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없던 2년 전의 기억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2019년 11월, 기자는 영국 런던의 영화 촬영 세트장에 있었다. 그때는 이 글을 지금에서야 쓰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코로나19와 함께 멈췄던 마블 영화가 한 편씩 개봉하며 전 세계 영화관도 조금씩 일상을 되찾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2021년 11월 3일 <이터널스>가 개봉한다. 오랜 시간 봉인해 둔 2년 전 이야기를 풀 시간이다.
아침 8시 30분. 우리의 일정은 이른 시간 시작됐다. 호텔 앞에 대기 중인 셔틀에 올라타 여러 나라에서 온 기자들과 디즈니 측 관계자들과 처음 만났다. 우리는 <이터널스> 촬영장인 파인우드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터널스>의 촬영 세트장을 보고 출연 배우들, 프로듀서, 코스튬 디자이너,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스턴트 코디네이터로부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는 현재 시점 런던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프로듀서 네이트 무어와 함께 영화 장면이 될 그림, 테스트 영상, 사진들을 보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의 초반 장면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먼저 보았는데 이를 통해 <이터널스>의 이야기가 현재 시점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터널스>는 런던에 함께 살던 세르시(젬마 찬)와 스프라이트(리아 맥휴)가 데비안츠의 공격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데비안츠가 2층 버스를 넘어뜨리는 순간 세르시가 공격받은 버스를 꽃잎으로 바꾸어 사뿐히 떨어지게 한다. 세르시의 초능력이 비주얼적으로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터널스>에 등장하는 10명의 캐릭터의 관계와 초능력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이터널스가 불멸의 존재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 두 개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과거 스토리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이야기는 세르시와 이카리스(리차드 매든)의 러브스토리다. "현재 시점에서 이카리스와 세르시는 헤어진 상태로 만나게 되는데 영화의 극적인 요소는 이 둘이 왜 헤어졌고,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 것인가"에 있다고 한다. "이카리스는 날면서 눈으로 빔을 쏘는 능력을 지녔는데 이런 능력은 <슈퍼맨> 등 비슷한 사례가 많아서 이를 어떻게 독특하고 신선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네이트 무어는 길가메시(마동석)와 테나(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터널스의 가장 강력한 전사"라고 소개했다. 또한 이 두 캐릭터의 관계가 아주 흥미롭게 전개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초반부 테나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여성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여러 기억들이 쌓이며 본인의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길가메시의 '슈퍼 펀치' 초기 디자인도 볼 수 있었는데 마동석의 맨손 액션이 초능력과 만나면 어떤 장면을 빚어낼지 기대됐다. 테나는 "코스믹 에너지를 조작해 즉각적으로 무기를 만드는 능력"이 있어 "칼을 공 모양으로 만들 수도 있고 두 개의 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이터널스>에서 킨고(쿠마일 난지아니)와 스프라이트(리아 맥휴)는 버디 코미디를 보여줄 예정이다. 킨고는 원래 원작에서 일본 유명 영화배우로 그려졌으나 영화에서는 발리우드 스타로 바뀌었다. 킨고는 "손으로 강한 바람을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스프라이트 역시 원래 어린 남성 캐릭터였으나 영화에서는 어린 여성 캐릭터로 바뀌었다. 스프라이트는 7천 년 동안 13살의 몸으로 사는 인물로 환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드루이그(배리 케오간)는 인간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채 7천 년을 살아온 인물로 "인류가 진화와 발전을 통해 점점 전쟁을 좋아하고 서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는 캐릭터다. 마카리(로런 리들로프)는 "처음에는 지구에 와서 인류의 번영을 돕고 싶어 하지만 현재에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 약간의 환멸감과 좌절을 느끼"는 인물로 "엄청난 속도로 이미 지구 구석구석을 천 회 이상 돌아다니며 속속들이 관찰한" 캐릭터다. 우리는 마카리 역의 초능력인 '속도'가 어떻게 시각효과로 구현되었는지 테스트 영상을 함께 보았다. 네이트 무어는 "마카리가 뛰다가 멈추면 굉음이 발생" 하는데 "그녀의 초능력에 소리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이는 청각 장애 캐릭터로서 다른 사람에게 약점이 되는 소음을 무기로 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에이잭(셀마 헤이엑)은 영화에서 이터널스의 정신적 리더이자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한다. "모든 캐릭터들이 조언을 위하기 위해 찾는 대상"이라고.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기계와 소통하고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테크노패스' 능력을 지녔다.
이터널스, 불가사의한 문명 역사의 일부가 되다
우리는 이터널스의 우주선, ‘도모’의 키프레임도 볼 수 있었다. 도모는 메소포타미아 초기 지구에 착륙한다. 당시 인류는 데비안츠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터널스를 통해 도시를 건설해 큰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종국에는 바빌론을 건설하고 문명을 만든다. 네이트 무어는 "이제껏 영화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명소들을 영화 배경으로 보여주고 싶었으며 이런 점이 내러티브의 강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는 '바빌론의 공중정원'(바빌론의 대표적인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며, "이터널스는 불가사의한 문명의 역사 속 일부가 된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는 아즈텍 제국도 등장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바빌론, 아즈텍 제국, 현대의 발리우드 문화까지, 그간 영화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던 인류 문명과 문화권을 소재로 삼고 싶어 했다. 이를 통해 인류 발전 양상, 유신론적 관점, 생물의 진화, 자본주의의 부상 등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특히 "마블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발리우드 뮤지컬 음악을 예우를 갖추면서도 어떻게 멋지게 담아야 할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터널스>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어벤져스> 둘 다 있다?
그동안 MCU 영화에서 '셀레스티얼'이란 존재에 대한 암시가 있었으나 실제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셀레스티얼은 우주의 초석을 만든 창조자이자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존재기도 하다. <이터널스>에서 새롭게 디자인된 셀레스티얼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마블은 지금까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SF 영화도 만들었고 지상에서 펼쳐지는 <어벤져스>도 만들었는데, 그 둘을 한 번에 하는 것은 <이터널스>가 처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아이코닉 한 캐릭터와 <어벤져스>처럼 더 방대하고 야심 찬 스토리를 선보이는 영화"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컨퍼런스룸에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이 엄청난 세계관을 구현한 세트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제는 컨퍼런스 룸 한 켠에 자리했던 모형 세트를 실제로 만나볼 시간이다.
앞서 네이트 무어는 "클로이 자오 감독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촬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대규모의 세트장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지어진 세트는 마치 테마파크를 연상시키듯 다양한 콘셉트로 짜여 있었다. 이터널스가 다 같이 모여서 일상을 보내는 작은 공간부터 다양한 문화권의 특색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형 세트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이브 스튜어트로부터 세트 구현 과정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러 배경과 문화권을 한 영화에 담아야 하는 만큼 아, 지금 여기는 바빌론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게끔 짰다고 한다. 고대 인도 배경을 구현한 세트장에는 형형색색의 화려함을 담은 소품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는데 아는 사람을 통해 뭄바이에서 공수한 소품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영화에서 그려지는 거대하고 다양한 문화권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그 시기에 오마주를 표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음을 특히 강조했다. 그래야 "이터널스가 현재 어떤 위치에 왜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고편에도 살짝 공개되었던 이터널스가 셀레스티얼로부터 힘을 얻고 옷을 입으러 가는 방도 둘러보았다. 아리솀을 중앙에 배치해 아리솀을 모시는 성당처럼 구성해 경건한 느낌을 더했다.
세트장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우리는 다소 어둡고 좁은 방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이터널스>에 나오는 열 명의 히어로들이 입은 코스튬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실제 배우의 몸을 스캔해서 구현해 전시해 놓은 것이며, "배우들이 똑바로 선 상태에서 약 50여 개의 카메라로 몸을 촬영한 뒤 이를 조합해서 배우의 몸과 똑같은 모델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히어로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터널스의 의상은 유니폼처럼 통일된 느낌이 아니라 각자 다른 게 한눈에 보이는 의상으로 제작됐다. 색은 코믹스 원작의 색감을 고려하면서도 자연, 광물, 암석의 색을 참고했다고 한다. "커다란 보드 표면에 우주나 광물로부터 영감을 받은 색을 칠하면서" 색을 골라 나갔다고. 무광과 유광의 디테일도 모두 살렸으며 스턴트 장면을 찍을 때 수월하도록 신경 썼다. 극 중에서 캐릭터들은 여러 시대를 배경으로 움직이는데 시대에 걸쳐 한 캐릭터가 입는 슈트를 같은 색상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다른 히어로 의상들에 비해 입고 벗기 편하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고.
<이터널스> 스턴트 팀이 꼽은 최고의 배우는 마동석
이제 마지막 일정이다. 다소 지쳐있는 분위기를 단번에 환기시킨 인물이 등장했다. <이터널스>의 스턴트 코디네이터 유니스 허터트였다. 힘 있는 목소리로 <이터널스> 후일담뿐만 아니라 여성 스턴트로 커리어를 쌓아온 과정에 대해 수다 떨 듯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분량상 이 기사에 다 담을 수 없는 게 조금은 아쉽다.
유니스 허터트는 안젤리나 졸리의 스턴트로 1999년부터 함께 일했다.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툼레이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등 8~9개에 작품에 출연했으며, 25년 넘게 스턴트 경력을 쌓아왔다. 그리고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진로를 개발해 <이터널스>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날은 수중 장면을 위한 카메라 테스트를 하고 바쁘게 인터뷰에 참여했다.
<이터널스>를 준비하는 제작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히어로가 열 명이라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 스턴트 팀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각 인물의 스턴트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그 수가 열 명이나 되어서 일이 정말 많다. 특히 모든 이터널스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다"고. 그러나 "열 명이나 되는 캐릭터들을 이리저리 시도해 볼 수 있어 재미있는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배우 마동석과의 작업은 어땠냐는 질문에 "스턴트 팀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희가 어떤 동작, 움직임을 제시하든 자기 앞에 놓인 장면은 뭐든지 그대로 해내는 배우"로 "마동석이 지금까지 한 모든 장면들이 다 멋졌다"며 극찬했다.
안젤리나 졸리의 액션에 대해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법이 없다"며 농담했는데 이 대목에서 그녀와 오랫동안 일한 세월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와 작업하는 게 좋은 이유는 그녀가 늘 캐릭터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 캐릭터라면 유니스 당신이 한 것처럼 방에 뛰어들어가지 않을 거예요'"이런 식으로 서로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고 했다.
“스턴트 코디네이터로서 늘 관객이 실제 배우, 실제 캐릭터가 저 장면 속에서 저 액션을 하는구나라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현란한 액션 그 자체보다 캐릭터를 가장 중요시하게 했는데 생각해 보면 안젤리나 졸리로부터 배운 부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마블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온 제작진에게도 <이터널스> 제작 과정은 새로운 자극과 도전처럼 보였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이렇게 방대한 히어로 세계관, 역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지키는 열 명의 히어로 이야기라니. 이러한 이야기를 <노매드 랜드>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이 만든다니. 좀처럼 영화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관객들 역시 이전의 마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이터널스>가 어떤 모양의 영화일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어지는 제작자 네이트 무어, 배우 마동석, 로런 리들로프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 힌트를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