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게 참 허무해. 글로는 얼마든지 입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도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잖아? 가끔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어.” 어쩌다 글 쓰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면 종종 이런 토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긴, 글로 세상을 바꾸는 일 같은 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특히 정보 생산량이 폭증해 사방에서 온갖 글들이 쏟아지는 2020년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글 쓰는 사람이 n명으로 늘어나면, 한 사람의 글이 지니는 힘의 기본값 또한 1/n로 줄어드는 거니까. 글쓰기는 이제 자기 만족으로 끝나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누군가의 마음을 한 뼘이라도 움직인다면 기적인 일이 되었다. 그 투덜거림이 무엇인지 나도 너무 잘 안다. 이런 글 써봐야 무엇 하나 하는 허무함을 한철 열병처럼 심하게 앓았던 나는, 이제 그런 투덜거림을 들을 때마다 네 마음 내가 안다는 마음을 담아 싱긋 웃는다.

읽고 쓰고 말하는 일이 막연하고 허무해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면, 나는 <밤의 문이 열린다>(2018)를 생각한다. <밤의 문이 열린다>의 주인공 혜정(한해인)은 애초에 업으로 글을 쓰거나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한다 해도 혜정은 심각할 정도로 입을 열지 않는다. 도시 외곽의 공장에서 일하는 혜정의 하루 일과는 단조롭고, 동료들과의 소통은 일에 필요한 수준에 그쳐 있으며,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할 때에도 제안을 거절할 뿐 무슨 사정인지 더 깊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 동료의 고백조차 혜정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혜정은 살아남는 것에 지쳐 세상과의 대화를 아예 그만 둔 사람이다. 마음을 짜내어 말을 걸어 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혼자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겹고 무서우니까.

그랬던 혜정의 하루는, 역설적으로 그가 유령이 되어 자신의 방에서 눈을 떴을 때를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쩌다가 유령이 되었는지 기억은 안 나도, 제 방문에 ‘수사 중 – 출입금지’ 라는 문구가 새겨진 폴리스 라인이 쳐지고 형사들이 들락날락하는 광경 앞에서 혜정은 겁에 질린다. 그런데 시간은 좀처럼 내일로 넘어가지 않는다. 유령에겐 더 살아갈 날이 없기에, 혜정에게만큼은 시간이 내일이 아니라 어제로 흐르는 것이다. 혜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제 죽음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어제의 시간을 복기한다. 세상을 향해 말문을 닫고 눈과 귀를 막고 살았던 날들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주변에 말을 먼저 건넬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있기에만 바빴던 혜정은, 그렇게 유령이 되고 난 뒤에야 생을 음미하고 욕망한다.

(아직 영화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어제의 시간을 걷는 혜정의 여정은, 그에게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준다. 어쩌면 막연히 두려워서, 뭔지 몰라서, 낯설어서, 내가 손해를 볼 것 같아서 피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을 걸지 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처음엔 삶과 죽음 사이에 갇힌 제 처지를 구하기 위해 시작한 혜정의 행보는 시간이 흐를수록 연대가 되고, 나아가 그 둘이 별개가 아닌 지점까지 나아간다. 혜정은 제 죽음과 연결된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예정된 비극을 막아 조금이라도 다른 결과를 만들기 위해 깊은 밤의 시간을 있는 힘껏 달린다. 저마다 세상에 말을 걸지 못하고 혼자 남겨져 울던 사람들에게, 유령인 자신이라도 손을 내밀면 뭔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사는 게 그렇다. 누구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번거롭고 품이 드는 일 같고, 내 한 몸 챙기는 것도 충분히 바쁘고 고단하고, 세상은 험하고 무섭다. 내가 말과 행동에 실어 보내는 선의나 포부는 세상의 소음 속에 금방 희석되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일상은 지겹다. 지치고 고단하고 두려운 마음에 눈과 귀를 걸어 잠그고 입을 닫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밤의 문이 열린다>는 말한다. 당신이 세상이 무서운 것처럼 나도 세상이 무섭다고. 그런데 우리는 그 공포를 넘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고. 우리는 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의 고리로 묶이고 묶여 있는 존재들이어서, 너의 안녕이 나의 안녕과 별개가 아니라고. 무섭지만, 아니 무섭기 때문에 더더욱 서로에게 손을 뻗어야 한다고.

나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유령이 된 후에야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꼬꼬- 꼬꼬-” 하고 시그널을 보내던 <밤의 문이 열린다> 속 혜정을 생각하며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물론 글 한 줄로 사람들의 영혼에 불을 지피고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예전에 포기했다. 여전히 글을 쓰는 건 피곤하고, 세상은 바위처럼 단단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인다. 아마 높은 확률로, 내일의 세상도 오늘의 세상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겠지. 그래도 혹시 또 아는가. 내가 쓴 글이 누군가를 구할지. 그 누군가의 삶이 융성해 다시 또 다른 이의 삶을 구하고,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나를 구해줄지.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삶을 구하면서 세상을 손톱만큼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지.

아주 드물게 그런 인사를 받는다. 글 잘 봤다고. 세상 천지에 내 편은 없고 나 혼자 고립된 것만 같아 외로웠는데, 당신이 쓴 글을 읽고는 조금은 덜 외로워져서 많이 위안을 받았다고. 덕분에 고마웠다고.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래도 생각해본다. 모든 게 헛된 건 아닐지 모른다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할지언정,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지치지 말고 쓰자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자고, 끝끝내 함께 살아내 보자고.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