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2018년 추석 특집극으로 선보인 <옥란면옥>의 단점을 비판하는 건 쉬운 일이다. 북한이탈주민을 온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작품의 선의는 너무 쉽게 동정으로 흐르고, 영란(이설)은 한국 미디어가 즐겨 그리는 ‘의외로 당차지만 보호가 필요한 가련한 북한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봉길(김강우)과 영란의 로맨스 라인은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라는 위계 때문에 자주 위태로워지고, 남쪽의 남자가 북쪽의 여자를 포용해서 새로운 세대를 이루는 것으로 화합과 통일을 은유하는 구도는 북한/여성에 대한 남한/남성의 상대적 우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썩 편하지 않다. 노포인 옥란면옥이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밀려나는 과정 또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희생’으로 지나치게 낭만화되어 있는 탓에, 새롭게 ‘영란면옥’이라는 냉면집을 차리며 어영부영 끝이 나는 결말은 아무래도 타협적이다. 작품에 아쉬웠던 점들을 이야기하자면 아마 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도 남으리라.
그럼에도 가끔씩 <옥란면옥>을 떠올리게 되는 까닭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두고 온 첫사랑을 기다리며 수십 년째 한 자리에서 첫사랑의 이름을 딴 냉면집을 지키는 고집불통 노인 달재(신구) 때문이다. 다른 집들은 다 재개발에 동의하고 퇴거했는데 왜 할아버지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냐는 동네 청년들의 성화에, 달재는 분노하며 소리친다. 재개발에 동의한 사람들은 동의해서 나갈 자유가 있듯이, 동의하지 않는 나는 여기에서 계속 살아갈 자유가 있다고. 여기는 자유의 나라가 아니냐고. 이념과 냉전의 논리로 고향을 잃고 내내 고향을 그리며 살아온 달재는, 이번엔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밀려 제2의 고향마저 잃게 생긴 것이다. 돌아갈 뿌리가 잘린 실향민들은 남쪽에서 살아가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리지만, 그렇게 자리 잡은 새로운 고향 또한 쉴 새 없는 개발과 재개발의 굴레 속에서 사라지곤 한다. 아들에게 모질고 주변 사람들에게 괴팍한 노인 달재가 풍 맞은 몸을 이끌고 나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장면은, 어쩐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정든 고향산천과 가족친지 이웃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던 실향민들의 이산과,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이탈주민의 이산은 또 뉘앙스가 다르다.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쳐 정식으로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의 삶은 그나마 정착지원교육과 지원금 덕분에 좀 낫다고는 하지만, 그나마도 남쪽 물정에 어두운 이들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람들의 속임수나, 북한 출신의 사람들을 낯설게 여기는 한국인들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쉽지 않다. 정식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의 삶도 그렇게 고단한데, 영란처럼 애매한 루트로 남쪽에 내려온 이들의 삶은 더 복잡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국경을 드나들다가 브로커에게 속아 중국에 노동인력으로, 혹은 성매매여성으로 팔려 간 이들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착취당한다. 운이 좋게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더라도, 영란처럼 불확실한 신분과 브로커에게 진 빚 때문에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리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달재와 영란이 유독 처음부터 쿵짝이 잘 맞았던 것은, 육수 국물 맛 때문만은 아니었던 게다. 영란보다 반세기 앞서 이산을 경험한 달재는, 아마 영란에게서 자세히는 몰라도 낯선 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헤매고 쫓기는 사람 특유의 절박함을 봤던 게 아닐까?
정전협정 체결 68주년, 이제 ‘전쟁만 끝나면 고향으로 간다’는 마음으로 북녘을 바라보던 이산 1세대들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사라져간다. 나는 딱히 고향이나 살던 동네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가볼 수 있다. 그러나 이산 1세대들은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한번 가보는 게 어렵고, 가보는 게 어렵기에 더더욱 그리워지는 굴레 속에서 온 생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1세대들이 평생 품었던 절박함을 옆에서 지켜본 2세대와 3세대들, 그리고 북한이탈주민으로 남쪽에 살아가면서 통일을 기다리는 새로운 이산 1세대들의 근심도 함께 쌓인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산 1세대 달재의 아픔을 내내 이해하지 못했던 2세대 봉길이, 새로운 이산 1세대인 북한이탈주민 영란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함께 새로 뿌리내릴 곳을 찾아 떠난다는 <옥란면옥>의 결말은 나름 상징적이다. 이념으로, 분단으로, 자본의 논리로 끊임없이 고향을 잃고 떠도는 한반도인들에게,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손을 잡아 새로운 고향을 찾아내자는 메시지는 의미하는 바가 작지 않으니 말이다.
떨어졌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이다. 여전히 ‘코로나19 이산’으로 대규모 회합은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작년에 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고향으로 돌아가 보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고 그리웠던 마음들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이런 날, 촌스럽고 뻔한 구석투성이인 데다가 가끔씩 위험한 면모도 있는 <옥란면옥>을 조심스레 당신의 상 위에 내려놓아 본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잃고 이산을 경험 중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에게 새로운 고향이 되어주는 이야기니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