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차스테인이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타미 페이의 눈>에 출연한 차스테인의 경쟁자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스펜서>), 니콜 키드먼(<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올리비아 콜먼(<로스트 도터>), 페넬로페 크루즈(<페러렐 마더스>) 등이었다. 여우주연상 후보를 배출한 5편의 영화 가운데 오늘(3월 29일) 기준 국내 개봉작은 3월 16일 개봉한 <스펜서>가 유일하다. 다만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현재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에서 서비스 중이긴 하다. <페러렐 마더스>는 3월 31일 개봉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스트 도터>의 국내 공개일은 미정이다. 이 포스트에서 다룰 <타미 페이의 눈>은 3월 30일부터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즉, 국내 영화 팬이 지난 28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의 행방을 점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 <스펜서>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고,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의 이른바 ‘오스카 레이스’(Oscar Race)에서 스튜어트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기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차스테인의 오스카 수상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차스테인은 <타미 페이의 눈>에서 어떤 연기를 선보였을까. 글을 작성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루만 더 지나면 확인할 수 있지만 마음이 급하다. <타미 페이의 눈>이 어떤 영화인지 공개된 정보들을 모아서 소개해본다.
완벽한 싱크로율
싱크로율이라는 용어는 영화 홍보를 위한 글이나 언론에서 생산하는 리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싱크로율이 높을 수록 배우들의 연기에 극찬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전제는 해당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혹은 웹툰이나 만화 속 캐릭터를 연기했거나. <타미 페이의 눈>은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경우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타미 페이 베이커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국내 영화 팬은 잘 알지 못하는 타미 페이 베이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보자.
타미 페이 베이커는 태미 페이 메스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위키피디아 한국 페이지에서는 “미국의 전도사, 가수, 사업가, 작가, 사회자, 방송인이다”라고 짧게 설명하고 있다. 베이커가 아닌 메스너라는 성을 쓰게 된 이유는 <타미 페이의 눈>에 등장하는 짐 베이커(앤드류 가필드) 목사와 이혼했기 때문이다. 베이커 목사와 타미 페이 베이커는 1980년대 미국을 휩쓴 텔레벤젤리스트(televangelist)였다. 텔레벤젤리스트는 텔레비전과 복음주의(evangelical)에서 파생한 단어 벤젤리스트(전도사)의 합성어다. 즉, 두 사람은 TV 전도사였다. 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PTL(Praise the Lord, 주를 찬양하라)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고, PTL 방송 시청자는 미국에서 1000만 명이 넘었다. 부부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디즈니랜드를 본따 만든 헤리티지 USA라는 리조트, 테마파크도 건설했다. <타미 페이의 눈>은 이 두 사람, 그 가운데 짙은 마스카라로 유명했던, 마스카라의 여왕, 타미 페이 베이커의 흥망성쇠와 구원을 다룬 작품이다. 짐 베이커는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했다. 차스테인 못지 않게 가필드는 짐 베이커 역을 탁월하게 연기했다고 알려졌다.
싱크로율에 대해 말할 차례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타미 페이의 눈>에서 타미 페이 베이커와 최대한 닮아 보이도록 4시간에 걸쳐 특수 보철물을 얼굴에 붙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차스테인인지 알아 보기가 힘들 정도다. 이뿐만 아니라 의상부터 분장, 억양까지 완벽하게 실존 인물과 비슷하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차스테인은 타미 페이 베이커가 부른 찬송가도 직접 불렀다. 차스테인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헬프>, <제로 다크 서티>에 이어 3번째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됐다. 그리고 마침내 첫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차스테인의 높은 싱크로율은 배우 혼자만의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타미 페이 베이커의 1980년대풍의 짙은 화장은 <타미 페이의 눈>의 분장팀에 의해 탁월하게 재현됐다. 그 결과 <타미 페이의 눈>은 아카데미 시상식 분장상(린다 다우즈)도 차지했다. 이 결과는 촬영상을 비롯해 기술 분야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대거 차지한 <듄>과 <커밍 투 아메리카>, <크루엘라>, <하우스 오브 구찌>를 제치고 이룬 성과다.
다큐멘터리 원작
<타미 페이의 눈>은 2000년에 제작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원작으로 제작된 전기 영화다. 펜톤 베일리, 랜디 바바토가 공동으로 연출한 다큐멘터리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2012년 무렵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극영화 저작권을 구매하고 제작에 나선 영화가 <타미 페이의 눈>이다. 2021년에 미국에서 개봉했으니 꽤 오랜 시간 차스테인의 열정이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을 다룬 수많은 영화가 있지만 다큐멘터리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많지 않을 듯하다. <타미 페이의 눈>은 <빅 식>으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마이크 쇼월터 감독이 연출했다. 참고로 <타미 페이의 눈>의 원작 다큐멘터리가 나오기 전에 짐과 타미 페이 베이커 부부를 다룬 작품이 이미 제작된 바 있다. 1990년 케빈 스페이시와 버나뎃 피터스가 출연한 TV영화가 있다. 제목은 <폴 프롬 그레이스>(<Fall from Grace>)다.
아카데미 시상식까지의 여정
<타미 페이의 눈>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제시카 차스테인의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이었다. 2년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사례를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내용이 서두에서도 언급한 오스카 레이스다. 오스카 레이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연말연시에 열리는 각종 시상식 시즌에 홍보 활동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 과거 아카데미 시상식은 2월에 열렸기 때문에 지금과는 시기가 좀 다르다. <타미 페이의 눈>의 경우에는 어땠을지 돌아보자. <타미 페이의 눈>이 처음 공개된 곳은 2021년 9월에 열린 토론토국제영화제였다. 이후 9월 17일에 미국에서 개봉했다. 약 27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현재 로튼토마토지수는 70%를 기록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각본은 비판하고 차스테인의 연기는 칭찬했다. 그들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차스테인은 오스카 레이스 기간 열린 주요 시상식인 미국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후보에 올랐다. 이 가운데 미국배우조합상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들 시상식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더불어 아카데미 시상식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barometer)라고 불리곤 한다. 과거에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최근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의 성차별, 인종차별 등 각종 논란으로 그 위상이 사라졌다. 대신 미국배우조합상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배우조합상의 결과가 오스카의 향방을 예측하는 중요 지표가 된다. 이유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투표하는 아카데미 회원 가운데 배우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스펜서>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보다 <타미 페이의 눈>의 제시카 차스테인이 처음부터 훨씬 수상 가능성이 높았다고 볼 수도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