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 시리즈 이후로 가장 성공한 DC 코믹스 기반 실사화 영화이자, 히어로무비 최초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데 성공한 영화 <조커>.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기록을 거두며 2019년 10억 달러 흥행 영화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개봉 전 언론 시사 시점부터 평단의 평가가 매우 엇갈렸던 데다가, 스크린 개봉 이후에도 악평과 호평을 오가며 수많은 논란과 환호를 동시에 받았던 그럼에도 작품으로 인정받았던 영화이기에 <조커>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워너 측에서는 <조커>의 제작 단계부터 이 영화가 실사화 유니버스와 연결되지 않는 단일한 작품이라는 것을 공고히 해 왔고, 토드 필립스 감독 역시 후속작에 대한 계획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밝혀 왔다. 거기에 주연배우이자 새로운 조커로서 완벽하게 등장한 호아킨 피닉스가 이제까지 히어로무비 일체를 거절한 적이 있었으므로 어쩐지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비관적 관측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토드 필립스 감독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조커 2>의 각본 사진을 업로드했고, 레이디 가가가 추가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이 며칠 전 공개되었다. 제작 확정이야 반길 일이지만, 어쩐지 불안한 이야기도 전해지며 우려를 낳기도 했다.
2019년에 개봉한 <조커>의 제작 소식에, 작품을 둘러싼 의문은 대체로 세 가지였다. ▼지금까지 쌓아 온 DC 실사화 유니버스와 완전히 별개라는 점(물론 이건 기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코미디 영화가 주력이었던 토드 필립스가 감독을 맡았다는 점, ▼기원이 없는 것이 기원이라던 조커에게 기원을 만들어 준다는 점.
돌이켜 보면 <조커> 1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나 관심은 솔직히 우려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메가폰을 쥔 감독 토드 필립스는 <행오버> 시리즈의 감독으로 더 유명했고 필모그래피 전부가 코미디 영화였기에, '진지'하고 '현실'적인 최초의 조커 솔로 무비의 연출직으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가 당시 시점으로 DC 코믹스 기반의 실사화 프로젝트들은 <아쿠아맨>을 제외하고는 딱히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애매한 진지함이 영화를 망친다는 이야기부터, 유머러스하지 못한 데다가 화려하지도 못한 애매한 영화라는 가차없는 혹평까지 오가던 시기였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화제가 되었던 할리퀸과 조커의 파행적인 로맨스를 주제로 듀오 무비를 제작한다는 루머도 있었으나, 실제로 워너브러더스에서 발표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단독 영화 <조커>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커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그 호아킨 피닉스였으니, 기대감과 우려는 정확히 반반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시사회를 거쳐 언론 시사회 반응이 나오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대감이 증폭되기 시작했고, 결론적으로 이 기대감은 전대미문의 흥행과 평가로 충족되었다(물론 모두가 원하는 형태는 아니었을지라도).
2019년 <조커>의 경우 시작부터 영화 전반에 타고 흐르는 우울감과 현실적 고통, 그리고 '조커' 아서 플렉의 인간 내면을 지독하게 파고드는 깊은 시선과 연출로 채워져 있었기에 불쾌감을 유발할지언정 작품성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히어로 코믹스 기반으로 만들어진 만큼 '조커' 무비로서의 팬들에 대한 헌사와 더불어 과거 배트맨 시리즈로부터 이어지는 몇 가지 장치들은 팬들을 즐겁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으므로, 일견 슈퍼히어로 무비로 보기 어려우면서도 슈퍼히어로 무비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면모가 있었다.
이렇게 전작의 평가가 훌륭한 만큼, 후속편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즉 <조커 2>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편보다 더더욱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2019년의 <조커>가 성공을 거두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전편만 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지, ▼전편이 각광받았던 예술영화적인 측면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그리고 ▼뮤지컬 영화의 요소가 앞서 언급한 작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지.
<조커 2> 가 이전의 작품성과 연출, 호아킨 피닉스의 훌륭한 연기력을 기반으로 소위 '평타 이상'의 영화가 되리라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전편으로부터 발전된 서사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우려도 따른다. 물론 이런 걱정거리는 비단 <조커>의 후속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속편을 확정한 모든 영화가 갖는 엇비슷한 수준의 우려이겠지만.
여기에 <조커 2>가 음악적 기반을 가진 뮤지컬 영화로 기획되고 있다는 소식 역시 다소 우려감을 갖게 되는 측면이다. 지난 4일 호아킨 피닉스에 이어 레이디 가가의 캐스팅이 확정되면서 <조커 2>의 대략적인 청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레이디 가가의 배역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영상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할리퀸일 것이 명확하며 부제가 'Folie à deux'인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게 보인다.
폴리 아 듀스(혹은 폴리 아 되, Folie à deux)는 1953년에 오베른도르프가 뉴욕신경학회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이다.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두 사람의 광기'라는 뜻이나 보통 '감응성 정신병'이라고 말하는데, 주로 부부 사이에서 두 사람 중 한 명이 갖고 있는 정신병 증상이 공유되는 것을 의미한다.
코믹스 「할린」(HARLEEN)을 비롯해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등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어 이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할리 퀸의 기원 서사를 떠올려 보면, 조커의 '감응성 정신병' 대상에 가장 상상하기 쉬운 캐릭터는 할리 퀸이다. 즉 레이디 가가의 배역도 할리 퀸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
물론 이 영화에서 '조커' 아서 플렉의 비중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깊고 섬세했기에, 할리 퀸의 서사에 대해 다루기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증세가 전염되는 과정을 다루는 데 초점을 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거기에 뮤지컬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면 <스타 이즈 본>과 <하우스 오브 구찌>로 연기력을 입증한 데다가 본업은 저명한 싱어송라이터인 레이디 가가 캐스팅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다만 전작이 상당히 깊고 우울한 내면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는 영화였다는 점을 돌아보았을 때 뮤지컬 요소가 과연 효과적인 연출 방식일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을 갖게 되는 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처음 '배트맨 없는 조커의 솔로 무비', '유니버스와 독립된 별개의 조커', '기원이 없었던 조커의 기원을 제시'한다는 세 가지 걱정이 준수하게 해소되었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오히려 또다시 장점으로 승화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에 워너브러더스의 DC 코믹스 기반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영화적인 평가가 나쁠 때에도 OST 면에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아 왔기에 어쩌면 장점을 살리는 선택일 수도 있다. 정말, 어쩌면이지만.
물론, 이 모든 관측은 사실 너무 이르다. 토드 필립스의 각본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의 본격적인 제작은 올해 말에 시작될 예정이라고 하며, 개봉은 2024년 10월 4일을 목표하고 있으므로 아직은 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너브러더스가 디스커버리와 합병되면서 당초 확정되어 올해 말 HBO MAX에 공개 예정이었던 영화 <배트걸>이 취소되는 등 예정된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DC 확장 유니버스가 계획하고 있던 많은 시리즈들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취소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 플래시 역 배우이자 <더 플래시>의 주연 배우 에즈라 밀러가(최근 반성의 뜻을 밝히기는 했다)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 데다가 <배트걸>의 취소 결정으로 인해 <더 플래시>를 통해 첫선을 보이고 단독 영화로 등장 예정이었던 <슈퍼걸> 역시 향방이 불투명해진 상황이기에, 거의 완료 단계에 놓인 프로젝트 외에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조커 2>의 경우 전편이 워낙 성공을 거뒀던 데다가 감독과 주연배우가 그대로 유지될 예정이므로 크게 영향은 없겠지만, 프로젝트 일정이 뒤틀림에 따라 <조커 2> 가 급작스레 뮤지컬 영화로 기획된 데에는 이런 영향이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중이다. <조커>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워너브러더스의 수뇌부에서 영화에 간섭하지 않았고 만약 그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거라면, 어쩐지 불안하기만 한 소식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2019년작 <조커>가 특별했던 이유까지 뒤집어지지만 않기를 바라볼 뿐이다. 소위 '어른의 사정'에 또다시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해치는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