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우먼>.

2017년 작 칠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한 장면이다. 연인 오를란도(프란시스코 리예스)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 슬픔에 잠겨 있던 마리나(다니엘라 베가)는 일군의 남자들에게 린치를 당한다. 한낮의 거리에서 마리나를 납치해 SUV에 태워 간 남자들은, 다름 아닌 오를란도의 아들 브루노(니콜라스 자베드라)와 그 친구들이다. 남자들은 마리나에게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던진다. 수술은 했냐. 축구선수 다리로 드레스를 입어 봤자지. 네가 줄리아 로버츠라도 된 줄 아느냐. 마리나는 지지 않고 브루노에게 “네 아버지가 살아서 이 광경을 봤다면 수치스러워했을 것”이라 말하지만, 브루노의 친구들은 셀로판테이프로 마리나의 얼굴을 칭칭 감으며 입 닥치라고 윽박지른다.

가정을 떠난 아버지의 새 연인에게 자식들이 불쾌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한 린치를 가하는 데엔 이유가 따로 있다. 바로 마리나가 트랜스젠더 여성이기 때문이다. 오를란도의 전처 소냐(아린네 쿠펜하임)는 마리나의 면전에 “미안한데 키메라 같다”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고, 브루노와 그 일당들은 마리나의 얼굴을 셀로판테이프로 잔뜩 일그러뜨린 뒤에야 그녀를 풀어준다.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이 사회가 지정한 지정성별 ‘남성’과 일치하지 않아 혼란스러웠을 마리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된 뒤에 비로소 혼란을 빠져나왔을 것이다. 오를란도는 그런 마리나를 혼란 없이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은 그녀를 ‘키메라’라고 부르고,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려야 비로소 안도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자신들이 이유 없이 혐오하는 게 아니라고, 혐오할 만하니까 하는 거라고 정당화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테니까. 마리나의 얼굴을 일그러뜨려야 비로소 자신들의 혼란과 혐오를 변명할 수 있었을 테니까.

<판타스틱 우먼>은 마리나가 연인 오를란도의 죽음을 온전히 애도할 권리를 얻어내고 제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오를란도의 죽음을 애도하려면 생전에 그의 연인이었다는 지위를 인정받아야 하는데, 노년의 남성과 젊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이루어진 커플을 고운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마리나는 오를란도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당하고, 함께 키우던 개를 빼앗기고, 끊임없이 모욕당하면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실제 트랜스젠더 여성인 다니엘라 베가가 표현하는 마리나의 눈빛은 서늘하고, 오랜 수난과 모욕 끝에 얻은 한 줌의 평화는 서글프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이토록 어려울 이유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트랜스젠더 혐오는 칠레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 정반대편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 혐오는 너무도 생생한 현재형이다.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통해 한국의 트랜스젠더는 가정, 학교, 직장, 군대, 병원 등 ‘모든 장소에서 혐오나 차별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65.3%는 “지난 1년간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57.1%는 “성 정체성 때문에 구직을 포기했다”고 답했으며, 인터넷에서 트랜스젠더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97.1%에 달했다.

97.1%. 생각만 해도 너무 아득한 수치인데, 수긍이 간다. 한국어 기반 인터넷 공간에선 어디서든 성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발언을 접할 수 있다. 그게 트랜스젠더라면 혐오는 더더욱 첨예해진다. 성확정수술을 거친 트랜스젠더 여성의 육체에 대한 천박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 남성들과, 트랜스젠더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며 그들의 여성됨을 부정하는 여성들,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와 권리를 끊임없이 부정해 온 보수 기독교인들의 합작이 지금 이 순간에도 소셜미디어에서, 각종 커뮤니티에서, 유튜브 댓글창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리나의 얼굴에 셀로판테이프를 칭칭 감던 브루노 패거리들은 산티아고 거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신촌에는 하늘색, 핑크색, 흰색의 깃발이 나부꼈다. 국방부의 강제 전역조치에 맞서 싸우다 세상을 떠난 故 변희수 하사의 1주기를 맞아,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흔든 트랜스젠더 플래그였다. 그녀의 부대 지휘관과 동료들은 태국에서 성확정수술을 받고 돌아온 변 하사를 여전히 동료로 여기며 함께 복무하기를 소망했지만, 국방부는 그녀의 성확정수술을 ‘고의적인 남성 성기결손’으로 보고 심신장애로 인한 복무 불가를 주장하며 그녀를 강제 전역시켰다. 강제 전역의 위법성을 놓고 법정에서 다투던 故 변희수 하사는, 2021년 3월 3일 자택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녀의 사망시간을 2월 27일 오후 5시~9시 사이로 추정했다.

2021년 10월 7일, 대전지방법원 행정2부는 사망 당시 그녀의 성별이 이미 여성으로 정정되었음을 이유로, '남성 성기 상실 등 심신장애에 해당한다'고 본 군인사법 처분 자체가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원고가 세상을 떠난 뒤에 거둔 승리가 과연 승리였을까. 혐오와 차별을 ‘기갑의 돌파력으로’ 극복하겠다고 말하던 故 변희수 하사의 빈 자리, 남은 사람들은 만기 전역을 주장하는 국방부를 향해 ‘만기 전역을 하루 앞두고 사망했으니 응당 순직 처리를 하는 것으로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더 이상 이런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트랜스젠더 플래그를 흔들었다. 누군가 죽지 않고도 차별과 맞서 이길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구호를 외쳤다.

<판타스틱 우먼>의 말미, 마리나는 헨델의 아리아 <세르세>(Serse) 중 ‘Ombra Mai Fu’를 부른다. ‘세상 그 어느 나무 그늘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이 곡은, 극 중 페르시아의 왕인 세르세(크세르크세스)가 자신이 아끼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향해 부르는 찬가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곡은 본디 음역대가 높아 카스트라토가 불렀던 곡이고, 현대에는 카운터테너나 남장한 콘트랄토 가수가 부르곤 하는 노래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여리고 아름다운 내 사랑하는 플라타너스 잎사귀야.

운명이 네게 미소짓게 두렴.

천둥과 번개, 폭풍도 감히 네 평화를 방해치 못하리.

불어오는 남풍도 널 욕보이지 못하리.

세상 그 어느 나무 그늘이

이보다 더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애틋하랴.”

마리나는 욕보임 없이 평화롭고 다정한 삶을 찾아냈을까. 천둥과 번개, 폭풍과 남풍을 이겨내고 끝내 그렇게 제 존엄을 지켜냈을까. 더 많은 마리나들에게, 더 많은 변희수 하사들에게, 천둥과 번개, 폭풍과 남풍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만한 나무 그늘을 드리워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