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손꼽히는 왕빙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21세기 다큐멘터리 특별전'을 통해 상영되는 <세 자매>의 감독이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 심사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왕빙을 만나 올해로 공개 10주년을 맞이한 <세 자매>에 대해 물었다.

왕빙 감독과 함께


<세 자매>는 왕빙이 2012년 발표한 다큐멘터리다. 제목 그대로 세 자매를 찍었는데, 왕빙이 처음 이 아이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 누구와도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 “2009년 봄 즈음, 20대에 요절한 어느 작가 분의 묘를 방문했다가 길에서 놀고 있는 자매들을 처음 봤습니다. 가볍게 이것저것 묻던 중 엄마 아빠가 집에 계시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사는 곳까지 찾아 가게 됐죠.” 자매의 집에 방문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을 찍어 두긴 했지만, 그게 <세 자매> 프로젝트의 시작은 아니었다. “유럽의 한 방송국 프로듀서로부터 작품을 하나 만들자고 제안이 왔습니다. 오랫동안 알던 사이라 작품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아 그날 본 세 자매를 찍겠다고 했습니다.” 고비 사막에서 원유를 채굴하는 노동자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원유>(2008)를 찍다가 고산병을 앓게 된 왕빙은 카메라를 들고 윈난성의 3,200미터 고산 지대에 사는 10살 잉잉, 6살 젠젠, 4살 펜펜 세 자매를 다시 찾아갔다. 처음 만난 날로부터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세 자매>

흔히 왕빙은 악명 높은 러닝타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왕빙의 고향이기도 한) 셴양의 공업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따라간 <철서구>(2002)는 9시간, 앞서 언급한 <원유>는 12시간, 1950년대 노동교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을 담은 근작 <사령혼>(2018)은 8시간을 훌쩍 넘는다. 촬영한 기간도 긴 건 물론이다. 길게는 2년 동안 찍기도 했다. 러닝타임 2시간 반을 살짝 넘기는 <세 자매>는 앞선 작품에 비하면 훨씬 짧게 찍었다. “일반 사람이 살기엔 너무 힘든 곳이라서 긴 시간 촬영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을 때 4-5일 이후 얼마 뒤 또 4-5일 정도 찍었고, 그 다음은 제가 고산병으로 몸이 너무 안 좋아진 상태라 도저히 그곳에 갈 수 없어 다른 분에게 촬영을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20분, 도시로 떠났던 아버지와 두 동생이 돌아온 시점 이후가 왕빙이 직접 찍지 않은 부분이다. 그 대목과 그 이전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르게 찍혔나 살펴보면 왕빙이라는 예술가의 비밀 하나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제목에도 불구하고 <세 자매>는 대부분 첫째 잉잉을 비추는 데에 할애된다. 특별히 잉잉에 초점을 맞추는 걸 의도하진 않았지만 잉잉은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분주하기에 유독 많은 순간 카메라에 걸린다. 다만 그 많은 순간에도 10살 소녀 잉잉의 얼굴에는 아이들 특유의 생기어린 표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 자매가 황량한 고산 지대 마을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매일같이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세 자매>에 어떤 드라마가 있다면 그건 잉잉의 표정일 것이다. “아무래도 성격이 조용하고 생활의 압박을 가장 많이 느끼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과거 집 나가기 전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을에 사는 친척들이 구박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첫째인 잉잉에게 그런 대우가 더 쏠렸을 거고요.”

아주 드물게 잉잉의 얼굴에 감정이 기쁨이 드러날 때가 있다. 몇 년 동안 딸들 곁을 떠나 있었던 아버지가 돌아온 날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꺄르르 기뻐하진 않지만, 아버지 옆에서 가만히 식사를 하는 잉잉에게서 분명 기쁨이 엿보인다. 아버지가 두 동생을 데리고 도시로 떠났다가 반년 정도 지나 다시 돌아왔을 때 (동생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는 잉잉은 홀가분하긴커녕 그저 쓸쓸해 보일 뿐이다) 잉잉은 이전처럼 미소를 띠지 않는다. “도시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여자를 하나 데려와요. 이 가정에 있어서 그녀는 미지수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감지됐을 거예요. 그 여자는 실제 남편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그걸 깊게 파고들진 않았어요. 어른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둘째 셋째를 데리고 도시에 가는 여정도 같이 따라갔지만 그때 찍은 걸 전혀 쓰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세 자매>

왕빙 역시 세 자매의 근황은 2014년에 멈춰 있다. 아이들의 소식을 알기 위해선 그곳에 직접 가야만 하는데 (영화 속엔 기계문명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산병을 앓고 있기에 그 험난한 길을 감당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일 터. 수소문 끝에 세 자매의 어머니를 라오스 국경 근처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머니를 재회하지 못했다. “당연히 딸들을 사랑하지만 집을 나가기 전 남편과의 갈등이 깊었고 본인도 다른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 경제적으론 여전히 어려웠기 때문에 세 딸을 데리고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게다가 아이들이 사는 곳과 어머니가 사는 곳은 무려 1,000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세 자매>는 여러모로 왕빙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만방에 알린 <철서구> 이후 꼭 10년이 지나 발표됐고, 첫 극영화 <바람과 모래>(2010)를 작업하고 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다. 처음으로 성인이 아닌 아이에게 초점을 맞췄고, 이례적으로 세 자매를 찍은 초기 분량을 단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세 자매>가 갖는 독특한 지점에 대해서 물었다. 왕빙은 대부분 “아니요”라고 운을 떼며 특별한 건 없었노라고 대답했다. 늘 작업하던 그 태도와 작법 그대로, 스스로 감각하는 대상과의 거리를 적절히 지켜가며 그저 카메라를 들고 집요하게 찍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왕빙을 다시 만나 같은 질문을 던져도 그는 “아니요, 그저 찍었을 뿐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세 자매>

PS. 왕빙에게 근래 본 인상적인 다큐멘터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지난 베를린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미얀마 다이어리>를 꼽았다.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현실을 포착한 작품이다. 신변 보호상 이름을 밝힐 수 없어 '미얀마 영화 집단'이라는 이름 외에 크레딧에 아무 정보도 노출하지 않은 <미얀마 다이어리>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