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살인은 범죄자의 도덕적 일탈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단순히 제 손에 피를 묻힌 자가 모든 원흉이라고 사건을 일축할 수 없다. 한 사람보다 훨씬 거대하고 촘촘한 사회 구조가 이 죽음을 침묵하고, 방기하며, 조장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야기하는 거시적 요소는 시민 의식일 수도 있고, 부정한 통치 체제일 수도 있으며, 그보다 더 큰 시대적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런 종류의 죽음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괴물을 처리하고 나면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동화 속의 이야기와 달리, 사회적 타살은 또 다른 살인자를 양산해 죽음의 고리를 이어 나갈 뿐이다. 그리고 소리 없이 희생된 약자와 소수자들은 그들의 죽음마저 부정당한다.
이란은 이런 사회적 타살이 만연한 국가 중 하나다. 여성, 성소수자와 같은 약자들의 죽음은 도처에 만연하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부덕한 존재가 되고, 다른 남성과 맞담배를 피우면 창녀가 되는 사회. 7,000명이 넘는 도덕 경찰들이 잠복근무를 하며 여성의 부도덕성을 판단하고 사적 제재를 가해도 용인하는 사회. 작금의 이란은 여성과 소수자를 탄압하는 보수 이슬람의 율법만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통해 언급할 영화 역시 탄압과 혐오로부터 비롯된 이란의 사회적 타살을 다루고 있다. 2023년 2월 1일 국내에 개봉한 알리 아바시의 <성스러운 거미>는 사회가 자행하는 폭력과 살인의 메커니즘을 상세하게 폭로하고 있다.
누가 살인자인가?
2018년 <경계선>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알리 아바시의 신작 <성스러운 거미>는 2000~2001년 자국에서 일어난 성매매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연쇄 살인이 발생한 곳은 이맘 레자의 성지가 있는, ‘순교자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다.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근본주의가 성행하는 도시에서 16명의 성매매 여성은 신성한 도시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살인마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경찰은 미온적인 태도로 수사에 임하며, 성직자는 종교의 위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대중은 거미 살인마를 정의의 수호자로 추앙한다. 오로지 테헤란에서 온 기자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만이 이 섬뜩한 연쇄 살인을 추적하고자 한다.
<성스러운 거미>는 연쇄 살인마의 정체를 쫓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사이드가 여성을 유인해 살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성스러운 거미>가 한 사람의 범죄자에 골몰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과 같은 장면이다. 물론, 영화의 전반부가 사이드의 연쇄 살인 행각과 그를 쫓는 라히미의 추적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라히미가 성매매 여성으로 위장하여 사이드를 만나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후, <성스러운 거미>는 더는 개인의 악행을 묘사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연쇄 살인마를 다루는 비슷한 작품들과 달리, 이 영화는 법정과 언론 그리고 대중의 반응을 상세하게 다룬다. 법정에서 사이드는 당당하게 알라의 말을 읊고,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군중은 법원 밖에서 그의 석방을 주장한다. 중형을 달라고 호소한 검사는 뒤에서 사이드의 탈출을 도우려 하고, 그의 가족은 자랑스럽게 아버지의 살인을 영예로운 업적으로 추앙한다. 잔혹하게 묘사한 살인 장면보다 라히미를 더 두렵게 만드는 것은 살인마를 비호하는 이란의 사회상이다. 진정 16명의 여성을 죽인 것은 누구였을까?
영화를 더 서늘하게 만드는 현실
무고한 여성들의 죽음을 야기한 사회에 대한 고발만큼이나 <성스러운 거미>를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도 서늘하다. 주인공 라히미 역을 맡은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이란 최대의 불법 촬영물 사건의 주인공으로 오인받은 그녀는 이란에서 추방당하여 프랑스에서 배우 생활을 이어갔다. 테헤란에서 근무할 당시 편집장의 위계로 인한 성폭력의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작품 속 라히미가 겹쳐 보인다. 게다가 에브라히미는 원래 <성스러운 거미>에 출연할 의사가 없었다. 영화의 캐스팅 담당자였던 그녀는 이란 정부의 박해로 이란 배우들이 라히미 역을 모두 거부하자, 별수 없이 그녀가 직접 영화에 출연했다. 덕분에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수상 직후 이란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 항의하며 오히려 영화에 참여한 이란인들을 상대로 협박한다. 영화 밖의 현실에서 펼쳐진 일련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성스러운 거미>의 이야기에 신빙성을 더하게 된 셈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연쇄 살인마 사이드는 실존 인물인 사이드 하네이와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그가 저지른 살인이 단순히 성전을 정화하고 종교적인 선을 행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영화 속 사이드는 성매매 여성을 제대로 만지고 싶어 하지도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그들을 불순한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사이드 하네이는 여성들을 무참히 살해하기 이전 피해자들을 여러 차례 강간했다. 재판장에서 알라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점은 유사하다. 하지만 영화 속 그의 발언이 종교에 사로잡힌 광신도의 설교였다면, 현실의 사이드 하네이는 자신의 사이코패스적인 행위에 대한 변명에 가깝다. 또한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제시하지 않은 영화와 달리 사이드 하네이는 구체적인 범행 동기가 있었다. 한 택시 기사가 자기 아내를 성매매 여성으로 착각했던 일을 기점으로 마슈하드 내면엔 성매매 여성을 모두 제거해야겠다는 위험한 발상이 싹텄다. 광신도의 모습처럼 보이는 영화와 달리, 현실의 사이드 하네이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22년의 시간을 두고
22년 전 사건을 소환한 <성스러운 거미>는 역설적으로 작금의 이란을 명징하게 그리고 있다. 2022년 9월 13일 테헤란에서 이란 도덕경찰은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히잡 착용을 문제 삼으며 그녀를 체포한다. 그녀는 히잡을 완전히 벗은 것도 아니고 그저 머리카락이 조금 보이게 착용했을 뿐이었다. 아미니는 구금된 지 3일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경찰과 법의학자들은 그녀의 사인을 질환으로 발표했으나, 그녀를 구치소로 연행하는 버스 안에서 경찰들이 그녀를 폭행해 중태에 빠지게 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녀의 죽음은 곧 이란의 전국적인 시위로 번지게 되었다. “여성, 삶, 자유”라는 시위 문구와 함께 히잡 반대 시위가 시작되었고, 더 나아가 이란의 민주화를 위한 장기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이란은 2016년 이후 꾸준히 정권 퇴진과 민주화를 위한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다)
알리 아바시가 그려낸 <성스러운 거미>의 시대로부터 2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2022년의 이란 정부는 오히려 더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여성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시민들이 이에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자국의 유명 감독 자파르 파나히를 비롯하여 국가대표 축구선수, 유명 배우, 요리사 등 정치와 무관한 인물까지 반체제 행위로 체포 및 구금, 심하면 처형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포 정치에 시민들은 끊임없이 항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철저한 피해자인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히잡을 불태우고, 거리에서 춤을 추며,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이란 보안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구조적으로 자행되는 살인과 폭력의 유구한 역사가 부디 이번 시위를 통해 뿌리째 뽑히길 기원한다. <성스러운 거미> 속 목숨을 잃은 여성들의 역사가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