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 <버닝>(2018)은 칸이었다. 이번엔 할리우드다. 배우 전종서가 할리우드 데뷔작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오픈 시네마 부문의 화제작으로 일찍이 매진 행렬에 합류한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은 미국 뉴올리언스의 한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자신의 신비한 초능력을 발견하고 탈출한 소녀의 이야기다.

전종서는 이 신비한 소녀의 모습을 미국이란 낯선 땅에 도달한 자신을 통해 만들어 갔다고 했다. 외국 감독과 외국 사람들 속에 있는 홀로인 아시안과 처음 보는 뉴올리언스의 광경, 이런 것들이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10월 8일 저녁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한 전종서는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에 대한 소식과 자신의 연기 인생에 대해 관객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전날 열린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콜>(2020)로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왜 이걸 관객들이 재미있어하셨는지 모르겠다”는 꾸밈없는 발언을 해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토크 행사장 밖까지 넘쳐나며 시작된 다채로운 대화를 전한다.


어제 부일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축하한다.

<콜>(2020)로 받았다. 근데 왜 이걸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동 웃음)

올해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해외 감독과의 작업, 해외에서의 연기 과정들이 어땠는지, 또 출연을 위해 어떤 결정이 필요했는지 궁금하다.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됐다. 오디션 테이프도 만들어 보내고, 준비과정부터 조금 달랐다. 영화 시나리오 내의 여러 신들을 보내주셨고. 그걸 스튜디오 하나를 대관해 거기서 한 일주일 정도 찍었다. 되게 열심히 찍었다. 만날 수 없으니 화상을 통해 미팅을 가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캐스팅까지 가게 된 것 같다.

촬영은 뉴올리언스라는 곳에서 했다.

촬영은 한국과 다른 점은 없었다. 한 세달 정도 호텔에서 묵으며 촬영했다.

집 떠나오는 거 힘들어하는 스타일인가. 어디 풀어놔도 그냥 잘 살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일동 웃음)

1∼2주 정도만 즐거웠고 그 이후로는 약간의 향수병 같은 걸 앓으면서 지냈다. 한식도 먹고 싶고. 촬영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제 좀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계속 미국에 있으니까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3개월이 3년 같았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한국과 시스템이 다른 곳에서 작업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나. 특히 언어적인 부분은 어땠나.

모나리자라는 캐릭터 자체가 한국말을 제대로 하는 역할도 아니다. 그렇다고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애도 아니고. 태어나서 얼마 안 됐을 시기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나서부터 정신병원에 수십 년 째 갇혀 있던 아이다. 그래서 언어를 모른다. 육체적인 연기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얼굴로 하는, 대사 없는 그런 연기를.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께 첫선을 보이는 작품이다. 정신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뛰쳐나온 모나리자가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땐 뭔가 야생동물 같기도 하고 막 태어난 신생아 같기도 한 표정을 짓곤 하더라. 이 캐릭터를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었던 여자애가 풀려나면서 도망쳐 나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 친구를 사귀고. 단순한 플롯이지만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 영화가 달리 보일 수 있다. 내가 미국에 처음 갔지 않나. 미국이란 나라에 처음 간 내 상황과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외국 감독과 외국 사람들 속에 나 혼자 아시안, 처음 보는 뉴올리언스라는 광경, 이런 상황들이 영화 속의 내 상황이었던 것 같다. 영화 자체가 통합적이고 거침없고 솔직하다. ‘이런 장면을 그냥 보여준다고?’ 하는 부분도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힙하다고 생각을 했다. 작은 영화지만 힘이 있는 영화라고도 생각했다. 이 영화에는 음악이 정말 많이 나온다. 감독님이 엄청나게 큰 스피커를 항상 촬영 현장에 갖다 놓고 내가 촬영을 할 때 빵빵하게 틀어주셨다. 나는 대사를 안해도 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실제 대본에 다 있었던 음악이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기도 했다. 그 음악들과 뉴올리언스에서 너무 더웠던, 그 여름에 찍었던 이 영화를 못 잊을 것 같다.

이제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접고 배우 전종서에 대한 궁금함을 풀어보는 시간들을 가져 보려 한다. 관객들도 그러시겠지만,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데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 연기를 해보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가 주는 세계관에 빠져있었다. 영화가 뭘까,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이 하는 것은 뭐지, 이런 것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라는 꿈을 꾸는 사람은 같은 영화를 봤어도 연출이나 연기처럼 서로 다른 것에 포커싱이 될 수 있는데 나는 연기에 눈이 갔던 것 같다. TV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수첩에 대사를 다 적었다. 그 사람이 입은 옷도, 그 캐릭터가 사는 공간에 있는 모든 것도 갖고 싶었다. 연기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었을 때인데도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수첩에 썼던 드라마나 영화 무엇이었나.

<매직키드 마수리>(2002)다. 내가 마법에 관심이 좀 있었나 보다. (일동 웃음) 그리고 영화로 넘어갔던 건 다코타 패닝 때문이다. <아이 엠 샘>(2001)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데 저걸 어떻게 하는 거지 하면서. 어떤 배우의 팬이라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팬심이 엄청났던 것 같다. 그런데 집에서는 반대가 정말 심했다.

부모님께 아역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나.

아역배우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저거 하게 해달라고, 어떻게 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그런 이야기는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공부하라고 하시더라. 물론 안 했지만. (일동 웃음) 그러다가 확 점화된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캐나다를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이제 단발성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거기 학교를 다녀야 되고, 시험도 봐야 하고 이걸 여차여차 넘겨서 대학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온 거다. 그때 한국으로 도망갔다. 여기서 대학교까지 가고 지내면 한국에 돌아간다 해도 할 수 있는 직업은 언어적인 것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그쪽이었고. 근데 너무 재미가 없는 거다. 그래서 맨날 노트북으로 영화만 봤다. 방학이 2주였는데 크리스마스 때 가족이 보고 싶다고 거짓말하고 한국에 들어왔고,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는 날에 맞춰 도망갔다. PC방도 가고 찜질방도 가고 친구집에 며칠씩 가 있기도 했다. 결국 어머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하고 한국에서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연기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간 거다.

어쨌든 꿈을 쟁취하게 됐다.

그런데 학기가 안 맞아서 나이 어린 친구들이랑 다녀야 했다. 원래 3학년 나이로 들어가야 하는데 1학년으로 들어가게 된 거다. 그러니까 너무 다니기 싫었다. 또 학교에서 연극을 하는데 사실 난 연극에는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영화를 하고 싶은데 학교 3년을 언제 다니나 해서 자퇴할까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 3년이 흘러갔다. 그리곤 대학교에 기적적으로 붙지만, 이제 학교는 안 다니겠다 해서 학교는 보류하고 영화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높은 단계의 극장 회원이었겠다.

영화 볼 돈도 부족했다. 근데 휴대폰 결제라는 게 있지 않나. 휴대폰은 부모님이 요금을 내주시니까 그걸로 결제를 해서 영화를 봤다. (일동 웃음) 한 달에 요금만 5∼60만 원이 나왔다. 그걸로 팝콘도 사 먹고 커피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때는 재미있는 영화가 너무 많이 나와서 하루에 세 편까지도 보곤 했다. 그렇게 밤낮이 바뀐 생활을 오래 하다가 회사를 만난 거다.

갑자기 확 하고 튀어나온 배우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부터 불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버닝>을 만난 거였다.

<버닝>은 캐스팅되는데 4주 정도 걸렸다. ‘이거는 돼도 문제고 안 돼도 문제다’ (일동 웃음) 이렇게까지 생각했다. 연기는 한 번 보셨고 오디션 과정은 상당히 딥했다. 이후엔 내가 어떤 아이인지 다 털어놔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출처가 없지 않나. 그 당시에. (일동 웃음) 카메라 보는 거, 언제 연기를 시작하는지 그런 것을 이창동 감독님 현장에서 다 배웠다.

<버닝>.

지금의 전종서는 어떤가.

지금 나는 살짝 지쳐 있는 것 같다. 새 작품의 촬영이 길어지고 이러면서 조금 지쳤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일부러 생각 안 하려 하지 않나. (일동 웃음)

작품을 제외한 삶을 균형감 있게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촬영을 하면서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한두 시간 내로 촬영장에 도착해서 찍어야 하는 첫 신이 상대 배우와 엄청나게 싸워야 하는 신일 수도 있지 않나. 아니면 총격전을 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를 확 받을 때가 있다. 물론 일이지만. 말한 대로 밸런스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럴 때 순간순간 나를 엄청나게 끌어 올릴 수 있게 만드는 게 아주 단 커피밖에 없더라. 바닐라 라테 더블샷 같은 거. (일동 웃음) 그걸 먹으면 순간적으로 하이가 되면서 정신이 빡 든다. 그러면 그게 한 시간 반 정도 간다. 그러면 또 먹는 거다. 자동차에 휘발류를 주입하듯. <버닝> 때부터 그렇게 했다. 안 좋은 습관이다. 그렇게 커피를 하루에 많이 먹으면 집에 가서 잠을 못 잔다. 자야지 내일 일하러 가는데 못 자고 가는 경우가 많다. 밤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넷플릭스도 봐야 하고. (웃음) 요즘 지쳤다고 말하는 이유가 내 삶의 균형이 없어서다.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싶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싶다. 건강을 잘 챙기고 싶은데 내가 균형 잡힌 사람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것 같은데 이제 좀 구분을 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버닝>이란 작품이 본인에게 큰 영광과 다음으로 이어지는 기회를 줬다. 하지만 큰 관심에 따른 부담은 없었나.

그런 것 없었다. 예전처럼 똑같이 다니고 똑같은 사람 만나고 다녔다. 근데 이제 또 하고 싶다, 재미있다, 다른 것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시기마다 연기에 대한 즐거움이 다를 수 있다. 지금은 왜 재미있나.

연기가 재미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건 절대 바뀔 일이 없다. 드라마를 처음 하는데 영화와 완전히 다른 거다. 시스템도 다르고 연출의 스타일도 다르고. 아 영화는 밥차가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사 먹어야 한다. (일동 웃음) 이런 것 다 다르구나 그러니까 더 재미있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나 배우가 있나.

신인 감독님들과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 <연애 빠진 로맨스>라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도 신인 감독님과 작업을 했는데 되게 재미있었다. 나는 연기자지 않나. 항상 감독에 대한 선망과 로망이 있었다. 연출가의 시선을 가진, 나와 나이 터울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이 가진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그게 되게 섹시한 것 같다. 배우는 사실 없는 것 같다. 그냥 만나지는 거니까.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제작사가 정하는 거라. (일동 웃음)

카메라 앞에서 정말 자유롭게 연기한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연기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그런 것 없다. 실제로 내가 연기할 때 심장이 엄청 빨리 뛴다. 많이 떨고 긴장도 많이 한다. <콜> 찍을 때 안에 마이크를 차고 연기한 적이 많은데 스태프분들 이어셋에 심장 소리가 미친 듯이 들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아니 커피 때문에, 카페인 때문에 심박수가 빨라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일동 웃음)

앞으로의 전종서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동안은 영화를 많이 했었다. 드라마는 처음이고. 내가 보여드리지 않았던 모습이나 영역, 이런 쪽으로 많이 가보려고 한다. 1년 넘게 준비를 했었던 미국 작품이 있었다. 그런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종이의 집>을 하게 됐다. 그 작품을 내가 아직까지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많이 좋아했다. 1년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렇게 아깝지 않은 작품이 있다면 그게 한국 작품이든 미국작품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오디션 준비할 생각이다.


글=부산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