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링크에서 첫번째와 두번째 리뷰를 먼저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의무감과 기분

해준(박해일 분)은 서래(탕웨이 분)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서래는 남편이었던 도수(유승목 분)의 시신을 앞에두고 마침내 죽을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해준은 그녀의 말을 따라하며 마침내를 읊조린다. 화면은 끊기지 않은 채로 그런 해준을 10여초가 넘는 시간동안 비추며 감정을 이어간다. 이윽고 그가 꺼낸 말은 '(고인 핸드폰의)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 였다. 그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패턴을 알려달라는 주문과도 같은 속마음이었다.

해준의 후임인 수완 (고경표 분)은 해준을 존경하는 마음에 그를 따라 부산까지 왔지만, 서래를 수사하는 고참의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번엔 용의자의 말을 너무 많이 들어주는 해준의 자세가 의아하다. 그러면서 여자 아니고 외국인 아니고 그냥 남자 한국인이었으면 해준은 바로 잠복했을 거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품격은 직업적 자부심에서 온다고 했던 해준 아닌가. 비록 서래의 알리바이는 입증이 됐지만 수완이 하는 말 또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는 의무감과 기분을 반반 섞은 채 잠복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또한 방해를 받는다. 종결 처리된 기도수 사망 사건은 그만 신경 쓰고 질곡동 살인사건에 힘을 주라는 서장의 불호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명색이 최연소 팀장이 감정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지. 해준은 수완과 미지(정이서 분)에게 질곡동 사건 용의자인 산오(박정민 분)의 전여친들을 모조리 조사하고 그 중 산오가 접촉할만한 사람을 추려내려고 한다.

그런데, 해준의 팀은 기존의 수사로 과연 산오를 잡을 수 있었을까?

저 여자 초밥 왜 사줬어요?? .. 대사 센스에 깜짝 놀랬다.

서로를 알아보다 part1

도수의 유언장까지 발견되고 서래는 진짜로 무죄처리 된다. 그런데 이게 마음에 들지않는 수완은 술김에 서래의 집으로 가 행패를 부린다. 해준은 놀란 서래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가 식사를 대접한다. 거기서 서래는 해준의 미결 사건들을 보게 된다. 죽기보다 감옥에 가기 싫은 산오가 오가인 (정하담 분) 때문에 폭행한 이야기를 듣고는 본능과 당연함에 의거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죽을 만큼 좋아한 여자네

그러나 해준의 추론에서 가인은 산오를 잡기위한 레이더 망이 아니다. 가인은 멀리살고, 게다가 결혼까지 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해준과 수완과 미지는 열심히 일했겠지만, 지구(이학주 분)같은 곁가지만 만나다가 끝났을 것이다. 지구의 말대로 '아저씨들은 산오를 못 잡는' 것이다. 산오를 읽어낸 서래의 당연함은 사랑에 대한 관념에서 왔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서로를 알아보다 part2

그렇게 서래의 도움을 받아 해준은 산오를 발견한다. 막다른 길에 왔을 때, 해준은 산오에게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라며 서로를 알아본다는 말을 던진다. 그렇게 산오의 마음을 읽어준다. 너 돈 때문에 사람죽인거 아니지? 한달동안 감옥에 있을 때 범이가 오가인 건드려서 그런거잖아. 해준은 자신에게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산오는 가인이 때문에 자기 삶이 공허하지 않았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한다.

이 보조플롯은 메인플롯과 매우 깊게 맞닿았다. 단역에 스타를 기용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태도가 비슷한 두 사람

<헤어질 결심>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자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도수는 아내인 서래에 대한 강박이 심했다. 자신의 모든 물건에 이니셜을 새기는 것도 모자라 서래의 몸에도 이니셜을 문신으로 새겼다. 해준의 아내인 정안 (이정현 분)은 계산적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부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강령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도 계산적인 태도로 인해 해준을 떠나게 된다. 서래의 두번째 남편으로 등장하는 호신(박용우 분)은 교활하다. 사랑한다는 말 뒤에는 자기 목표를 위해 배우자를 이용하는 간사함을 비춘다.

해준은 어떨까? 그는 사랑에 빠졌고 거기에 많은 것을 할애했지만 자신의 자부심과 품격은 양보하지 못했다. 잘잘못을 떠나서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정안이 자신을 떠나려 했을 때 가장 먼저 '밉고 싫을 때도 매주 성관계를 가지기로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찌질함을 비추기도 한다. 곧이어 호흡보조기를 껴도 불면하자 호송하는 차 안에서 자신을 재워준 서래와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해준은 호미산에서 서래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당신의 미결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온 것 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듣고는 헤어진다. 서래는 해준과 만난 이후 엉망진창인 호신과 결혼했다. 그것은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남자가 자신과 해준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음성파일을 빌미로 협박하자 호신을 죽일 수 있는 트릭을 행한다. 그러나 해준에게서는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경찰이고 당신(서래)이 피의자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는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이제 서래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해준이 그로서 살게 내버려두고 도와주는 일이다. 결국 그녀는 138층의 미스터리가 담긴 핸드폰을 넘겨주며 재수사를 권한다. 그러면서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전한다. 해준은 견디지 못했던 붕괴를, 서래는 기꺼이 취한다.

그녀는 그렇게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해체하여 영원한 미결을 택한다. 그때 비록 서래는 무서울지언정 공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준이 영원히 자신을 생각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사랑의 유형을 이야기할 차례다. 스스로의 붕괴를 택하면서까지 공허함에 이르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홍산오와 송서래, 두사람 뿐이다. 서래가 질곡동 사건을 단번에 풀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서래는 이 타이밍에 이미 이별을 생각했을 것이다. 웃고 있지만, 속은 썩어 들어간다.

해준의 미소

해준은 자신이 붕괴되던 순간에 이 핸드폰은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 아무도 못 찾게하라고 부탁한다. 그것은 사랑의 고백이었지만 스스로는 13개월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서래의 감정은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다. 이 말을 남기고 서래는 사라지고 해준은 뒤쫒지만 찾지 못한다. 그리고 거센 파도의 중간에서 음성파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멍청한 남자는 그때서야 깨닫는다. 아, 내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구나.. 그리고 나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그녀를 사랑했구나.

깨달은 해준은 씁쓸하고 시큼한 미소를 지으며 단말마 탄식을 뱉는다.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산오를 만났을 때 우리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여기고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했었지. 그러나 나는 산오에게 전혀 미치지 못한 사람이었네.. 혹은 서래가 마지막으로 읊조린 중국어가 무슨 뜻인지 심정적으로 알아들은 것일까? 혹은 서래의 범죄를 알아차린 그 때 붕괴한 나를 받아들일껄, 이렇게 그녀를 영원히 못보게 될 바엔 그냥 내가 무너질걸..하는 어떤 후회였을지 모르겠다.

하나의 표정에 너무나도 다양한 감정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넥타이 끈은 풀고 신발 끈은 조인채 다시 서래를 찾아나선다. 이어지는 영화의 엔딩씬, 마지막 컷, 그리고 편집점과 음악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사랑의 본질이라는게 이렇게 지독하며 가혹하다. 극심하고 끔찍한 파괴에도 선택해야 겠다면, 마침내 사랑을 하라는 메세지였는지 모르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