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진화는 끝이 없다. 기술의 발전은 혁신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병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영화는 이러한 미디어의 진화를 주목한다. 5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의 창립자 이야기부터 소셜 미디어가 만들어낸 온라인 마녀사냥을 다룬 이야기까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피드를 하릴없이 새로고침 하는 것보다는 분명 재밌는 영화들이다.
소셜 네트워크
극장과 OTT(Over the Top) 스트리밍의 다른 점. 봉준호 감독이 최근 열린 칸영화제 마스터클래스(칸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는 러닝타임 만큼 꼼짝 없이 앉아 있어야 하지만 스트리밍은 리모콘으로 영화의 시간을 내가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가끔 아주 재밌는 영화라고 소문난 작품일지라도 주변 환경이나 여건 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이를 테면 오랜만에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세지가 온다거나, 창밖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온다거나, 동생이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거나 등등, 영화를 볼 때 집중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게 휴대전화 화면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10초 전 버튼이나 일시정지 버튼을 자꾸 누르게 된다. 영화는? 뒷전이 될 수도 있다. 봉준호 감독이 얘기한, 영화가 지닌 리듬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집중이 흐트러진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설명하는데 극장과 OTT의 관람 환경의 차이를 길게 언급한 이유가 있다. <소셜 네트워크>의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를 다룬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와 그의 연인 에리카(루니 마라)가 술집에서 마주앉아 속사포 대사를 펼치고 헤어진 뒤, 기숙사까지 주커버그가 돌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이 흐르는 이 오프닝 시퀀스는 OTT 관람 환경에서도 그 어떤 방해 요소가 침입하더라도 눈과 귀를 홀리는 압도적인 흡인력을 자랑한다.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플레이 버튼을 눌러보자.
이지 A
엠마 스톤의 오랜 팬들은 모두 <이지 A>를 본 사람들일 것이다. <이지 A>보다 한 해 일찍 개봉한 <좀비랜드>를 본 사람들도 물론 오랜 팬임에 틀림없다. 그 이전에 개봉한 영화들, <수퍼배드>, <하우스 버니>, <록커>, <페이퍼맨> 등을 본 관객이 있다면 그는 엠마 스톤 오타쿠(オタク)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2010년 미국에서 개봉하고 국내에는 극장 개봉하지 못한 <이지 A>를 통해 엠마 스톤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지 A>가 엠마 스톤의 출세작이라는 말이다. <이지 A>가 당시 관객과 평단의 눈길을 끈 것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미국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 어덜트(Young Adult), 혹은 (미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듯하지만 국내에서는 익숙하게 사용하고 사전에도 등재된 단어인) 하이틴(Highteen) 드라마는 무수히 많았다. 그 가운데 <이지 A> 개봉 당시 가장 유명한 것은 린제이 로한 주연의 <퀀카로 살아남는 법>(2004)이었다. 말하자면 엠마 스톤은 제2의 린제이 로한이었고 <이지 A>는 인터넷 환경으로 진화한 미디어 환경 속 2010년 버전의 <퀀카로 살아남는 법>이다. 이러한 단순 비교에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이지 A>를 통해 엠마 스톤이 스타로 거듭나게 된 과정에는 이런 맥락이 숨어 있다. <이지 A>에 대한 어설픈 이 설명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면, 당신도 엠마 스톤의 오랜 팬이 될 준비가 된 셈이다. 제목 ‘이지 A’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서치
<서치>의 혁신은 SNS, 소셜 미디어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이 포스트의 테마에 가장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치>는 노트북의 모니터 화면, 휴대전화 액정 화면을 캡처해서 만든 푸티지(Footage)만으로 구성된 영화다. 영화의 도입부는 윈도우의 UI(User Interface)의 변화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연동되고, 가족들의 캘린더 일정과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엄마의 죽음을 관객에게 인지시킨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본 것 같은 도입부 이후 <서치>는 본격적으로 실종된 딸 마고(미셸 라)의 행방을 쫓는 아버지 데이빗(존 조)에 집중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데이빗이 딸을 찾는 과정은 모두 노트북, 휴대전화 화면으로 구성됐고, 기존 스릴러 장르와는 전혀 다른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를 디지털 서스펜스라고 해도 될까. <서치>가 이런 형식의 최초 작품은 아니다. <언프렌디드: 친구삭제>(2014)가 먼저 노트북의 인터넷 영상 통화 화면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다만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 대신 <서치>를 소개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 <서치>의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재능이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의 레반 가브리아제 감독보다 뛰어났다. 차간티 감독의 재능은 <서치> 이후 그가 연출한 <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셜포비아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했을 때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태희(배두나)가 지영(옥지영)과 나누는 문자 메시지 내용이 버스의 창문에 나타나는 형식은 그 전에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기술은 점점 발전했고, 2010년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면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문자 메시지를 다루는 것에서 더 발전된 형태로 작품에 녹아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시간이 더 흘러, 2015년 개봉한 <소셜포비아>의 첫 시퀀스. 아침 주요 뉴스를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내레이션과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경찰 공무원 준비생인 주인공 지웅(변요한)이 보인다. 이어 탈영한 군인의 자살 뉴스에 대한 트윗이 화면을 가득 채우다가 레나라는 계정의 트윗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소셜포비아>에 트윗의 텍스트가 형식적 측면에서 <고양이를 부탁해>와 <셜록>에서 발전된 형태라면 내용적 측면에서 <소셜포비아>가 다루는 이른바 ‘현피’는 <잉투기>(2013)를 연상시킨다. 당연히 <소셜포비아>는 <잉투기>보다 더 복잡해진 미디어의 시대를 다룬 더 진화한 영화다. <잉투기>에 비하면 <소셜포비아>는 매운맛, 아니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마라맛이다. 게다가 개봉 이후 영화 속 내용과 비슷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소셜포비아>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영화적 가치가 높아지고 동시에 다시 봐야 할 이유도 커진다.
백설공주 살인사건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마녀 사냥. <소셜포비아>에서 이미 본 이 주제를 일본에서는 어떻게 다뤘을까. <백설공주 살인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소셜 미디어와 더불어 언론의 역할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주인공부터가 이미 두 미디어에 연계된 인물이다. 유지(아야노고)는 사건, 사고를 추적하는 TV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일하고 있는데 열혈 트위터리안이기도 하다. 유지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아이템을 찾다가 백설공주라는 비누 회사의 직원이 숲속에서 잔인하게 살인된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회사 동료 미키(이노우에 마오)가 범인인 것처럼 보이는 소위 ‘악마의 편집’이 된 방송을 내보낸다. 이후 당신의 방송의 모두 거짓이라는 항의 편지가 도착한다. 진짜 범인은 누굴까. 언론, 소셜 미디어, 진짜 범인. 온갖 흥밋거리가 가득한 이 게임은 최근 국내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다. 한강 반포지구의 그 진실게임은 <백설공주 살인사건>이 다루는 사건과 현상과 그 본질에서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진실을 왜곡하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