니다. 집에 들어온 해강은 어린 동생 해인(안세빈)이 늘 밤늦게까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해강에게 운동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고 있기에, 조금 외로워도 늘 참고 있었다는 해인의 말을 듣고 해강은 반성한다. ‘오빠들 1승’이 올해 소원이라는 해인의 메모를 본 해강은, 도로 체육관으로 돌아가 밤늦게까지 혼자 연습에 매진한다. 자신 때문에 외로움을 견디며 희생해주는 동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1승을 올리는 것일 테니까.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어떤 이는 스무 살이 넘어 사회로 나가면 어른이 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면 그게 어른이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글쎄, 잘 모르겠다. 결국 그건 상대적인 게 아닐까? 내일모레 마흔이 되는 나도 내 어머니 눈엔 언제까지나 철없는 아이인 것처럼, 중학생인 윤담과 해강도 동생들에겐 책임감을 느끼는 어른일지 모른다. 짜장면을 먹고 싶은 속내를 숨기는 동생들을 보며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끼는 윤담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생에게 더 잘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해강이는, 딱 그만큼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좋은 어른’이 되는 일은 사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딱 어느 시점에 짜잔 하고 어른이 되는 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 좋은 어른이 되는 것도 하루아침에 짠 하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들이 쌓였을 때, 내 뒤를 따라 걷는 이들에게 “저 사람은 그럭저럭 좋은 어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거겠지. <라켓소년단> 속 해남서중 배드민턴부 구성원들도 그렇지 않던가. 자신이 어렸을 적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잊지 않고 기억하려 노력하는 재준과 윤코치도,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동생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형, 오빠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윤담과 해강도, 결국 그 마음의 핵심은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려는 선의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루하루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혹시 또 아는가. 어느새 우리도 ‘좋은 어른’이 되어 있을지.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