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7년 만에 돌아왔다. 천만 관객을 넘어 역대 최고 관객 동원 기록을 경신한 <명량>의 속편 <한산: 용의 출현>이 7월 28일 개봉했다. 7년 만에 돌아와 많은 것이 바뀐 <한산: 용의 출현>, 그중 <명량>보다 과거를 그리면서 같은 캐릭터, 다른 배우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처럼 같은 캐릭터를 다르게 소화한 배우들을 정리했다.
이순신
최민식- 박해일
두 영화의 핵심이자 심장, 알파이자 오메가 이순신은 최민식과 박해일이 맡았다. 임진왜란 말기를 그린 <명량>이 먼저 제작되고 초기를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이 뒤에 제작됐으니 배우 변경은 피할 수 없던 일. 지금이야 최민식의 이순신이 강해서 박해일의 이순신이 낯설지만, <명량> 때만 해도 최민식의 이순신 또한 쌍수 벌려 환영받진 못했다. 하지만 최민식도, 박해일도 이순신 장군이란 무게감을 극복하고 온전히 자신의 이순신을 스크린에 그려놓는데 성공했다.
<명량>은 이순신이 느끼는 압박감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반면, <한산: 용의 출현>은 이순신의 내면을 묘사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과의 관계로 비범함과 우직함을 그렸다. 두 영화에서 이순신을 그리는 방식은 다소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범인은 쉽게 시도하지 못할 전술조차 끝내 성공시키는 천재인 것은 동일하다. 영화를 만든 김한민 감독은 최민식에게서 용장(용맹스러운 장수), 박해일에게서 지장(지혜의 장수), (다음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김윤석에게서 현장(현명한 장수)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와키자카
조진웅-변요한
서브 빌런에서 메인 안타고니스트(반동인물)로 격상한 와키자카 야스하루. <명량>에서는 조진웅이,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변요한이 연기했다. 변요한은 와키자카를 연기하기 위해 증량을 했다는데, <명량>의 조진웅 또한 한덩치했던 시절이어서 조키자카(?)를 따라잡진 못했다. 하지만 이순신을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배우를 기용했듯,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의 와키자카도 같은 인물이되 다른 지점을 강조하기 위해 스타일이 다른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이순신에게 호되게 당한 조진웅의 와키자카는 좀 더 신중한 타입이고, 이순신과 맞대결을 펼치는 변요한의 와키자카는 야심차고 지휘력이 뛰어난 타입이다. 이순신 장군이야 전 국민이 다 알고 임진왜란도 대강은 알고 있을 텐데, 와키자카의 서사만큼은 <한산: 용의 출현>→<명량> 순으로 보는 것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나대용
장준녕-박지환
임진왜란의 말기에서 초기로 영화 배경이 바뀌면서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나대용. 조선 수군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박 기술자로 거북선을 개발했다. 임진왜란 말기 이순신의 고립을 그렸던 <명량>은 거북선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애초 전부 파괴돼 다시 제작할 여력이 없었고) <한산: 용의 출현>에선 시작부터 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최종병기로 묘사된다. 이른바 '복카이센'(괴물 배)라고 불렸는데, 그럼에도 몇몇 단점이 확연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대용이 골머리를 앓는다. <명량>에서는 장준녕이 이순신의 부관으로서의 나대용을 연기했고, 이번 영화는 박지환이 해당 역을 이어받아 보다 기술자로서 고민을 거듭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박지환의 대표작, 대표 캐릭터를 생각하면 이번 영화 속 진한 감정 연기가 인상적이다.
준사
오타니 료헤이-김성규
임진왜란에 별의별 사건이 다 있었다지만, 그중에서도 준사의 귀화는 임진왜란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준사는 안골포 해전 직후 이순신 장군에게 항복해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인이다. 이후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의 정보를 제공하며 이순신 장군과 함께 했다. <명량> 당시엔 실제 일본 배우 오타니 료헤이가 준사를 연기했다. 료헤이는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하면서 언어 문제로 고민하던 찰나 <명량>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고. 덕분에 준사라는 항왜(항복하고 귀화한 왜군) 캐릭터를 무리 없이 영화에 녹일 수 있었다. <한산: 용의 출현>은 이 준사가 항왜가 된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번엔 김성규가 해당 배역을 맡았다. <범죄도시>, <킹덤>, <반의반> 등 캐릭터에 착 붙는 변신을 매번 보여준 김성규답게 이번에도 삭발을 해서 왜구의 상투를 진짜로 소화했다. 일본어가 모국어인 오타니 료헤이가 한국어를 더 갈고닦았듯, 김성규 또한 일본어를 갈고닦아야 했다. 충직한 부하로서의 준사(<명량>), 이순신에게 감화돼 백방으로 종횡무진하는 준사(<한산: 용의 출현>) 모두 영화에서 굵직한 존재감을 남긴다.
임준영
진구-옥택연
정씨
이정현-김향기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임준영과 정씨. <명량>에서 진구와 이정현이 연기한 임준영과 정씨는 두 사람의 열연에도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일본군 진영과 조선군 진영을 오가는 영화의 구성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져 다소 집중력을 해친다는 후기가 적지 않았다. 그나마 임준영이야 역사적 인물이라고 쳐도, 정씨는 영화의 오리지널 캐릭터였기에 <명량>의 '신파'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산: 용의 출현>을 본 관객이라면 <명량>의 두 사람을 재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정씨는 왜 벙어리가 됐는지 자세히 그려지기 때문. 특히 정씨의 사연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구석이 있었던 것. 이번 영화에서 임준영과 정씨는 옥택연과 김향기에게 돌아갔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두 사람의 대사가 많거나 비중이 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능적으로 등장한다고 느낄 법한데, 두 배우가 그런 부분을 감정 연기로 무마하며 전편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완성한다.
가토 요시아키
김강일-김성균
왜군의 장수 가토도 와키자카처럼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 모두 개근했다. 물론 비중이야 와키자카가 훨씬 더 높은데 이순신과 직접적으로 맞붙은 전적이 없기 때문. 그래도 전편에 비하면 이번 영화에서 비중은 커졌는데, 그게 하필 호구당한(!) 흑역사라는 점이 포인트. <명량>에서는 김강일이,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김성균이 맡았다. 와키자카와 기싸움하는 장면들은 모두 꽤 인상적이긴 하나 임진왜란 그 기간 중 가장 숨기고 싶었을 순간이 영화로 나왔으니 가토는 저세상에서 꽤 열받았을 듯.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