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때아닌 조용필의 곡이 <수리남>에?
영화 <라디오 스타> (2006)에서 최곤 (박중훈 분)은 왕년에 스타 가수였지만, 시들해진 지금은 강원도 영월에서 라디오 DJ를 할 뿐이다. 그의 프로그램 '최곤의 두시의 희망곡'은 히트를 쳤지만, 곤은 여전히 서울에서의 화려했던 나날들을 잊지 못하며 불만에 휩싸인다. 결국 곤은 그에게 헌신하는 매니저인 민수 (안성기 분)와 틀어져 헤어진다. 최곤은 방송에서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주는 코너를 진행하다가 목이 메이고, 눈물 흘리는 그의 얼굴 위로 조용필의 노래인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가 흐른다. 그리고 자신을 조용필처럼 만들어 줄 것이라던 민수형을 찾으며 눈물을 흘린다. 극중 그림자같은 존재를 찾는 인물과, 조용필의 노래가 주는 정서가 중첩되어 쉽지만 깊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실은 조용필의 곡이 영화나 드라마등, 서사 미디어에 삽입된 경우는 <라디오 스타> 이외엔 전무후무하다. 80,90년대의 수많은 영화인들이 곡을 사용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수리남>에서 조용필의 '꿈'이 극중에서 흐른다. 이 곡이 쓰인 지점 또한 참 절묘하다.
<수리남>의 두 축인 강인구 (하정우 분)와 전요한 (황정민 분)은 돈을 벌기 위해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미 국가인 수리남에 와 있다. '꿈'의 가사인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를 듣다보면 두 캐릭터의 여정과 뭔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남성성' 주목해온 윤종빈이 끌어오는 인물은 다름 아닌 아버지
<수리남>의 기획, 제작, 대본, 연출을 담당한 윤종빈 감독은 단편 시절에 만든 <남성의 증명> (2004)부터 시작해서 장편 영화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자> (2005) , <비스티 보이즈> (2008), <범죄와의 전쟁> (2012) 등의 영화를 만들면서 남성성이라는 소재에 늘 주목한다. 그러면서 그 화두를 통해 우리를 지배하고있는 게임의 규칙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기 위해 윤감독이 주로 끌어오는 인물은 아버지다. 각 시대상의 아버지를 보여주면서 누아르나 스릴러의 문법으로 풀어내는 독보적인 화법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과거의 그 시절 비리를 저지르던 사람들이 지금은 평범한 아버지가 됐다는 회고가 나온다. 거기에 갱스터 이야기의 문법과 아버지라는 추념의 어느 중간 지점을 잘 잡아 자기 세계를 모색한다. <수리남> 또한 강인구라는 어떤 아버지의 자식들을 위한 희생담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인구는 얼떨결에 결혼해 가난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공부와 생존 스킬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이 아버지는 돈에 관한 것이 아니면 다 낭비로 치부한다. 곧 그는 남미에서 마약왕의 파트너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수리남>은 오직 돈만을 좇아온 인구가 어떤 중간점을 잡게 되느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찬호가 사인한 야구공, 그리고 다시 조용필
강선생 어때? 내 비전이. 난 내 속을 다 까서 보여줬어
민간인 언더커버로서 활동하는 인구는 결국 전요한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인구는 요한의 보물쯤으로 여겨지는 박찬호 사인볼을 선물로 받는다. 이 야구공은 엔딩에서도 중요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감옥에 간 요한이 야구공만큼은 돌려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 뻔뻔한 죄수는 왜 야구공을 돌려달라고 했을까? 안에 마약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거짓으로 점쳐진 전요한의 삶에서 그것만큼은 '진짜'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그가 인구에게 보인 정성만큼은 진실인 것이다. 이 장면을 엔딩으로 내세운 연출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가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하고 질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인볼 소품은 실제 박찬호 선수가 사인했다. 즉, 이 이야기는 적어도 외재적으로는 '진짜'인 것이다)
전요한의 입장에서 진실을 던지는 케이스가 또 있다. 조용필의 노래, '꿈'을 계속 이어가 보자.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전 목사의 최애곡인 이 노래의 가사는 좋을 곳을 숲, 나쁜 곳을 늪으로 비유한다. 실제로 전요한은 코카인 숲을 만들고 있으니 그에게 숲이란 정말로 축복의 장소다. 반면에 인구가 홍어 마약 사건으로 감옥에서 나와 수리남에 돌아왔을 때를 생각해보자. 요한은 인구를 의심하며 '만약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천벌이 당신을 죽음의 늪으로 이끌 것' 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구를 끝까지 살려내는 것은 '거짓'이다. 결국 거짓을 고해서 늪으로 팽개쳐 진 것은 인구가 아니라 요한이었다. 사이비라는 거짓의 성은 그 또한 거짓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수리남>의 홍보 카피인 '속이면 살고 속으면 죽는다'는 직관이 온전하게 배경음악과 인물의 대사에 녹아 들어간다.
윤종빈 감독이 말하는 지금의 아버지 : 욕망과 윤리의 갈림길에서
전요한의 말마따나, 나와 강인구 당신은 같은 DNA를 지니고 있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성격 말이다. 전요한은 종교의 소명과 헌신을 이용해 자기 이득을 챙긴다. 반면에 인구는 최창호 / 구상만(박해수 분)을 만나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서서히 생각이 변해간다. 인구는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와 교육에 관심을 놓지 않는다. 돈에 대한 태도만을 보면, 언뜻 인구와 요한 두 캐릭터는 같은 선상에 있는지 모른다. 비록 천민 자본주의에 절어버린 한국사회를 보는 것 같지만, 두 캐릭터는 비슷한 듯 양 극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구는 요한의 환심을 산 타이밍에 자신의 가족을 되려 수리남으로 데려와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다. 돈에 대한 야욕도 드글드글 끓었지만 결국 그러지 않고 자식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영웅담을 가지는 아버지의 길을 택했다. <수리남>은 욕망이라는 갈 길과 윤리라는 의무에서 중간점을 잡아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 목사가 아니라 강인구가 되는 것이다. 윤종빈 감독이 이번에 설파하고 싶었던 아버지 모습은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는, 마음 속 어딘가의 정언명령을 따르기로 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의 태도라는 강변이 아니었을까.
질서의 가면을 쓴 불합리같은 세태는 전요한 같은 악한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재탄생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기존 질서의 적나라함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감독의 주장은 늘 유효하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