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으로 뻔해도 용납이 되는 장르가 두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로맨틱 코미디와 하이틴 로맨스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뻔해도 재미있으니깐. 이 두 장르는 정형화된 공식이 있을 정도로 전형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가령 주인공의 본판은 완벽한 퀸카이나, 두꺼운 안경과 촌스러운 스타일링에 가려져 너드 취급을 당해야 한다. 또한 멋진 왕자 같은 킹카를 짝사랑하고 있어야 하며, 성소수자인 절친한 친구가 한 명씩 꼭 있어야 한다. 화려한 변신을 거친 후에는 그 친구와 잠깐 멀어졌다가 진정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화해하는 건 보너스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건 그 어떤 것보다 용납하기 싫은 MZ 세대들에게 “뻔하면 뻔할수록 흥미롭다”라는 말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장르적 특징도 예외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특별히 준비했다. 뻔하디 뻔한 하이틴 로맨스 장르의 공식을 한 번 더 비틀어, MZ 세대들에게도 신선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두 편을 만나보자.
<시니어 이어>
넷플릭스 영화
40대 주인공의 프롬퀸 고군분투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시니어 이어>의 주인공 스테파니는 이른 나이에 ‘성공한 인생이란 남들에게 인기와 부러움을 얻는 것’이라는 자신만의 진리를 깨닫고, 각고의 노력 끝에 고등학교의 치어리더 인기인이 된 10대 소녀다. 스테파니는 하딩 고등학교의 졸업 파티 퀸을 롤모델로 삼으며, 꿈에 그리던 프롬 퀸만 되면 자신의 인생 목표를 모두 이룰 줄 알았다. 하지만 소원 성취를 눈앞에 두고 치어리딩 동작을 하다 그만 사고를 당하면서 깊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무려 20년이 지나 40살의 나이에 눈을 뜨게 된다. 정신 연령은 그대로, 프롬 퀸이 되고픈 10대 소녀에 머문 채 말이다.
줄거리를 여기까지만 들어도 우리가 흔히 봐왔던 하이틴 로맨스의 공식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다. 물론 친한 친구와 멋진 킹카 남자 친구, 주인공과 대립 관계에 선 라이벌 역이 있긴 하지만 주인공은 처음부터 너드로 등장하지도 않고, 누구의 말에도 기죽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10대가 아닌 40대의 나이로 등장한다. 일반 상식과 달리 40대의 나이에도, 스테파니는 당시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프롬퀸이 되기 위해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돌아간다. 10대 시절 친한 친구였던 마사가 교장 선생님으로 있는 고등학교로 말이다.
현재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2000년대 레트로 분위기도 함께?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코마 상태에서 깬 스테파니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하다. 잡지 속 섹시한 표지 모델은 마돈나가 아닌 레이디 가가가 장식하며, 세상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또 프롬 퀸과 킹의 사진을 붙인 자리에는 플라스틱 없는 바다를 만들자는 전시물이 부착되어 있다. 낯선 디지털 세계에 적응해 가는 아날로그 스테파니의 모습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다. 수많은 변화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학생들의 경쟁 의식을 잠재우고 평등한 학교 사회를 만들기 위해 프롬 퀸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화려하고 자극적인 치어리딩을 하지 않고 명상만을 즐기는 치어리더 부에 다시 들어가 단장 되기, 인플루언서가 되어 졸업 파티인 프롬을 다시 부활시키고 프롬 퀸 되기, SNS 인플루언서가 되어 해시태그 챌린지 운동하기 등, 많은 게 변해 혼란스러운 스테파니는 다시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의 문화를 바꾸기 시작한다. 프롬퀸이 되기 위한 이 과정들이 기존 하이틴물의 클리셰를 따라가지만, 주인공의 나이 설정 덕분에 신선한 웃음 포인트로 다가온다. 극 중간에 나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 메들리에 맞춘 치어리딩은 2000년대 초반의 향수를 자극한다. 주인공의 설정 때문에 이 작품은 2020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레트로의 분위기를 많이 자아내어 독특한 재미를 더한다.
레벨 윌슨의 극을 이끌어가는 힘과 배우들의 호연
<시니어 이어>는 앞서, 호주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주인공 레벨 윌슨의 다이어트로 먼저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 100kg에 육박하던 그가 무려 30kg 이상을 감량하며 대중들 앞에 나선 것이다. <피치 퍼펙트> 등의 작품에서 씬스틸러 조연으로 등장하던 그가 당당히 주연 배우를 도맡아 한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3년 전 <어쩌다 로맨스>의 주연을 맡았을 때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듯한 코믹 연기와 슬랩스틱 퍼포먼스를 보여 주며 웃음을 책임진다.
레벨 윌슨 외에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출연하여 많은 이들에게 얼굴을 알렸던 배우 앵거리 라이스, 스테파니의 절친 역의 메리 홀랜드와 샘 리차드슨의 코믹 연기도 일품이다. 참고로 20년 전, 스테파니가 롤모델로 삼았던 하딩 고등학교의 프롬 퀸 역에 유명 하이틴 영화 <클루리스>의 주인공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출연한다. 무려 27년 만에 하이틴 영화에 나와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절 하이틴물’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반가움을 건넨다.
<어쩌다 로맨스>
넷플릭스 영화
로맨틱 코미디 극혐러의 주인공 체험기
공교롭게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가 레벨 윌슨이다. <어쩌다 로맨스>는 <시니어 이어>를 촬영하기 3년 전에 찍은 작품인데, 같은 주인공이라서 묘하게 시리즈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영화는 로코를 극혐하는 주인공 나탈리가 지하철 강도 사건에 휘말린 후, 어쩌다 핑크빛 기류가 감도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 이야기다. 좁았던 자신의 집은 넓고 화려한 아파트로 변신, 앞서 말한 클리셰처럼 자신의 절친은 게이로 바뀌었으며, 절세미녀가 된 자신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는 매력남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로코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유쾌 상쾌 통쾌! 로코 클리셰를 대놓고 풍자하다
“로맨틱 코미디는 다 뻔하고 지루해” 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해당 장르의 공식을 비틀고 풍자한 영화 속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늘 시멘트 잿빛처럼 지루하기만 하던 세상은 어느새 꽃향기로 가득하고, 길거리의 모든 이들은 주인공을 우러러본다. 더군다나 전날 자신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던 잘생긴 의뢰인 블레이크는 나탈리에게 첫눈에 반해버려 헤어 나오지 못한다. 똑같아도 너무 똑같은 로코 클리셰에 정면 돌파한 이 작품의 패기가 어떤가? 특히 주인공처럼 로맨틱 코미디를 혐오하는 극중 인물들이 로코 세상으로 바뀐 세상에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는 보여줘 또 다른 재미를 끌어낸다. 영화의 독특함과 별개로 결말은 이전 로맨스 영화처럼 “자신을 사랑해”로 끝맺어 조금은 아쉽지만, 해당 장르 영화의 익숙한 공식에 질려버린 분들에게 <어쩌다 로맨스>는 분명 신선한 느낌을 전할 것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