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으로 대표되던 영웅들에서 벗어나 DC 최초로 빌런들을 메인으로 내세운 영화였다. DCEU의 큰 틀을 잡기 위해 2013년 <맨 오브 스틸>과 2016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 이어 세 번째로 제작되었는데, 흥행에서 재미를 본 것과 달리 비평 쪽에선 썩은 토마토 세례에 엎어진 팝콘 통이 가득했다. 윌 스미스와 마고 로비, 비올라 데이비스, 자레드 레토, 조엘 킨나만, 제이 코트니, 스콧 이스트우드, 카라 델레바인 등 나쁘지 않은 캐스팅 조합을 이뤘음에도 평면적인 캐릭터와 늘어지고 어수선한 연출과 편집은 관객들을 전혀 사로잡지 못했다. 할리퀸만 살아남아 솔로 무비의 기회를 잡았을 뿐이다.

이 좋은 기획을 그대로 묻어버릴 수 없기에 DC는 마침 마블에서 구설수에 올라 쫓겨난 채 실업자 신세였던 제임스 건을 붙잡아 이 영화의 속편을 맡겼다. 이미 검증된 카드인 그는 창작상 전권을 부여받아 속편 같지 않은 속편이자 리런치에 해당하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완성했다. 윌 스미스 대신 이드리스 엘바가, 자레드 레토 대신 존 시나가 합류했고, TV에서 익숙한 피터 카팔디와 히어로물에 익숙한 데이빗 다스트말치안, 그리고 건의 패밀리라 할 마이클 루커와 진짜 패밀리인 숀 건이 캐스팅됐으며, 실베스터 스탤론과 타이카 와이티티가 깜짝 놀랄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외형을 싹 물갈이한 제2기 자살 부대는 빌런과 19금이란 키워드에 걸맞게 수위도 대폭 올리며 시원스레 부서지고 터져나가는 막가파 안티히어로물을 선사한다.


마블과 DC를 섭렵한 논란의 감독, 제임스 건

트로마 시절의 악취미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블 봉인(!)에서 해제된 제임스 건의 인장이 모처럼 발휘되는 탓에 개봉 후 반응은 나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 제4차 유행의 직격탄을 맞은 동시에, R등급임에도 제작비가 무려 2억 달러에 가까운 1억 8500만 달러가 투입돼(R등급 최고 제작비 2위에 해당한다) 흥행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기에 워너의 HBO MAX 동시 공개라는 극약처방까지 영향을 미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비평적 실패에 가까웠던 전작과는 정반대 양상이 되고 말았다. 이번엔 피스메이커만이 살아남아 2022년 스핀오프 TV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런 위기 상황임에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음악만큼은 별 이견 없이 화려하게 빛난다. 제임스 건 영화에서 음악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건 단연 실례다.

존 머피

쿠엔틴 타란티노나 제임스 크로우, 대니 보일 못지않게 독창적이면서 대중적인 선곡에 일가견이 있는 제임스 건이기에 이번에도 끝내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배치하고, 그 빈 자리를 데뷔 때부터 여태껏 함께 해온 영화음악가 타일러 베이츠가 일렉 기타로 메꿀 것이 자명할 터였다. 그러나 웬걸, 음악적 동반자였던 타일러 베이츠가 프리 작업까지 진행하다 모종의 사유로 처음 하차하고, 대신 크레딧을 차지한 건 한동안 뜸했던(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고 휴식을 취하던) 영국 출신의 멀티 연주자이자 영화음악가인 존 머피였다. 가이 리치의 <록 스톡 투 스모킹 배럴>과 <스내치>로 두각을 나타내고, 대니 보일과 함께 한 <28일 후>와 <밀리언즈>, <선샤인> 등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2010년 <킥애스>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며 건재를 알린다.


십년 만에 영화음악으로 돌아온 존 머피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영국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인상적인 행보를 보인 그는 정규 음악교육을 밟지 않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여러 장르의 밴드들을 전전하며 세션 연주자로, 또 작곡가로 다양한 경험을 몸소 체득했다. 1992년 뉴웨이브 밴드 OMD출신의 데이비드 휴즈를 도와 처음 영화음악에 뛰어든 존 머피는 스티븐 프리어스와 마이클 케이튼 존스, 마이클 만, 매튜 본 등의 영화에 참여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28일 후>의 ‘인 더 하우스-인 어 하트비트’(In the House - In a Heartbeat)와 <선샤인>의 ‘아다지오 인 디 마이너’(Adagio in D Minor)의 엄청난 반향은 그를 성공적인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강력한 락비트에 명확한 멜로디, 서정적인 기운을 품은 스트링, 그리고 미니멀한 일렉트릭 사운드의 조화는 클린트 만셀(그 역시 <레퀴엠>의 메가 히트 트랙인 ‘럭스 아테나’(Lux Aeterna)를 갖고 있다)을 떠올리게 하지만, 머피는 그보다 키치적이고 자극적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미리 공개된 메인 테마 ‘소 디스 이즈 더 페이머스 수어사이드 스쿼드’(So This Is the Famous Suicide Squad)에서 알 수 있듯 전체적으로 펑크와 밀리터리 사운드 기조로 삼은 파워풀한 스코어는 지난 십 년간 현장을 떠나있던 영화음악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활력 넘치면서 똘끼 가득한 색채를 들려준다.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스러운 캐릭터들에 걸맞게 다섯 노트로 이뤄진 단순한 동음 반복의 모티브는 피크 스크래치 같은 기교와 어우러지며 만화스러움을 강조하고 폭력성과 잔인함을 둔화시킨다. 고귀하고 영롱한 파워를 자랑하며 투철한 정의감으로 지구를 지키던 기존의 슈퍼 히어로들을 위한 웅장한 행진곡 대신 이 영화는 목숨을 빌미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길 망설이지 않는 인간말종들의 과격한 펑크락을 택해 롤러코스터처럼 신나게 폭주한다.


신나고 광기 어린 조울감의 펑크락 사운드

이미 <킥애스>를 통해 만화 원작의 히어로물을 소화한 바 있는 존 머피이지만, 이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선 그보다 더 광기 어리고, 낭만적이며, 조울 기질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쟁쟁한 삽입곡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확실한 존재감의 소리를 심어줬다. 이는 같은 락 베이스 출신이지만 언더스코어링 역할에 충실했던 제임스 건의 이전 음악적 짝패 타일러 베이츠와 전혀 다른 방식이며, 심포닉 사운드와 일렉트릭 효과를 잘 섞어내던 스티븐 프라이스가 락킹한 기운을 흉내 내는데 급급했던 전편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존 머피의 펑크는 진짜다. 유치할 정도로 귀에 들려와 박히는 선율은 한번 듣고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이고, 제임스 건 영화만큼이나 유희적이다. 장식을 걷어치운 채 스트레이트로 관객들에게 다가가 꽂힌다.

물론 끝내주는 제임스 건의 믹스 테잎은 DC에서도 이어진다. 올드 팝과 최신곡들이 적절히 안배됐다. 가이 리치 영화 <캐시 트럭>에서도 쓰였던 조니 캐쉬의 ‘폴섬 프리즌 블루스’(Folsom Prison Blues)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교도소에서 직접 불렀던 곡인 만큼 교도소로 시작하는 영화의 인트로에 안성맞춤인 셈. 그 뒤를 이어 사운드트랙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애써 모은 멤버들이 충격적인 불의의 일격(!)을 당하는 오프닝 크레딧에선 어리벙벙한 관객들을 위해 짐 캐롤 밴드의 ‘피플 후 다이드’(People who died)가 깔려 웃음 짓게 만든다. 블러드스포트가 청소하며 처음 팀 제의를 받을 땐 빈티지한 매력의 인디록밴드 디셈버리스트의 ‘서커스 프레이어’(Sucker's Prayer)가 흐르고, 할리퀸과 쿠데타를 일으킨 루나와의 짧은 러브 몽타주에선 스코틀랜드 록밴드 프래텔리스의 ‘휘슬 포 더 콰이어’(Whistle For The Choir)가 무겁지 않게 무드를 잡아준다.


제임스 건의 믹스 테잎은 DC에서도 쭉-

검문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캔자스의 1977년도 노래 ‘포인트 오브 노 리턴’(Point of Know Return)이고, 이 버스를 타고 자살 부대가 야밤에 이동할 땐 (가상이지만) 남미 국가라는 지역색을 주기 위해 콜롬비아 핏줄을 지닌 캐나다 출신 제시 레예즈의 ‘솔라’(Sola)가 감미로이 귀를 사로잡는다. 싱커를 기다리는 클럽에선 미국 래퍼 K.플레이의 ‘캔트 슬립’(Can't Sleep)과 브라질 출신의 드릭 바르보사, 글로리아 그루브, 캐럴 콩가가 부른 ‘퀀 템 조거’(Quem Tem Joga)가 흥겹게 분위기를 돋운다. 블러드스포트와 피스메이커, 릭 플래그가 빗속을 달리는 군용차량 안에 갇혔을 땐 이번 영화를 위해 콜라보를 한 그랜드선과 제시 레예스의 신곡 ‘레인’(Rain)이 소개된다. 유일하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감성적인 오리지널 곡이다.

할리퀸이 붙잡혀 고문을 당하며 “내 곁엔 아무도 없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고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는 그 유명한 스윙의 황제이자 전설적인 트럼펫터 루이스 프리마가 부른 ‘저스트 어 지골로/아이 안트 갓 노바디 (앤 노바디 케어스 포 미)’(Just A Gigolo/I Ain’t Got Nobody (And Nobody Cares For Me))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곡을 메들리로 부른 건데, 화려한 꽃잎들을 휘날리며 할리퀸의 원맨쇼(!)를 보여주는 배경음악으로 손색없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요툰하임으로 향하는 슬로우 장면에선 얼터너티브 록의 숨은 기수라 할 픽시스의 ‘헤이’(Hey)가 멋들어지게 깔린다. 스타로를 무찌른 후 헬기를 타고 떠나는 자살 부대를 위해 컬처 어뷰즈의 ‘소 부스터드’(So Busted)가 나오고(이들은 작년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프론트맨 데이빗 켈링의 성추행으로 해체됐다!),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며 그랜드선의 ‘오 노!!!’(Oh No!!!)와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사운트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