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는 <하트 스토퍼>, 왓챠에는 <시멘틱 에러>, 또 웨이브에는 <남의 연애>와 <메리 퀴어>까지. 각 OTT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인기 순위 랭크에서 한 번쯤은 제목을 봤을 법한 프로그램들이다. 이들은 퀴어 콘텐츠, 즉 성소수자의 사랑을 다룬 콘텐츠들이다.
OTT 서비스 웨이브에 따르면, 남자들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남의 연애>와 성 소수자들 커플의 사랑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 <메리 퀴어>는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 견인 순위에서 각 1,2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시멘틱 에러> 역시 본격적인 BL 열풍을 이끌며 극장판인 <시멘틱 에러 : 더 무비>까지 제작되는 기염을 토했다. 음지에서 일부만이 즐기던 성소수자 콘텐츠가 드디어 양지로 고개를 내미는 이 시점. 여러분들께 성소수자의 사랑과 청춘들의 성장을 잔잔하게 다룬 작품 <반쪽의 이야기>와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을 추천하며, 다양한 퀴어 콘텐츠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반쪽의 이야기>
넷플릭스
사랑의 방향이 엉뚱하게 향한 러브레터
감독 ‘엘리스 우’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는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성적은 매우 좋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주인공 ‘엘리 추’. 그가 용돈벌이로 다른 학생의 숙제를 대신하는 도중에, 파격적인 제안을 받게 된다. 바로 미식축구 특기생 ‘폴’의 연애편지를 대필 의뢰. 다른 이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준다는 게 영 찜찜했던 점,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엘리’는 처음에는 ‘폴’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무려 50달러라는 거금의 제안에 혹하여 대필을 시작하기로 한다. 친구의 편지를 대필하게 되면서 친구의 짝사랑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데, 성별이라는 특징 하나를 바꾸게 되니, 이 이야기가 신선한 소재로 다가온다
“내 안에 부풀어 오르는 사랑의 파도에 대한 갈망” ‘엘리’는 아빠와 함께 본 고전 명화 <빔 벤더스>의 대사를 인용하여 ‘폴’ 대신 ‘에스터’에게 러브레터를 보내게 되고, ‘엘리’와 취향이 잘 맞던 ‘에스터’는 그의 편지에 흔쾌히 답장하며 그들은 순조롭게 편지로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서로의 인생에 대한 가치관과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 좋아하는 것을 포기한 이유 등 점점 대화의 주제도 깊어져만 갔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긴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유대 관계가 쌓이는 게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이 영화 속에는 이토록 감정선이 예쁘게 드러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들의 감정이 절정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장면이라 하면 바로 ‘에스터’가 ‘엘리’를 자신만의 비밀 장소로 데리고 가 연못에 마주 누워 서로의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엘리’가 ‘폴’ 대신 러브레터를 대필해 주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임에도 서로가 오롯이 상대가 되어 마음을 나누는 장면이 참 아름다웠다. 이외에도 서정적인 대사들, 명시구를 인용한 나레이션 등이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모두가 쉽게 공감할 성장 스토리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보다는 성장 이야기에 가까운 영화다. ‘우정’의 감정은 물론이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했던 주인공 ‘엘리’는 연애편지 대필 사건으로 인해 ‘폴’과의 우정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뜨게 되었다. 그리고 이민 온 곳에서 정착하지 못하던 겁쟁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결심한다. ‘엘리’를 눈 뜨게 한 ‘에스터’ 역시 많은 대화와 내면의 고찰을 통해 파혼을 선택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해 알게 되며 자신을 가둔 알에서 깨어났다.
영화에서 성장을 하는 건 두 여자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엘리’에게 러브레터 대필을 의뢰한 ‘폴’ 역시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깨닫고, 자신이 진짜 사랑한 것은 ‘에스터’가 아닌 ‘엘리’임을 자각한다.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것이다.” 세 명의 청춘은 각자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반쪽을 위해 대담해지기로 결심하고, 발을 내디디며 영화는 끝이 난다.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또 완전한 내 자신
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한 번쯤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넷플릭스
환상적인 비주얼 케미와 아슬아슬한 감정선
대만 퀴어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퀴어 영화 최초로 1억 위안 이상 수익을 넘긴 영화이다. 흥행 요인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주인공 진호삼과 증경화의 환상적인 비주얼 케미, 또 그들의 감정선을 아슬아슬하게 그려낸 연출이 큰 몫을 해냈다. 특히 배우 진호삼은 당대 최고의 얼굴 천재 스타였던 금성무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로 남심과 여심을 모두 뒤흔들었다.
이 영화 역시 앞선 <반쪽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욱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1987년, 지금보다 더 동성애 혐오가 만연한 시기에 어쩔 수 없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랑의 감정을 막을 수 없었던 두 소년의 이야기로,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쓸수록 깊어지는 그들의 마음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청량하고 아름다운 영상미와 OST
‘버디’와 ‘자한’, 두 소년의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더 애틋한 사랑은 대만 영화 특유의 영상미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둘이 해변에 갔을 때 일렁이는 파도 앞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입맞춤 장면은 아직도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바닷물이 차올랐다. 나는 몇 번이나 그날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길 바랐다.” 여운 짙은 이 대사까지도 함께 말이다. OST 또한 영화의 깊은 여운에 큰 몫을 더한다. 실제로 대만 음악 차트에서 꽤나 오랜 시간 1위를 차지한 곡이라고 한다. 엔딩 장면에 두 주인공이 번갈아 부르던 곡. 제목은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
이런 콘텐츠는 물론, 예전보다 확실히 대중들의 반응은 성소수자들의 미디어 출연에 상당히 호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 소수자들이 매체에 나오면 어린아이들이 물든다”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반대 세력도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기사나 커뮤니티 반응에는 그들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더 주를 이루곤 한다. 필자는 이 따스한 공존의 흐름이 더 거세게 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 <반쪽의 이야기>와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과 같은 좋은 ‘퀴어’물이 등장할 때, ‘퀴어’라는 단어에 집중되기보다는 ‘사랑’, ‘성장’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관객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