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산업의 형태를 갖추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1950년대 중, 후반부터 멜로장르는 개봉영화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인기 품목’이었다. 정비석의 서울신문 연재소설을 영화화한 <자유부인> 은 전쟁이 끝난 고작 3년 후, 수도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사회의 개건이 이뤄지기 전이었지만 영화는 한국사회에 전례에 없는 흥행과 이슈를 기록 했다.
대학교수의 부인인 가정주부 ‘오선영’ (김정림)은 고급 양품점의 점원 일을 맡게 된다. 판매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선영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특히 옆집 청년 ‘신춘호’ (이민)에게 서서히 끌리기 시작한 선영은 그를 통해 춤을 배운다. 매일 밤 클럽에서 춤을 추고 남자들과 어울리던 선영은 몇 차례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고는 양품점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선영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아빠를 뒤로하고 어린 아들 경수는 집 앞에 서 있는 선영에게 뛰어가 안긴다. 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흐느낀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당시 영화는 10만 8천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서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여러 편의 속편과 리메이크가 제작되었다. 속편인 <자유부인(속)>(김화랑, 1957)이 이듬해에 제작되고 1969년에는 강대진 감독이 동명의 제목으로 리메이크를 했으며 1980년대에는 박호태 감독에 의한 <자유부인>(1981), <자유부인2>(1986)이 제작되었다. 현재로서는 박재호 연출의 <1990 자유부인> (1990) 가 시리지의 매듭을 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산업의 초기에서 엄청난 대중의 인기를 모았던 <자유부인> 이후로 여성의 사랑과 모성 을 저울질하는 멜로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미워도 다시 한번> (정소영, 1968) 은 관객 동원 37만명이라는 1960년대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영화는 혜영(문희)이 신호(신영균)가 유부남인지 모르고 사랑하게 되어 겪게 되는 비극을 그린다.
혜영은 신호와 결혼을 꿈꾸지만 신호는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진실을 얘기하지 못한다. 결국 시골에서 신호의 아내(전계현)와 자식이 상경해서야 혜영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혜영은 신호 곁을 떠나 신호의 아들 영신(김정훈)을 낳아 기른다. 그럼에도 8년 후 그녀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신호를 찾아가 아이를 길러줄 것을 부탁한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만을 찾는다. 영신은 엄마를 찾아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집안 사람들은 영신을 찾아 나선다. 집으로 돌아온 영신을 혼내는 신호를 훔쳐보며 혜영은 자신이 영신을 키워야겠다고 결심한다. 신호의 가족들도 영신을 혜영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혜영은 아이와 함께 시골로 내려간다.
최루성 멜로영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워도 다시 한번>은 <자유부인>과 마찬가지로 리메이크의 리메이크를 거듭하며 1971년까지 해마다 한 편 씩 모두 4편이 제작되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의 변주라고 할 수 있는 정윤희 주연의 <사랑하는 사람아> (1981, 장일호) 역시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 여성의 수난기를 다룬다. <자유부인>이 바람난 주부가 집으로 돌아가기 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미워도 다시 한번>이나 <사랑하는 사람아>는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안착하지 못한 여자들의 고생담을 조명한다.
간호사인 ‘영주’ (정윤희)는 ‘세준’ (한진희) 과 사랑하나 기지촌의 양공주였던 영주 어머니의 과거가 밝혀지자 결혼을 취소한다. 이에 대한 충격으로 영주의 어머니는 죽는다. 파혼과 어머니의 죽음의 한 가운데서 영주는 세준의 아이를 낳는다. 한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세준은 아내의 거듭되는 유산으로 끝내는 아이를 갖을 수 없게 된다. 세준의 부모는 영주를 찾아 아이를 요구한다. 영주는 그 동안의 슬픈 나날들을 돌아보며 당당히 거절하지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 고민하다가 결국 세준에게 보낸다.
앞서 언급했듯, <자유부인>,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하는 사람아>를 포함, 1990년대 기획영화의 등장 전까지 히트했던 멜로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는 어쩌다 유부남을 만나게 된 여성의 기구한 말로를 그린다거나, 출신으로 인해 결혼을 하지 못한 여성의 수난사를 묘사한다는 점이다. 키우던 아이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버림받은 남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결말을 가진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현대 멜로영화의 대부분이 싱글 남녀의 연애에 초점을 맞춘다면 50-80년대 한국영화의 멜로영화는 제도권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희생당하는 여성의 딜레마를 그린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사랑은 모성보다 세속적이고 천한것으로 치부되며 영화의 궁극은 여성으로 하여금 모성을 (강제)선택하게 하며 결말이 난다. 이런 점에서 “현대사회의 부부관계와 자식관계를 파헤친 감동의 청춘영화”라고 영화를 소개하는 <사랑하는 사람아>의 광고 카피는 수 십년을 군림했던 한국(형) 멜로영화의 경향을 일괄 요약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 새로운 세대에 의한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 즉 ‘기획영화’들이 제작되면서 한국멜로영화는 비로소 현재의 멜로영화들, 혹은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젊은 청춘남녀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결혼이야기>, <고스트 맘마> 등은 역시 결혼을 전제로 하고 있긴 하나 두 주인공의 결혼 생활이나 결혼까지 이어지는 연애의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다는 점에서 제도권에 포함되지 못한 여자들의 추락을 강조한 선대의 멜로 영화들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태어난 기획영화/멜로 영화들은 앞선 시대의 관객들보다는 훨씬 더 어린 층의 관객들에게 환영 받았고 멜로 영화는 비로소 젊은 세대의 취향을 반영 해야 하는 ‘젊은 장르’가 되었다.
한국이 IMF를 겪고 난 2000년대에 이르면 멜로 영화 속에서 결혼은 사라지거나 버거운 것으로 그려진다. 아마도 금융위기 이후로 변화된 경제적인 상황이 젊은 세대에 있어 결혼이라는 선택에 대한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을 것이다. 남자들은 지난 시대의 그들과는 달리 결혼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고, 가정에 대한 환상을 구태의연한 것으로 여긴다.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2002)는 소개팅과 연애만 즐기는 대학 강사, ‘준영’ (감우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는 댓가로 소개팅을 하게 된 준영은 당돌하고 멋진 조명 디자이너 ‘연희’ (엄정화)를 만난다. 3차로 술집까지 가게 된 두 사람은 택시비보다 숙박비가 더 쌀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누다 어느새 모텔로 직행한다. 그렇게 둘은 연인사이가 되지만 결혼은 조건 좋은 남자와, 연애는 준영과 하고 싶었던 연희는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지속된다. 준영과 지낼 집을 구해 예쁘게 꾸미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연희는 준영과 밥을 해 먹는 등 이들의 생활은 결혼과 다름이 없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포함해 이후에 제작된 멜로 영화들에서도 결혼을 해피엔딩으로 선택하는 클래식한 스토리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2000년대 초반은 그야말로 연애 영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 많은 멜로 영화, 로맨틱 코미디들이 쏟아져 나왔다. 90년대 말 이후로 기존의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신인감독들이 쏟아져 나온 사실 역시 장르의 부흥에 기여를 했다. 큰 완성도와 제작비를 요구하지 않는 멜로/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접근성이 많은 신인감독으로 하여금 장르를 선택하게 했을 것이다. <와니와 준하> (김용균, 2001), <클래식> (곽재용, 2003), <동갑내기 과외하기> (김경형, 2003), <그녀를 믿지 마세요> (배형준, 2004) 등은 작지만 눈에 띄는 컨셉과 신인배우들을 이용해 만든 트렌디 멜로영화들의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
※ 2000년대 이후 한국 멜로의 역사는 2부로 이어진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