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매는 초기영화에서도 가장 인기있던 소재 중 하나였다. 영화 매체가 태어난 직후인 1910년대의 영화들에서 마약 밀매나 중독자 등, 마약에 연관된 인물은 악역 캐릭터의 가장 흔한 프로필이 될 정도로 영화소재로는 만연한 화제였던 것이다. 특히 마약을 밀매하는 캐릭터는 주로 중국인이나 흑인 등, 명백한 인종차별적 의도를 띄고 유색인종으로 설정되었다. 대중 영화에서 아시아인들은 무지하거나 소극적인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더해 중국인 캐릭터는 1850년대부터 중국인 이민자들로부터 미국으로 유입된 아편과 연계되어 더더욱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고착화되기도 했다. 1910년대에 유행했던 소설 시리즈를 영화화 한 ‘푸 만추 (Fu Manchu)’ 시리즈는 주인공인 중국인 박사, ‘푸 만추’를 수퍼 빌런이자 마약왕으로 설정해 인기를 끌었고 이는 마약의 인종차별적 재현 및 설정을 관습화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로 마약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늘어나면서 (영화산업이 팽창하면서 영화의 제작 편수가 전반적으로 증가한다) 유색인종 뿐만 아니라 백인들이 마약의 주체가 되는 영화들도 빈번히 등장했다. 그럼에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마약 소재의 영화들이 캠페인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마약 근절’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렇게 건전한(?) 마약 영화들조차 1920년대를 지나면서 발동이 걸린다. 할리우드는 영화 컨텐츠에 대한 종교단체와 부모단체의 보이콧을 막기 위해 산업 내에서 자진 검열을 시행하기로 하는데 1926년에 만들어진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주의해야 할 것 (The Don'ts and Be Carefuls) 리스트에서 불법 마약 밀매를 재현 불가의 영역으로 선정한 것이다 (The illegal traffic in drugs). 이 리스트는 1936년부터 조금 더 체계적인 ‘제작 코드’로 재편성되고 극장 개봉을 원칙으로 하는 메이저 영화에 적용이 되면서 할리우드는 마약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 40여년 가까이 할리우드는 성적 재현, 폭력 재현, 종교적 재현 그리고 마약 재현에 있어서 철저히 표백 된 영화의 개봉만을 승인했다. 그러나 많은 창작자들의 항의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관객층 변화로 1968년, 제작 코드는 철폐되고 등급제 (Rating System)로 교체된다. 마침내 할리우드는 표현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철폐 직후에 개봉한 <이지 라이더> (데니스 하퍼, 1969)에서는 주인공들의 국토 횡단 여정 동안의 코카인 사용과 밀매가 여과없이 그려진다. 이후 할리우드는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 영역에서 까지 많은 수의 마약 관련 컨텐츠를 제작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2008년에 방영된 <브레이킹 배드>는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았고 이후 마약 드라마 제작의 분수령을 이끌기도 했다.
실존 인물이자 마약 밀매의 제왕, 파블로 에스코바의 삶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르코스> 역시 시즌을 거듭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스핀 오프인 <나르코스 멕시코>가 제작 되었다. 이후 마약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하나의 장르라고 칭해도 좋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기록했고 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화려한 할리우드의 이력에 비하면 한국에서 마약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수는 현저히 적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드라마 시리즈, <수리남>은 매우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윤종빈 연출의 <수리남>은 이름조차 낯선 나라, ‘수리남'에서 카르텔과 손잡고 마약 밀매 조직을 만들어 마약왕이 된 한국인,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조봉행은 수리남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규모 마약 밀매 조직을 운영했고 2009년 브라질 상파울루의 과률류스 국제공항에서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 브라질 경찰과의 공조 작전으로 체포되었다. 검거 작전은 사업가 'K씨'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는데 K씨가 바로 이 드라마, <수리남>의 주인공, 강인구 (하정우)다.
강인구는 카센터, 단란주점 등 다양한 밑바닥 일들로 자수성가한 젊은 사업가다. 언젠가부터 하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낙심한 인구는 친구, 응식 (현봉식)의 제안으로 수리남에서 홍어 수입사업을 시작하기로 한다. 수리남에서 헐값에 홍어를 매입해서 높은 가격에 한국으로 유통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지만 곧 수리남의 부패 경찰들과 깡패 집단이 훼방을 놓으면서 난관에 빠지게 되지만 다행히도 수리남의 한인 목사, 전요환 (황정민)이 이들을 돕는다.
물론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렇듯, 선뜻 돕겠다는 사람은 늘 그와는 반대의 상황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인구가 믿었던 전요환은 수리남의 마약왕이었고, 그의 술수에 놀아난 인구는 전 재산을 잃기에 이른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인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할 때 즈음, 국정원 요원, 최창호 (박해수)가 협력하여 전요환을 체포하자는 제안을 보내온다.
일단 <수리남>은 재미있다. 중심사건은 실화를 재현한 것이지만 드라마에서 가장 극적인 재미나 스토리의 동력을 내는 설정들은 모두 이야기적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시리즈의 초반은 인구가 수리남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그리는데 이 대목에서는 머리 쓸 틈도 없이 급류를 타듯 빨려 들어가게 된다. 수리남에 도착한 이후로도 갖가지 사건들로 인구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데 이 ‘갖가지 사건들’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억지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이벤트들로 여겨지는 영리한 전사(前史)인 것이다. 다시 말해 <수리남>의 가장 큰 강점은 클라이맥스의 실제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크고 작은 이야기적 설정과 배경, 그리고 이것들의 적합한 구성이다.
또한 <수리남>이 (편수가 많지 않지만) 이전에 나왔던 마약 소재의 한국 영화나 드라마와 차별되는 지점은 마약을 판매하거나 밀매에 가담하게 되는 캐릭터들이 마약 사용자가 아닌, 철저히 판매책으로 국한된다는 지점이다. 따라서 판매보다는 마약 중독의 폐해에 집중하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 선례들과는 달리 새로운 구도의 빌런 (어쩌면 더욱 더 악랄하고 기계적인) 과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수리남>의 또 하나의 미덕은 드라마의 오프닝 타이틀 테마다. 조영욱 음악감독의 가슴을 뛰게 하는 오프닝 테마는 음악만으로도 전 편을 기대하게 하는 전주(prelude)이자 전제 (premise)로 부족함이 없다. 역시 마약을 소재로 하는 1984년 드라마, (오리지널) <마이에미 바이스>의 뛰어난 오프닝 테마가 전달하는 그 강렬함을 떠올리게 하지만, 초월하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