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의 사전적 의미는 '공공의 업무를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 사회에서 '공인'은 연예인에 대한 높은 도덕적·윤리적 기대를 요구할 때 많이 거론되며, '연예인은 공인이니 그 책임도 공인이 지는 책임과 동일하다'라는 식의 논리를 설파할 때 사용된다. 또한 '나라의 녹을 받고 사는 사람'의 뜻이 담긴 '공인'이라는 말은 연예인의 정치적 발언이나 적극적 사회 참여를 옭아매는 하나의 기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분명 연예인이 '공인'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공인'이라는 잣대로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고 말과 행동에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한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는)인'이라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배우 '조현철'의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수상 소감에 “정치가 못하고 있는 일을 지금 여기에서 문화예술인들이 해주어 먹먹하고 뭉클하다"라고 전한 한 SNS의 반응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전달되는 그들의 의도된, 혹은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은 때때로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꾀한 변화를 단번에 가져오기도 하고, 그 영향은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다.

'공인'과 '공개인'그 사이, 독특한 위치로 때로 직업인 이상의 사회적 역할을 요구받고 수행하는 배우들. 오늘은 실력은 기본, 탁월한 인성으로 대중에게 긍정적 영감을 주는 배우들을 정리해 봤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배우 겸 감독 조현철이다.

배우 겸 감독 조현철

"나는 이들이 죽은 뒤에도 분명히 여기 있다고 믿어"

얼굴에서 선함이 묻어나는, 배우 겸 감독 조현철

배우 '조현철'은 최근 한 시상식 무대에서 '공개인'이라는 위치를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넷플릭스 <D.P.>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다"라며 "아빠,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라고 자신의 아버지를 위로하는 말로 수상 소감을 시작한다. 이후 환경운동가 박길래씨, 세월호 참사 희생자, 홀로 작업하다 숨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된 고 변희수 하사, 학교폭력 피해자 이경택군 등 사회에서 차별과 부조리로 희생된 이들을 호명하며 "나는 이들이 죽은 뒤에도 분명히 여기 있다고 믿어"라고 덧붙인다.

무대라는 지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가족의 죽음과 사회적 죽음의 당사자들을 동시에 호명하며 위로한 그의 수상 소감은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 조현철은 고(故) 변희수 하사를 떠올려 부친상 조의금을 군인권센터에 기부하며 "군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센터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사회적 발언과 별개로 조현철이 사랑받는 본질은 그의 예술성일 것이다. ‘척추측만’(2010), ‘뎀프시롤: 참회록’(2014), ‘로보트: 리바이벌’(2015), '너와 나'(2022) 등의 영화를 연출하고 ‘판소리 복서’(2019)의 각본을 쓰며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의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그의 천재적 면모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배우 신민아

한 면으로 열거하기 힘든, 끝이 없는 기부 목록

배우 신민아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하는 법. 숫자로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는 배우도 있다. 누적액 30억 원에 달하는 배우 '신민아'의 독보적인 기부액은 취약계층, 특히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진심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신민아는 해마다 5억~10억씩 꾸준하고 조용한 기부를 이어왔다. 가장 최근의 울진, 강원 감척 등 산불 피해 이웃 돕기를 위한 기부를 비롯, 코로나19 장기화 피해 지원, 화상 환아 및 취약 계층을 위한 기부, 서울아산병원을 통한 아동 지원 기부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그 목록이 끝이 없다. 그는 꾸준한 기부 활동으로 2019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데뷔 이후 기복 없이 꾸준한 활동을 벌여오며 최근에는 <갯마을 차차차>, <우리들의 블루스>로 큰 사랑을 받은 신민아. 연말 정산내역에 찍힌 초라한 나의 기부액은 '기부, 말처럼 안 쉬워'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많은 부를 축적한 배우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이것이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환원하는 신민아의 행보가 많은 이에게 찬사를 받는 이유다.

갓우성, 갓혜수

끝도 없는 미담.. 입만 아프다.

짜릿해.

끝도 없는 미담을 통해 의도치 않게 '증명되는' 배우도 있다. 불신이 기본값인 사회다.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들 때마다 갓우성, 갓혜수의 미담을 되새기며 인간애를 회복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배우 김선영은 2021년 영화 '세자매' 인터뷰에서 정우성에 관한 일화를 언급한다. 김선영은 "정우성이 우리 공연을 보고 너무 좋다며 제작비를 100%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다. 이튿날에도 문자를 해 본인은 진지하다며 '이 공연을 더 좋은 극장에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려면 얼마가 더 필요한가요'라고 하더라. 재공연이 가능한지 연출 담당자와도 상의를 해줬으면 좋겠다면서"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봅슬레이 선수 강한과 정우성의 오랜 인연 또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겼다. 완벽한 타인에게 베푸는 대가 없는 친절이라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를 정우성은 또 한번 썼다. 그것이 부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의 행동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정당한 행위들을 누군가는 스스럼없이 해 나가야 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구나' '누구나 우리 국민이면 할 수 있는 얘기고 행동이구나' 그걸 후배 세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사회적 발언에 거침없는 정우성. 정치적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발언과 행동에도 그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늘 짜릿한 얼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 영역에서의 그의 행동이 그가 내뱉은 말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때문은 아닐까.

갓혜수

갓우성과 비견될 유일한 배우는 아마 김혜수일 것이다. 김혜수와 함께 <소년 심판>에 출연한 배우 이상희는 "소년범 역할 배우들과 미팅을 했다. 얼마나 떨리겠나. 리딩하고 나서 김혜수 선배님이 소년범 역할 배우들을 찾아가 '이런 점이 너무 좋았다'라며 일일이 다 이야기해 주셨다"라고 미담을 전한다. 김혜수의 후배 배우들에 대한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후배들의 연기 모니터링을 위해 촬영장을 찾으며, 작은 단역이나 엑스트라 배우들의 이름을 평소 메모해 두었다가 스태프들에게 추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료 포대를 썰매 삼아 눈에서 뒹굴고,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었던 소소한 날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남자친구와의 추억이라 말하는 김혜수. 그를 보면 행복을 세속적인 것에서 찾으려 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