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왕빙은 악명 높은 러닝타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왕빙의 고향이기도 한) 셴양의 공업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따라간 <철서구>(2002)는 9시간, 앞서 언급한 <원유>는 12시간, 1950년대 노동교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을 담은 근작 <사령혼>(2018)은 8시간을 훌쩍 넘는다. 촬영한 기간도 긴 건 물론이다. 길게는 2년 동안 찍기도 했다. 러닝타임 2시간 반을 살짝 넘기는 <세 자매>는 앞선 작품에 비하면 훨씬 짧게 찍었다. “일반 사람이 살기엔 너무 힘든 곳이라서 긴 시간 촬영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을 때 4-5일 이후 얼마 뒤 또 4-5일 정도 찍었고, 그 다음은 제가 고산병으로 몸이 너무 안 좋아진 상태라 도저히 그곳에 갈 수 없어 다른 분에게 촬영을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20분, 도시로 떠났던 아버지와 두 동생이 돌아온 시점 이후가 왕빙이 직접 찍지 않은 부분이다. 그 대목과 그 이전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르게 찍혔나 살펴보면 왕빙이라는 예술가의 비밀 하나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제목에도 불구하고 <세 자매>는 대부분 첫째 잉잉을 비추는 데에 할애된다. 특별히 잉잉에 초점을 맞추는 걸 의도하진 않았지만 잉잉은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분주하기에 유독 많은 순간 카메라에 걸린다. 다만 그 많은 순간에도 10살 소녀 잉잉의 얼굴에는 아이들 특유의 생기어린 표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 자매가 황량한 고산 지대 마을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매일같이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세 자매>에 어떤 드라마가 있다면 그건 잉잉의 표정일 것이다. “아무래도 성격이 조용하고 생활의 압박을 가장 많이 느끼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과거 집 나가기 전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을에 사는 친척들이 구박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첫째인 잉잉에게 그런 대우가 더 쏠렸을 거고요.”
아주 드물게 잉잉의 얼굴에 감정이 기쁨이 드러날 때가 있다. 몇 년 동안 딸들 곁을 떠나 있었던 아버지가 돌아온 날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꺄르르 기뻐하진 않지만, 아버지 옆에서 가만히 식사를 하는 잉잉에게서 분명 기쁨이 엿보인다. 아버지가 두 동생을 데리고 도시로 떠났다가 반년 정도 지나 다시 돌아왔을 때 (동생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는 잉잉은 홀가분하긴커녕 그저 쓸쓸해 보일 뿐이다) 잉잉은 이전처럼 미소를 띠지 않는다. “도시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여자를 하나 데려와요. 이 가정에 있어서 그녀는 미지수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감지됐을 거예요. 그 여자는 실제 남편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그걸 깊게 파고들진 않았어요. 어른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둘째 셋째를 데리고 도시에 가는 여정도 같이 따라갔지만 그때 찍은 걸 전혀 쓰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