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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대중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 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작품이야 명작이라는 말로 쉬이 전해 내려오기라도 하지. 하나의 캐릭터가 여러 세대에 걸쳐 존재하기 위해선 수십 년의 공들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할 드라마 <처키>는 더욱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88년 <사탄의 인형>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 앞에 나타난 처키는, 이후 6편의 시리즈 작품과 1편의 리부트 작품에 이름을 올리며 30여 년간 그 명맥을 이어왔다. 유구한 역사가 증명하듯 처키는 전 세대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캐릭터로 남았지만,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해 처키는 새로운 얼굴을 하고 관객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청자를 찾았다. 늘 스크린 속에서만 살인을 저지르던 처키가 난생처음으로 브라운관에 출몰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처키> 시즌1이 바로 처키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사탄의 인형> 시리즈 팬이라면 사랑해 마지않을 작품 <처키>는 또 어떤 이야기로 팬들의 심장을 움켜쥐게 할까.

* <처키> 시즌 1은 오직 웨이브(WAVVE)에서만 만나볼 수 있으며 매주 금요일 새로운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된다.


역대 <사탄의 인형> 시리즈 및 처키 영화/드라마 로튼 토마토 평점 비교 (10월 15일 기준)

역대 최고 평가작? 처키는 영원하다

수십 년간 관객들과 함께한 시리즈 영화라면 모두가 그렇듯,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박해질 수밖에 없다. 전작보다 훌륭한 속편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드라마 <처키>가 끌어모은 호평들은 더욱 의미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미 북미에서는 전편이 다 공개된 만큼 일찌감치 평론가/시청가 평가가 공개됐는데.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처키>는 현재까지 영화/드라마 평점 집계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1%를 유지하고 있다. 공포물은 워낙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인 만큼, 높은 평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 결과가 더욱 상징적이다. 역대 <사탄의 인형>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도 드라마 <처키>의 평점은 월등히 높다. 이는 기존의 <사탄의 인형> 시리즈 팬들과 일반 시청자의 입맛을 고루 만족시킨 결과로 보인다. "새로운 팬들에겐 완벽한 입덕 작품이자, <사탄의 인형> 시리즈 베테랑에게는 신선함을 안겨줄 수 있는 완벽한 작품"(Polygon)이라는 평가에서도 엿볼 수 있듯 기존의 팬층은 물론,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처키를 접하는 이들 역시 수월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즉,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챙겨보지 않은 이들일지라도 <처키> 시즌 1에 탑승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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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키의 드라마 데뷔작 <처키>는 어떤 이야기?

이미 한 번쯤은 드라마화가 됐을 법도 하지만, 처키가 등장한 이후 30여 년 역사상 처키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포 영화 프랜차이즈는 왔다가도 사라지지만, 처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듯 존재 자체가 곧 역사인 캐릭터 처키는 드라마에서도 독보적인 힘을 보여준다. <사탄의 인형>이 인형의 몸에 들어간 살인마와 그 인형을 선물 받은 소년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듯 <처키> 역시 15살의 소년 제이크(잭커리 아서)를 쇼의 정중앙에 세우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된 제이크의 유일한 취미이자 꿈이 인형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인데, 그 일환으로 처키와 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제이크의 집에선 알 수 없는 죽음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처키>와 <사탄의 인형>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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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원작과 가장 다른 설정이 있다면 바로 주인공의 나이다. 원작의 주인공 앤디가 처음 처키를 만났을 때의 나이가 7살이었다면, <처키>의 주인공 제이크는 15살 무렵 처음 처키를 집에 들이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앤디는 그저 해맑은 미소로 처키를 안았다면, 제이크는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처키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그렇기에 처키와 제이크의 관계는 좀 더 묘하게 흘러간다. 원작 속 처키의 살인이 비교적 무분별하게 이뤄졌다면, 드라마 속 처키는 자신이 저지르는 살인에 응당한 변명을 마련한다. 제이크를 괴롭히는 인간들을 '처단한다'는 일종의 정의감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 책임감을 제이크에게도 부과한다. 결국 시청들에게 한 층 더 복잡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탈바꿈했다고 할 수 있겠다. 공포감에 휩싸이면서도 때론 흔들리기도 하는 10대 주인공 제이크를 주인공으로 빚어낸 <처키>는 하이틴 드라마가 지닌 성장 서사와 슬래셔 장르의 끔찍함을 한데 버무려내며 <사탄의 인형>과는 또 다른 공포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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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키와 돈 만치니

<처키>의 아빠, 돈 만치니가 돌아왔다

<사탄의 인형> 시리즈 팬들이 드라마 <처키>를 목 빠져 기다린 이유는 사실상 단 하나다. 바로 처키의 아버지인 각본가 돈 만치니가 돌아왔기 때문. 1988년 <사탄의 인형> 통해 처키를 낳은 돈 만치니는 약 30년 동안 처키와 꼭 붙어 있었다. <사탄의 인형> 1~3부터 <처키의 신부> <씨드 오브 처키> <커스 오브 처키> <컬트 오브 처키>까지. 처키의 출연작을 모두 직접 매만지고 써 내려간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다만 가장 최근작인 <사탄의 인형>(2019) 리부트에는 원작자로만 이름을 올려 시리즈 팬들의 아쉬움을 샀었다. 당시 돈 만치니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리부트 작품이기에 큰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가 당시 리부트 작품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다. 당시 돈 만치니는 새로운 시도이자 야심작인 TV 시리즈 <처키>를 바삐 준비하고 있었다. 돈 만치니는 드라마 <처키>의 기획, 각본, 일부 연출까지 도맡으며 다시 한번 처키에 사활을 걸었다. <처키>가 브라운관으로 옮겨져 왔다고 해서 그 정체성이나 독보적인 색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돈 만치니 이름 하나로 필요가 없어졌다.

처키의 목소리를 연기하 배우 브래드 듀리프

드라마 <처키>가 '찐'인 또 하나의 이유

돈 만치니 말고도 드라마 <처키>를 봐야 할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바로 브래드 듀리프다. 브래드 듀리프 역시 돈 만치니의 손을 잡고 다시 <처키>에 돌아왔다. 브래드 듀리프는 1988년 <사탄의 인형>부터 2017년 <컬트 오브 처키>까지 무려 30년간 처키 목소리를 도맡았다. 돈 만치니와 마찬가지로 <사탄의 인형> 리부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사탄의 인형> 시리즈 그리고 처키를 영화화한 작품들에게 있어 브래드 듀프리의 존재는 단순 목소리 연기 그 이상을 의미한다. 처키가 뿜어대는 특유의 불편감의 근원엔 처키의 목소리가 있다. 재치와 공포를 오가는 브래드 듀프리의 걸걸한 목소리는 처키라는 캐릭터만이 지닌 정체성을 만들어내며 처키를 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브래드 듀프리야말로 처키의 고유성을 논할 때면 가장 앞서야 할 전제조건이다. 이번 작품 <처키>에서도 브래드 듀프리의 기막힌 완급조절은 빛을 발한다. 처키의 시그니처라고도 할 수 있는 거친 대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회차를 거듭할수록 배가되는 광기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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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걸맞은 각색과 연출

80년대 호러의 아이콘이 21세기가 되어서도 관객들과 숨 쉴 수 있는 이유. 처키를 둘러싼 사회 상황들을 시대에 맞춰 꾸준히 각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라마 <처키>가 그저 <사탄의 인형> 시리즈에 업혀 가는 작품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호평을 끌어낸 부분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처키>는 원작의 서사를 답습하기보단 새로운 설정들을 통해 세계관에 살을 덧댔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라면 바로 주인공이 동성애자라는 점이다. 게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왕따와 학대를 당하는 제이크가 처키를 만나게 되며 제 나름대로의 성장을 경험하는데. 이 과정이 꽤나 생경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공포 영화 프랜차이즈에서 게이 캐릭터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10대로 설정된 게이 캐릭터는 더더욱 만나기 어려웠기에 <처키>의 플롯은 캐릭터 설정만으로도 새로운 구석을 마련한다. 더욱이 재밌는 건, 안하무인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미치광이 처키가 제이크의 성 정체성에 거의 유일한 지지를 보내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존의 공포물에서 쉽사리 볼 수 없었던 설정들을 통해 새로이 업데이트된 <처키>는 현명한 방식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며 처키 프랜차이즈의 밝은 미래를 증명했다. 이미 <처키> 시즌 2 역시 제작이 확정되었으니, 앞으로 더 다양한 <처키> 이야기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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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이라면 사랑해 마지않을

<처키>를 보다 더 디테일하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곳곳에 녹아있는 이스터에그와 레퍼런스 작품들을 찾아보는 데 있다.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소품, 장면, 대사들이 <처키>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드라마에서 처키가 대뜸 뉴스를 틀어달라고 명령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1988년 개봉한 <사탄의 인형>에서 처키가 베이비 시터에게 9시 뉴스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탄의 인형> 시리즈 외에도 <처키>는 <쏘우> <토이 스토리> <한니발> 등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며 쇼의 곳곳에서 남다른 재치를 보여준다. 이렇듯 <처키>의 제작진들은 연출적인 디테일을 살리는 데 굉장한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는데. 제작진의 연출 센스는 감각적인 삽입곡에서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처키>의 삽입곡은 공포라는 장르를 살리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혼합해 선보이며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극대화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서 만나볼 수 있는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COPYCAT'부터 마달렌 듀크(Madalen Duke)의 ‘How Villains Are Made’까지. 정성 들여 선택한 곡들을 통해 <처키>의 분위기를 더욱 섬뜩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