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40대 아재들은 오늘 이야기할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아마 이 만화를 더 기억하지 않을까? <보물섬>이라는 만화를. 어린 마음에 무지개 너머 세상을 동경하던 그때 밖에서 놀다가 "만화 할 시간이다!!!"라는 친구의 외침에 다다다다 집으로 달려가던 그때가, 그때 놀던 골목길이 가끔 기억나곤 한다. 그 시절 주인공인 소년 짐과 해적 실버의 모험은 초등학생(이라 쓰고 국민학생이라 읽...)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따지고 보면 실제 해적이라는 건 그냥 ‘바다 강도’고, 현실 속에서 강도가 멋있을 수는 없겠지만 예술작품 속 해적이란 존재는 실제보다 조금 더 멋지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문학작품 속 해적의 소위 ‘클리셰’라는 측면에선 아마도 이 <보물섬>(로버트 스티븐슨이 쓴 원작 소설이든 이 애니메이션이든)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도 이 ‘실버’의 이미지가 언뜻 언뜻 보여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총 4편이 제작, 개봉되었고 2017년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5번째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총독의 딸을 몰래 사랑하던 대장장이가 양아치 해적 잭 스패로우를 만나서 언데드 해적들과 싸우는 아주 전형적인 디즈니 스타일의 해피엔딩 영화가 1편이었는데, 이 1편의 초대박 흥행으로 인해 향후 5편까지 시리즈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조니 뎁의 원맨 캐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영화인데 영화답게 잔인하고 음험한 해적이라기보다는 뭔가 얄팍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면들이 많이 보여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다.
영화 속에서 캡틴 스패로우나 다른 뱃사람들이 아주 입에 달고 사는 술이 있다. 바로 ‘럼’이다.
뱃사람들의 술이라 일컬어지는 럼은 원래 즙을 짜내고 남은 사탕수수 찌꺼기를 발효, 증류시켜 만드는 술로, 제법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원래 싸구려 술이다. 18세기 무렵 카리브해 근처에서 식민지 농법인 플랜테이션 농법이 대규모로 행해졌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를 사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보려고 하다가 증류 기술자들이 그 지역에 이주하면서 럼이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18세기 장거리 항해를 하던 배에서는 물을 오래 보관할 수가 없어서 물의 대용품으로 술을 비축했는데 맥주와 와인 등의 양조주는 도수가 낮아 쉽게 상했고 위스키나 브랜디 등은 너무 비쌌기 때문에 싸고 강렬했던 럼이 바닷사람의 술로 정착하게 되었다.
럼은 크게 헤비럼, 미디움 럼, 라이트 럼(화이트 럼이라고도 한다)의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각각 색과 제조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색도 맛도 헤비럼이 가장 묵직하고 화이트 럼이 가장 가볍다. 헤비 럼은 스트레이트로, 화이트 럼은 보통 칵테일의 재료로 많이 소비되는데, 헤밍웨이 칵테일로 유명한 다이키리 이외에도 몰디브에서 마시면 특히 맛있을 것 같은 모히토 등이 럼으로 만든 대표적인 칵테일이다.
원래 럼은 사탕수수즙을 짜내고 난 찌꺼기로 만들었지만 (비슷한 종류의 술로 와인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증류해 만드는 그라파 등이 있다) 최근엔 사탕수수를 그대로 써서 만든 프리미엄급의 럼도 많이 생산되며 우리나라에도 Zacapa, Plantation, Diplomatico 등의 프리미엄급 럼이 다양하게 수입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의 매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개인적으론 조사미 깁스(케빈 맥널리 분)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주 유쾌하면서도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뭣보다 2편에서 화약 대신 럼으로 불을 붙이려고 하자 술이 아까워 울먹이는 장면에서 ‘오호라! 참된 술꾼이로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2017년에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새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잭 스패로우 일행이 모든 해적들을 죽이려고 하는 유령 해적 살라자르 선장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액션도 물론 좋겠지만 뭣보다 잭 스패로우 특유의 유머감각이 그대로 살아있기를 기대해 본다.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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