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맞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9부작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연일 화제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높은 시청 순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함께 공개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 3에 전혀 뒤처지지 않고 국내 OTT 드라마로는 최초로 전 세계 1위를 찍으며 모든 기록을 경신했다. 이전까지 가장 큰 이슈를 불러왔던 건 글로벌 차트 3위에 올랐던 <스위트 홈>이었다. 첫 넷플릭스 자체 제작 시리즈였던 <킹덤>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시리즈는 아니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아시아에서 화제몰이를 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등과 이번 <오징어 게임>의 선전은 K-드라마가 과거 <겨울연가>와 <대장금>이 불러온 한류 열풍을 넘어 동시대적으로 같이 호흡하고 소비하는 최첨단 문화 트렌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을 연출했던 황동혁 감독이 OTT로 매체를 바꿔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오징어 게임>은 상금 456억 원이 걸린 의문의 생존게임이 참여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설정 탓에 일본 만화인 <라이어 게임>과 <도박묵시록 카이지>, <신이 말하는 대로>, 그리고 생존 게임 장르의 고전이 된 후카사쿠 킨지의 <배틀 로얄> 등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참신하고 독특한 규칙의 새로운 게임을 선보이는 대신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추억 속 게임을 놓고 일전을 벌인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감수성과 로컬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이정재와 박해수, 오영수, 정호연, 허성태 등 배우들의 열연과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의 미술, 원색의 튀는 의상과 감각적인 촬영이 어우러지며 완성도를 높였다.


정재일

천재 정재일의 최초 드라마 음악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인상적인 존재감을 선사하는 음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모그와 류이치 사카모토에 이어 황동혁 감독의 첫 드라마 나들이에 음악적 파트너가 된 건 문화계 전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며 최상의 역량을 뽐내고 있는 정재일이다. 중학교 때부터 한상원과 정원영에게 발탁돼 대중음악에서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박효신과 김동률을 비롯한 다양한 가수들과의 교류는 물론, 연극 '그을린 사랑',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등의 각종 무대 음악뿐만 아니라 <마린보이>, <바람>, <해무>, <옥자>, <기생충> 등 영화 그리고 '클럽 살로메'나 '어린 왕자' 같은 무용극, 미술가 장민승과 함께 한 전시 및 설치 음악, 더 나아가 한미정상회담 국빈만찬공연이나 남북정상회담 환송행사 같은 기념식에도 뛰어들어 전천후 경험치를 쌓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적 소리에 매혹돼 크로스오버 국악 그룹인 푸리에 참여하고, 개인 앨범에도 지속적으로 판소리와 국악에 대한 관심을 피력해왔다. 천재 소년이란 수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젊은 거장으로 발돋움 하고 있는 그가 새롭게 도전한 게 바로 이번의 OTT 시리즈 음악이다. 이미 <옥자>로 넷플릭스와 인연을 맺었던 정재일은 <오징어 게임>으로 두 번째 넷플릭스 작업에 나선다.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었던 탓에 계약상 음원 공개가 불가능했던 <옥자>와 달리(정재일은 이를 두고 아쉬워했다) 이번 <오징어 게임>은 국내 넷플릭스 드라마 사상 최초로 스코어 앨범을 공개했다. 뮤지컬 ‘페스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의 음악감독이자 프로듀서인 김성수(23)와 에일리, 다비치, 케이윌 등 K-POP과 다수의 뮤지컬,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동 중인 작곡가 박민주가 함께 지원사격에 나선다.


리코더와 장단이 조화된 강렬한 사운드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친숙하게 들리는 건 어린 시절 누구나 음악 시간에 한번쯤은 불어 봤을 리코더 소리다. 청아하면서도 그 맑음이 신경질적으로 돌변하고, 서툴면 한없이 투박하지만 기교를 머금는 순간 천상의 소리로 격상하는 리코더의 신묘한 이중적 색채는 유년기를 추억하는 동시에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잔혹한 일면도 일깨우는 역할을 해낸다. 러드윅 고랜슨이 디즈니+ <만달로리안>에서 베이스 리코더를 활용해 키치적인 색채로 안티히어로 영웅담을 재구성하듯, 정재일 역시 씩씩한 동요풍의 곡조로 아이들 놀이에 뛰어든 어른들의 생존담이 가진 그로테스크함과 아이러니를 중세 리코더로 탁월하게 구현해냈다. 게다가 놀이가 가진 긴장과 설렘, 승부의 세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역시 어린 시절 쉽게 만졌던) 소고와 같은 국내 전통의 타악기 등을 활용해 스릴과 서스펜스를 강조한다.

특히 강렬한 타격감과 휘몰아치는 질주감을 선사하는 이들 액션 큐들은 정재일이 오랜 기간 관심을 표명해온 우리네 소리 속 전통적인 장단을 응용해서 더 친숙하며 강렬하게 다가온다. 마치 몸속에 내재된 흥과 리듬에 반응하듯 자연스레 집중하고 몰입되게 만든다. 그리고 빔 벤더스 영화 속 라이 쿠더에게서 들을 법한 일렉 기타의 공명감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인물들의 극한 심리와 허무함, 아이러니를 전달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다. 인간 본연의 욕망과 투쟁심, 계급 등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이 키치적이고 시니컬한 사운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에 깔리던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처럼 차가운 조소와 연민, 동정과 풍자, 여운을 짙게 드리운다. 아울러 감정을 절제한 채 차갑게 허공을 맴도는 정재일의 유려한 피아노도 쉬 잊히지 않는 잔향을 남긴다.


실험적인 스코어 그리고 익숙한 삽입곡

게임에서 이긴 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패배한 이들에게 시선을 돌려 경쟁의 참된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드라마처럼 음악도 당장의 성공과 승리, 통과에 도취되지 않고, 삶의 회한과 권태, 피로감에 주목하고 가만히 응시한다. 그 객관적인 울림이 지독히 쓰린 현실을 반영하고 상처를 파고든다. 여기에 <옥자>와 <기생충>에서 호흡을 맞췄던 경험 많은 부다페스트 스코어링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진중한 깊이감과 거대한 스케일을 부여해냈으며, 게임이 막바지에 이르는 후반으로 갈수록 사운드디자인처럼 설계된 공감각적인 일렉트릭 효과가 더해지며 욕망과 인간성 사이에 위치한 황폐함과 잔혹성,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위적이라 할 만큼이 이펙트가 잔뜩 머금은 소리들과 실험적인 색채는 유치하면서도 미니멀한 스코어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다채로운 충격파를 안긴다.

이런 탁월한 스코어 덕분인지 국내 드라마치고 삽입곡이 그리 많이 쓰이지 않았다. 그나마 귀에 들어오는 보컬 곡은 1부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진행될 때 몽타주와 8부 엔딩에서 흐르던 스탠다드 넘버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 유일하고, 나머지 두 곡은 너무나 유명한 클래식이다. 게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제일 먼저 눈을 떴을 때 지금도 방영되고 있는 장학퀴즈를 상징하는 시그널 송이기도 한 하이든의 ‘트럼펫협주곡 3악장’이 흘러나오고, 게임을 하러 이동할 때마다 깔리는 건 경양식 집이나 백화점 등에서 BGM 음악으로 잘 쓰이던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다. 후자는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클래식이자 오스트리아에서 제2의 국가로 여겨지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 매년 앙코르곡으로 연주되는 곡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마이 네임> <지옥> <고요의 바다>

핫한 차기 넷플릭스 라인업에 대한 기대

<오징어 게임>의 예상치 못한 빅 히트로 이후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차기 국내 라인업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늘 10월 <인간수업>을 연출한 김진민 감독과 한소희가 주연한 액션 누아르 드라마 <마이 네임>을 필두로, 11월에는 연상호 감독이 최규석 작가와 함께 그린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지옥>이, 12월에는 정우성이 제작을 맡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SF 시리즈 <고요의 바다>가, 2022년 1월에는 김혜수가 출연한 휴먼 법정 드라마 <소년심판>과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금 우리 학교는>이 예정돼 있다. 이들 차기 라인업들도 이번 <오징어 게임>처럼 흥미진진하고 완성도 높은 사운드트랙이 대중들에게 공개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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