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다사다난한 일상을 그린 드라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사소한 오해로 실망하고 요란하게 갈등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화해하고, 궂은일이 있을 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다른 장르보다 화려하고 멋진 볼거리는 부족하지만, 누구나 수긍하게 되는 정서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가족 드라마는 꾸준히 제작되고 사랑받고 있다. 많고 많은 가족 드라마 중 오늘은 추석 연휴를 맞아 조금 특별한 가족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해 떠들썩한 일상으로 초대하는 가족들을 만나보자.
쉐임리스 (Shameless)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족 드라마 중에서도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이 있다. 시카고의 후미진 동네에 살며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갖가지 소동에 휘말리는 갤러거 가족이 주인공인 <쉐임리스>다. 아버지 프랭크 갤러거부터 남다른 위용을 뽐내는데, 술과 마약은 기본이고, 본인의 현재에만 충실하게 사느라 양육의 개념은 내팽개친 지 오래다. 본인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여섯 자녀들 역시 아버지의 충동적인 기질을 물려받아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낸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쉼 없이 오가는 이 가족들의 별난 생존기는 미국의 많은 시청자를 사로잡아 쇼타임에서 최장기 방영된 드라마로 등극했다. 그리고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던 2020년 12월에 ‘코시국’을 반영한 마지막 시즌이 방영됐다. 국내에서는 캐치온을 통해 시즌 11을 방영 중인데, 미운 정 고운 정이 켜켜이 쌓인 만큼 어느샌가 눈물을 훔칠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영국의 오아시스 멤버 노엘&리암 갤러거 형제에 모티브를 얻은 동명의 영드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캐치온)
시트 크릭 (Schitt's Creek)
총 여섯 시즌이 방영된 <시트 크릭>은 몰락한 갑부 가족의 웃픈 일상을 그린 캐나다 시트콤이다. 자산관리인에게 사기를 당해 하루아침에 재산을 몽땅 잃은 로즈 가족이 유일하게 남은 변두리 시골 마을 시트 크릭에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우여곡절 일상을 다룬다.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돈을 버는 방법도 생활력도 없는 가족이 허름한 모텔방에 머물며 재기를 꿈꾸고,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가진 그곳 사람들(특히 이장 롤런드)과 부딪히는 모습은 당연히 짠내 나는 웃음을 동반한다. 캐릭터 구축을 잘해 시즌을 거듭할수록 인물들의 변화가 사랑스럽고, 크게 터지진 않아도 소소한 재미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에미상에서 시상식 최초로 작품상을 비롯한 코미디 7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왓챠)
모던 패밀리 (Modern Family)
시즌 11을 끝으로 종영한 <모던 패밀리>는 가족 시트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평범한 미국인 가정을 비롯해 재혼, 동성 결혼,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소위 ‘현대적인 가족’의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소소한 미국식 막장 코드도 담겨있지만,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대신 마지막엔 가족의 사랑에 대한 교훈을 안겨주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는 것,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상당한 호평을 이끌었다. 전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그리스, 칠레, 이란에서도 리메이크됐으며, 극중 게이 커플인 미첼과 캠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제작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넷플릭스)
더 윈저스 (The Windsors)
넷플릭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더 크라운>은 영국 왕실에 대한 꼼꼼한 고증과 우아한 재현으로 명성을 얻었다. 반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왕실 스토리 <더 윈저스>는 그와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미디어에 오르내렸던 실제 사건에 모티브를 얻어 영국 왕실을 대놓고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시트콤에 가깝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을 제외하고 왕실의 인물을 본뜬 캐릭터들이 등장해 고상함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우스꽝스러운 열연을 펼친다. 찰스와 카밀라 중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을까, 왕실은 케이트를 진짜 어떻게 생각할까, 비어트리스와 유지니는 실제 어떤 일을 할까 등의 호기심에 대한 상상력이 발현된 작품이니, 색다른 왕실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도전해보자. (넷플릭스)
엄브렐러 아카데미 (The Umbrella Academy)
하그리브스 경에게 입양된 7명의 초능력자 남매를 처음 봤을 땐 가족 간의 살가운 정을 찾기 힘들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하고 혹독하게 몰아세웠던 양아버지로 인해 이들은 몸만 다 자란 울퉁불퉁한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동명의 코믹스를 옮긴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슈퍼히어로라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초능력자 남매들이 지구 종말이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열심히 투닥거리면서 서로의 관계를 재정비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최근 시즌 3 촬영을 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우당탕탕 초능력자 패밀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지난 시즌 말미에 깜짝 등장한 스패로우 아카데미가 어떤 활약을 보일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넷플릭스)
김씨네편의점 (Kim's Convenience)
동명 연극이 원작이자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시무 리우의 출세작이기도 한 <김씨네 편의점>은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국 이민 가족이 주인공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자식들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어머니, 다소 문제아로 취급받는 아들과 자기주장이 강한 딸의 일상을 담아내 캐나다를 넘어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타지에서 겪는 고충이나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갈등을 웃음으로 승화하고, 극중에서 발견되는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이 이민 가족들과 유학생, 그리고 국내 시청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에도 갑작스레 종영이 결정되었는데, 시무 리우와 진 윤이 제작진의 인종∙성차별적인 행동들이 종영으로 이어졌다고 밝혀 팬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다소 씁쓸한 결말을 맞이했다. (넷플릭스)
에그테일 에디터 현정, 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