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정상화. 삭막한 코로나 시대를 지나온 수많은 영화 팬들에게 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소식은 이보다 반가운 말이 없을 정도다. 그동안 거리두기로 상영관 축소, 해외 gv 축소, 부대 행사 축소 및 취소 등 지난 2년 간 부산국제영화제는 만남의 장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아쉬운 나날을 보내왔다. 더군다나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부산에서 즐길 수 있는 끝나지 않는 '영화의 밤'은 한동안 접어두어야 했다.

여전히 코로나를 둘러싼 국내외 상황은 어지럽지만, 적어도 부산에서 즐기는 영화의 축제 기간만큼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오려 한다. 이토록 화려한 복귀를 축하하듯, 부산국제영화제는 예년보다 더 강력한 작품들로 이번 프로그램들을 꾸렸다. 특히, 거장들의 신작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아이콘’ 섹션은 입이 쩍 벌어지는 이름들의 향연이다. 부산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을지 말지 고민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아이콘’ 섹션 속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서둘러 캐리어를 챙기고, 숙소도 알아보기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년 연속 아카데미 감독상의 저력

7년만의 장편 복귀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영화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버드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통해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아카데미 어워드 감독상을 받은 저력을 보여주었던 멕시코의 거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7년 만에 장편 복귀작을 발표했다. 무려 세 시간 가까이 되는 174분의 러닝타임으로 돌아온 그의 작품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는 이번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도 초청되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특히, 세계적인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와의 첫 작업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는데,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이나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같이 빼어난 화면을 구성한 그가 멕시코의 광활한 사막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데뷔작 <아모레스 페레스>를 제외하고는 줄곧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 그가 다시 본국인 멕시코에서 작업을 했다는 점이, 수십 년 전 “검열을 피해 도망친” 저널리스트 겸 다큐멘터리 작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금의환향한 이 영화의 주인공 실베리오와 겹쳐 보이면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어떠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루카 구아다니노: 티모시 샬라메와의 재회!

베니스 영화제 은곰상의 <본즈 앤 올>

영화 <본즈 앤 올>

티모시 샬라메를 현재 자리에 있게 만든 작품을 하나 꼽자면 단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아닐까? 지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더 킹: 헨리 5세>를 통해 티모시 샬라메가 내한했을 때의 분위기는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했다. 국내에서 가장 화젯거리인 외국 배우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티모시 샬라메가 루카 구아다니노와 다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은 뭇 모든 국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9월 25일, 뒤늦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에 합류를 밝힌 이 작품은 안 그래도 치열한 부산의 열기에 제대로 불을 붙였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티모시 샬라메와 다시 만나 작업한 <본즈 앤 올>은 호러와 청춘 로맨스가 절묘하게 섞인 작품이라고 한다. 이미 <서스페리아>를 통해 화려한 색감으로 호러 장르에 새로운 지평을 연 그가 이번엔 티모시를 어떻게 그릴지 기대되는 가운데, 12월 국내 개봉 전 처음으로 부산에서 만날 이 기회 놓칠 수 없을 것만 같다!

루벤 외스틀룬드: 한 번도 어려운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올해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

영화 <슬픔의 삼각형>

이번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의 완성도와 흥행을 생각해볼 때, 많은 국내 영화 팬들은 도대체 올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어떤 작품이길래 <헤어질 결심>이 수상에 실패했는지 매우 궁금할 것이다. <헤어질 결심>을 제치고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작품은 다름 아닌 루벤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 이미 2017년 <더 스퀘어>로 젊은 나이에 첫번째 황금종려상을 받는 쾌거를 이룩하며 새로운 칸의 총아로 자리매김한 그가, 한 번도 어렵다는 칸의 종려나무를 무려 두번이나 꺾게 되며 많은 거장의 부러움을 샀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더 스퀘어>에 이은 남성 부조리 3부작의 마지막인 이번 신작은 그의 장기인 블랙코미디가 영화의 구석구석 서려 있다. 사회주의자 선장이 끄는 호화크루즈가 무인도에 난파하면서 자아내는 좌충우돌 계급 우화라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웃음 속에 날카로운 뼈를 드러내는 루벤 외스틀룬드식 풍자극의 정수일 것이다. <기생충>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슬픔의 삼각형>에 서린 담론에도 흥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제임스 그레이: 소리없는 강자 이번에는?

앤 해서웨이 주연의 <아마겟돈 타임>

영화 <아마겟돈 타임>

제임스 그레이. 해외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할리우드에 조금 더 깊게 관심이 있다면, 항상 안타까워하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매번 좋은 작품을 내지만 번번이 상과는 거리가 먼, 소위 얘기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과의 감독이기 때문이다. 2008년 <투 러버스>를 시작으로 <이민자>, <잃어버린 도시 Z> <애드 아스트라>까지 언제나 호평 일색의 양질의 작품을 발표한 그가 이번엔 <아마겟돈 타임>으로 돌아왔다. 올해도 칸과 베니스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평론가와 언론의 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다. 코로나 초기에 시작한 촬영 당시 알려진 것과는 다른 캐스팅이지만, 12살 소년 폴의 어머니 역에 앤 해서웨이와 아버지 역에 제레미 스트롱은 매력적인 캐스팅이다.

특히, 제레미 스트롱은 올해 골든 글로브에서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를 꺾고 <석세션>으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커리어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그의 연기력은 이미 <석세션>의 켄달 로이 역을 통해 증명된바, 이번 작품에선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원래 예정되었던 할아버지 역의 로버트 드 니로 대신 합류한 안소니 홉킨스는 드 니로보다 더 따사로운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이민자 출신의 제임스 그레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안정적인 연기력을 지닌 정상급 배우들을 통해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갈지 궁금하다면, 예매 리스트에 어서 담아보자!

노아 바움벡: 실패없는 아담 드라이버의 안목은?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 <화이트 노이즈>

영화 <화이트 노이즈>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 선구안을 가진 배우를 고르자면 그것은 단연 아담 드라이버다. 조연으로 얼굴을 비친 2012년 스필버그의 <링컨>부터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지 못한 작품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리들리 스콧,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소더버그, 짐 자무쉬, 레오 까락스. 그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의 이름만으로도 풍성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아 바움벡이다. <프란시스 하>, <위아영>,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결혼 이야기>에 이어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작업이다.

처음으로 본인의 각본이 아닌 돈 드릴로의 뛰어난 소설 <화이트 노이즈>를 기반으로 만든 이 작품은 블랙 코미디라는 이전엔 본 적 없는 노아 바움벡의 새로운 스타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담 드라이버뿐만 아니라 그의 연인 그레타 거윅, 돈 치들, 그리고 안드레 3000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아웃캐스트의 안드레가 맞다!!) 등이 함께하며 1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예정인 이 작품 역시 부산에서 국내 최초 공개 예정이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미처 소개하지 못했지만, 폭력의 미학을 드러내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미래의 범죄들>, 할리우드의 만담꾼 마틴 맥도나의 <이니셰린의 밴시>, 프랑스의 다작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피터 본 칸트>,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문쥬의 <R.M.N.>, 항상 문제작을 선보이는 알베르 세라의 <퍼시 픽션>, 이란의 자랑 자파르 파나히의 <노 베어스>와 칠레의 다큐멘터리스트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내가 꿈꾸는 나라>까지 이번 아이콘은 엄청난 이름들의 대단한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3년 만에 정상화된 부산의 가을이 기대되는 이유다.


최현수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