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에겐 다소 낯선 루마니아 영화 <배드 럭 뱅잉>이 개봉했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에서 작년 최고상을 받아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호불호를 떠나 근래 몇 년간 한국 극장가에 걸린 영화 중 가장 기괴하다고 칭해도 손색이 없을 <배드 럭 뱅잉>에 대한 가이드를 마련했다.


감독

라두 주데

<배드 럭 뱅잉>으로 한국 극장가에 처음 소개되는 라두 주데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크리스티안 문쥬,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의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시에레나바다>의 크리스티 푸이유와 함께 당대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학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그리스계 프랑스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멘>(2002)과 크리스티 푸이유의 <라자레스쿠씨의 죽음>(2005)의 조연출을 거쳤다. 몇 개의 단편으로 유수 영화제에서 휩쓴 후 2009년 장편 데뷔작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를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해 국제예술영화관연맹 상을 받고, <에브리바디 인 아워 패밀리>(2012)를 거쳐 흑백 이미지로 19세기 루마니아를 그려낸 세 번째 장편 <아페림!>(2015)이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 홍상수의 <도망친 여자> 등이 이 상을 받았다)을 차지했다.


비디오 유출과

코로나19 팬데믹

2021년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배드 럭 뱅잉>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명문학교 역사 교사인 에미는 남편과 찍은 비디오가 인터넷에 유출된 후 경력과 평판이 위협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고, 해고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압력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배드 럭 뱅잉>은 그 비디오부터 적나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무리 성적으로 개방적인 나라에서도 쉬이 용인될 수 없는 수위의 영상이기에, 한국에 개봉된 버전은 감독이 직접 연출한 키치한 이미지로 화면 전체를 가리고 있고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이른바 '검열판'인데, 라두 주데의 기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다.

부부 관계를 촬영한 비디오가 외부에 유출되는 건 그 자체로 너무나 참혹한 상황이지만, <배드 럭 뱅잉>은 비디오의 주인공인 에미를 애써 피해자의 자리에 두려 하지 않는다. 파격적인 오프닝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1부 '일방통행로'가 시작하면 영화는 그저 에미가 한낮의 부큐레슈티를 차분히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길을 걷다 도착한 어느 집에서 비디오 유출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에미의 처지를 예상할 수 없을 만큼 평화로워 보인다. 종종 곤경에 처할 때가 있지만 적어도 에미가 비디오 유출 피해자여서는 아니다. 부큐레슈티의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에미의 곤경은 팬데믹으로 인한 신경질적인 징후에서 비롯됐다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작품이 처음 공개된 2021년 2월 당시, <배드 럭 뱅잉>은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된 풍경을 담은 최초의 영화 중 하나였다.


독특한 구성의 3부작

<배드 럭 뱅잉>는 크게 1부 '일방통행로'와 더불어 2부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 3부 '실천과 빈정거림 (시트콤)' 세 파트로 구성됐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부큐레슈티의 일상을 따라가는 '일방통행로'에 이어지는 2부는 '8월 23일(23 August)'부터 '선(Zen)'까지 알파벳 순서로 수십 개의 단어를 제시하고, 그 단어에 어울리는 별별 형식의 이미지가 나열되는 형식이다. 장편 작업 사이에 독특한 형식의 단편을 부지런히 내놓는 라두 주데답게, 단어를 설명하는 코멘트(감독이 직접 쓴 것이 아닌, 대부분 동서고금의 명사들이 남긴 말 - 출처를 명시하진 않는다 - 을 인용한 것이다)와 그를 수식하는 영상이 제각각 다르다. 이를테면 '부엌(cratiță)'은 정리되어 있지 않은 부엌을 보여주고 "'부엌일은 여자 몫이다'라고 할 때의 부엌"이라는 자막이, '주먹(pumn)'은 손목을 푸는 커다란 주먹을 비추고 "예수님에게도 이런 주먹이 있었다면 절대 십자가에서 죽진 않았을 것이다"라는 자막이 붙는 식. 미장센까지 갖춰 영화용 카메라로 찍은 것에서부터 역사적인 사건 현장을 기록한 푸티지, 휴대폰으로 촬영해 아무렇게나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짤막한 동영상까지 인용한 가운데 세계와 역사를 향한 날선 시선이 가득하다. 그리고 대망에서 3부에선 에미가 수많은 학부모들과 논쟁을 벌이는 블랙코미디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광경으로 끝난다.


역대 베를린 황금곰상 감독들의 선택

꾸준히 라두 주데에 대한 편애를 보여준 베를린 영화제는 6년 전 <아페림!>에 이어 작년 <배드 럭 뱅잉>을 경쟁부문에 초청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홍상수의 <인트로덕션>, 셀린 시아마의 <쁘띠 마망> 등 쟁쟁한 작품들도 후보에 오른 가운데, <배드 럭 뱅잉>이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차지했다. 당시 영화제의 심사위원진이 (예년과 달리) 지난 몇 년간 베를린 황금곰상을 수상한 감독들 -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의 일디코 옌예디, <시너님스>(2019)의 나다브 라피드, <터치 미 낫>(2018)의 아디나 핀틸리에, <사탄은 없다>(2020)의 모함마드 라술로프, <화염의 바다>(2016)의 잔프랑코 로시, <그르바비차>(2006)의 야스밀라 주바나치 - 6명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배드 럭 뱅잉>의 수상이 보다 특별했다. 한편 <배드 럭 뱅잉>은 지난 연말 2021년 최고의 영화를 선정하는 리스트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와 영미권 최고의 영화평론가로 손꼽히는 짐 호버먼을 비롯한 유수의 매체와 평자들이 <배드 럭 뱅잉>을 2021년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았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