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명작 게임이 영화화되어 참혹한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그것만큼 잔인한 악몽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새 실망하는 데에 익숙해진 게임 팬들 사이에선 '게임+영화=망함'은 공식이 되었다. 실제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손에 꼽는다. 이만큼 실패했으면 포기할 때가 되었는데 오기가 생겼는지 아니면 대박날 각본이 없는지, 아직도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게임 원작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묵혀만 놓기엔 아까운 흥행 보증 수표이기 때문. 원작 팬을 기반한 고정 팬 확보와 완성도 높은 스토리, 잘 만든다는 전제하에 보장되는 대중성까지. 그래서인지 영화화가 확정된 작품 소식이 할리우드에서 끊이질 않는다.
그토록 전전긍긍하던 할리우드에도 좋은 본보기가 생겼다. 너티독이 개발한 게임 <언차티드>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언차티드>가 호평을 받았다. <언차티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네이선'이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보물을 찾아 헤매게 된다는 내용으로, 게이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영화 버전은 게임의 설정을 온전히 영화로 제작했다기보다는 원작을 각색했다고 한다. 기존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별다를 바 없이 보여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만하면 만족스럽다는 반응도 많다. <언차티드> 말고도 앞으로도 볼 수 있는 영화화 작품들이 쌓여있다. 제작은 확정되었으나 아직 개봉되지 않은 작품 4편을 소개한다.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023, HBO 방영 예정
너티독이 제작한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2013년 최고의 게임이라 불리었던 이른바 '명작'이다. 지구에 정체불명의 곰팡이가 퍼져 인류의 대부분이 죽거나 괴생명체가 되어버린 지구.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 상황에서 밀수업자 '조엘'은 밀수 대상인 어린 소녀 '엘리'를 파이어 플라이 기지로 데려가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1편의 주된 스토리. HBO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도 1편을 기반으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샘 레이미가 감독을 맡아 영화화될 예정이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취소되었다. 스튜디오 측에서 대형 액션 요소에 치중하려 했기 때문. 원작 게임의 디렉터인 닐 드럭만은 주인공 '엘리'와 '조엘'의 서사가 중점인 원작과 액션 영화는 결이 맞지 않다 판단하여 결국 드라마 제작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에 원작 팬들은 "오히려 다행"이라며 "흔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가 될 뻔했다"고 반응했다. 게임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영화는 제작자와 원작 팬들 모두 원하지 않을 테니까. 닐 드럭만은 게임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각본을 맡았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가장 큰 매력은 탄탄한 세계관도 세계관이지만, '엘리'와 '조엘'의 유별난 유대관계이지 않을까. 캐스팅 소식이 공개되었는데 반응이 뜨겁다. <왕좌의 게임>의 주역들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주인공이 된 것. <왕좌의 게임>에서 '리아나 모몬트'로 인기를 끈 벨라 램지가 '엘리' 역을 맡고, '오베린'의 페드로 파스칼이 '조엘'을 연기하게 되었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던 이들이 얼마나 멋진 호흡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6월 초에 촬영이 마무리되어 2023년 방영 예정이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더 무비>
워너 브라더스
2014년 마인크래프트 개발사 모장이 <마인크래프트 더 무비> 제작 계획을 밝힌 뒤 어느덧 8년이 지났다. 네모난 블록 형태로 이루어진 게임이다 보니 영화화가 쉽진 않겠다 예상했으나 이토록 난항을 겪을지는 몰랐다. 감독이 두 번이나 바뀌고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는 둥, 영원히 개봉하지 못할 것 같았던 <마인크래프트 더 무비>. 그래도 최근엔 몇몇의 희소식을 들려주고 있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몇 차례나 바뀐 작품이다 보니 작품을 누가 맡을지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현재 확정된 감독은 자레드 헤스, 시나리오 작가는 엘리슨 슈로더다. 자레드 헤스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와 <마스터마인드> 등을 연출한 개성파 감독이고 엘리슨 슈로더는 <히든 피겨스>와 <겨울왕국 2> 각본을 써 실력이 입증된 작가다.
뒤이어 <마인크래프트 더 무비> 주연으로 '아쿠아맨' 제이슨 모모아가 확정되었다. 캐스팅 소식 외엔 영화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없기 때문에 스토리조차 추측하기 힘들다. 영화 속에서 제이슨 모모아는 어떤 모습일까. 그가 네모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목소리로만 출연할지 궁금하지 않나. 부디 순조롭게 제작되기를, 더 이상 변동이 없기를 (개인적으로) 바라본다.
<그란 투리스모> / 미정
소니 픽처스
보아라, 고도로 발달한 레이싱 게임은 현실과 구별할 수 없다. <그란 투리스모>의 플레이 화면을 보면 이게 게임인지 실제 레이싱 경기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제작진의 혼을 갈아 넣은 게 분명한 모델링이 충격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란 투리스모>는 애초부터 레이싱 아케이드 게임이 아닌, 레이싱 시뮬레이터에 초점을 두어 개발되었다고 한다. 액션과 스토리를 함께 즐기는 다른 게임과 다르게 온전히 운전에만 몰입한 게임이라는 것. 그런데 이런 게임이 영화화가 된다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게임 속에 특별한 스토리라인이 없는데 어떻게 영화로 만든다는 걸까. 실제로 영화화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대중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아무 자동차 영화나 찍고 그란 투리스모라고 제목 붙이면 되는 거 아니"냐는 댓글이 대부분. 아직은 기획 초기라 확정된 바가 없지만 소문으로는 감독 후보 중 1순위로 <디스트릭트 9>과 <엘리시움>의 감독 닐 블롬캠프가 올랐다고 한다. 게이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게임 시리즈인 만큼 원작 팬들의 기대도 클 것이라 예상한다.
영화 <슈퍼마리오>
2023, 개봉 예정
이미 폭망한 전적이 있는데도 굴하지 않고 또다시 제작되었다. 게임 <슈퍼 마리오>를 본떠 만든 1993년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그야말로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낸 졸작이다.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심지어 영화에 출연한 배우 밥 호스킨스조차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자신이 한 최악의 작업이라 표현했다. 도대체 어떻길래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 사진을 준비했다. 심약자는 주의하길 바란다.
심지어 12세 관람가였다. 이 비주얼을 재밌어한 사람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극장에서 충격받았다고 토로한 사람도 많다. 귀여운 굼바가 저런 모습이라니. 무섭고 슬픈(?) 과거를 가진 <슈퍼 마리오> 실사화 영화가 30년 만에 다시 제작된다. <슈퍼배드>를 제작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하여 만들 예정이며 이번엔 원작자 미야모토 시게루가 제작에 참여한다. 이전 영화가 망한 원인 중 하나로 원작자의 부재가 꼽혔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뿐만 아니라 성우진 목록도 꽤 알차다. '마리오' 역에 크리스 프랫, '쿠파' 역에 잭 블랙, '동키 콩' 역에 세스 로건, '피치' 역에 안야 테일러 조이가 캐스팅되었다. 인기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총집합한 격인데 이번엔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영화 <슈퍼마리오>는 내년 4월 7일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