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속에서도 홀로 아름다운 그 음악' : 자폐를 단번에 설명하는 <녹턴>의 카피

자폐가 주는 관계의 고충

"옛날엔 니 있으면 형이랑 너랑 둘이 놔두고 엄마는 누구 만나러도 가는데, 요새는 전혀 그걸 못해. 니가 없으니까 나만 손해야, 손해. 너도 열심히 살아야지 이 다음에 형을 맡기지. 너, 능력이 있어야 돼.”

자폐증상을 가진 형을 둔 동생인 건기는 기가 막혔다. 그의 형인 성호는 자폐스펙트럼 증상이 심한 장애인이다. 엄마인 손민서에게는 오직 큰 아들만이 우선이다. 그래서 뭐든 알아서 하는 동생은 관심 밖이다. 만년 2등인 비장애인 자식이 어쩔 수 없이 품게 되는 울분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해도 아쉬움과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녹턴> (2019)은 은성호, 은건기 형제가 음악을 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형 성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어서 곁에 누가 없이는 밥도 못 먹고 씻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동생은 단 한 번도 형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윗 대사에서 느낄 수 있듯이, 동생이 엄마에게 사무친 감정은 그 골이 깊어져만 간다. 자폐는 자신과 주변의 관계를 우그러뜨린다는 면에서 자폐 당사자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었다.

<녹턴>의 살벌함이 단번에 보인다

우영우라는 뉴페이스

법무법인 한바다에 취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 분)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자폐를 가진 사람이 변호사가 되어 사건을 척척해결하는 법정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2화까지는 영우가 가진 장애적 특성은 그저 전시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뉴페이스가 지닌 남다른 시각이 소송 건의 본질에 다가가게 해주는, 서번트 신드롬을 지닌 전형적인 히어로물의 형태를 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간의 몇몇 화를 바로 보지 못했을 때 들려왔던 말은, K-드라마답게 사내에서 연애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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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 혹은 그 가족의 시선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세 가지 증세에 집중 되어있다. 사회성의 결여, 제한된 관심사, 의미없는 행동의 반복이 그것이다. 여기에 지능장애나 언어장애를 동반한다. 영우는 사회성의 결여 이외의 요소는 매우 적어보인다. 그래서 실제 장애인의 가족은 이 드라마는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 단지 심한 수준의 아스퍼거 증후군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통칭)을 앓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극 중에서 극심한 자폐인 것 처럼 등장하는 3화의 김정훈 (문상훈 분)의 경우 조차 경증이라고 일컫는 가족들도 있었다.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혼자선 무엇도 할 수 없는 존재가, 그 곁에서 가장 극진히 돕는 이를 아는 척도 안한다는 외로움과 막연함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녹턴>에서도 성호가 연주회를 위해 출국할 때 공항에서 혼자 쑥 들어가 버리자 엄마는 아이고 자폐는 자폐네.. 하며 30년을 넘게 돌본 야속함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니 자폐 당사자를 포함한 가족들이 보기에 우영우는 자폐의 증상을 보이지만 천재고, 자기할일을 스스로 하면서, 심지어 타인을 돕는 일까지하는 원더우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의문을 품게 된다. 인기 높은 드라마의 이 주인공은 자폐를 대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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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아우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장르는 무엇인가?

자폐 장애인은 관계정립이 쉽지 않다. 그래서 주변인이라는 단어자체가 어색할 수 있다. 가볍고 발랄한 톤으로 제작된 영우의 이야기엔 다행히 엄혹한 악당보다는 주로 조력자로 구성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햇살같은 동료에,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판타지를 담당하는 올곧은 직장 고참이 있고, 완연하게 감정을 교류하는 동 투더 그 투더 라미에게는 정서적으로 기대고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영우와 사랑에 빠져드는 준호(강태오 분)가 있다. 준호는 여느 남녀들처럼 특별한 이유없이 상대방에게 빠진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태도는 특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을 받는 영우의 태도는 일반적이지 않다. 처음으로 겪는 감정의 파동에 상이함을 느끼며 준호의 사랑에 감응하지 못하자, 되려 그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별을 고한다. 아직까진 벽으로 인식되는 요소로 애정이 완성되지 못하는, 로맨스 장르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자폐라고하는, 관계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영웅물이나 법정물의 요소를 품고 있어 그 장르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인 영우가 관계에 대하여 신선한 생각을 품고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며 사유하게 되는 것은 고무적인 요소였다. 이윽고 영우가 맞이하는 관계는 남녀 사이를 보여줌에 있어 가장 밀도가 높은 로맨스의 요소라니. K-드라마답게 연애 양념이 끼얹어 진다는 고정관념이 찬물을 맞는 순간이었다. 인물의 변화와 소재를 생각했을 때 이 이야기의 메세지가 명징해진다. 그러므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로맨스물이었던 것이다.

자폐 장애인에게 중요한 것은 일정함을 띄고 있는 루틴이다. 김밥을 먹으며 맛의 다양함에 놀라지 않아야 한다는 영우의 습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체계에 민감한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루틴이 깨지고,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언제고 자폐적 습성안에서만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가진 많은 서브장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관계의 정립에 집중한 연애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촬영장에서 김밥을 너무 먹었더니 이젠 지친다

드라마 미디어는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녹턴>의 동생은 형과 성공적인 합주를 한다. 형의 리드를 따라가기만 했지한, 명연주를 성공한 동생은 그제서야 첫 교감을 느낀다. 늘 도움만 받던 형이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했다는 반증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청한 손민서씨는 "이면의 힘겨운 인간적 사연까지 함께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자가 선택한 방법론은 무게나 밀도감 보다는 가벼운 터치로 관심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일단 긍정적 소구점이 발생하고 나면 사유는 후에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대중문화가 지녀야 할 첫번째 성향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명제에 충실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기획의 단계에서 모든 공중파에서 거절당했다. 공중파에서 다루기에 장애인의 이야기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리얼리즘을 기반으로한 묵직한 톤으로 논의를 진행하기엔 아직 사회가 설익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뛰는 단계를 지나 안착하려면 이 또한 대중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많은 장애인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우영우 컨텐츠는 엄청나게 성공했다. 미국에서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굿닥터>를 잇는 좋은 사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제작사에서는 시즌2의 제작을 확정발표했다. 실은 별로 안 이상한 우영우 변호사는 사건들을 계속 맞이 할 것이고 해결해 갈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 컨텐츠에는 자폐를 너머, 장애를 향한 어떤 시선이 미션처럼 하달 될 것이다. 이어지는 시즌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태도와 밀도가 조금더 깊어져 성숙한 논의가 가능한 시리즈가 되길 기원해 본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