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정한 몸과 큰 키에 깊게 눌러 쓴 중절모, 비가 오지 않아도 레인코트를 입은 채 입에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중년의 남자. 얼핏 보면 냉소적인 영국 남성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어딘가 어수룩하고 어설프며, 하는 일마다 서툰 모습이 가득하다. 파이프를 문 입 때문에 발음이 자꾸 새어나가, 같은 말도 알아듣기 어렵다. 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익살스러운 사람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윌로 (Monsieur Hulot). 프랑스의 감독 겸 배우 자크 타티(Jacques Tati)가 직접 연기한 자신의 페르소나다.
‘윌로’씨는 프랑스가 가장 사랑했던 코미디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중절모와 지팡이, 콧수염과 곱슬곱슬한 파마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대중문화에서 오마주되며, 버스터 키튼의 스턴트 액션과 슬랩스틱이 여전히 마블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자크 타티의 ‘윌로’씨는 따스한 코미디를 대표하는 일종의 대명사가 되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랑스의 애니메이션 실뱅 쇼페 감독의 <일루셔니스트>(2010)에 등장하는 주인공 ‘일루셔니스트’는 심지어 윌로의 외형을 본따 만든 인물이었다.
프랑스가 가장 사랑했던 코미디 감독, 자크 타티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3월 1일부터 3월 26일까지 서대문역과 광화문 사이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자크 타티 회고전 - 윌로와 친구들’이라는 특별전을 상영하고 있다. 자크 타티가 출연한 단편 2편과 직접 연출한 단편 2편, 장편 6편 등 그의 전작을 포함하여, 그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주고받은 감독들의 작품까지 총 27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소박하지만 정교하고, 엉뚱하지만 독창적인 그의 영화를 보기 전 자크 타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자크 타티의 페르소나 ‘윌로’
자크 타티는 이탈리아-러시아계 프랑스인으로 젊은 시절 럭비 선수로 활동했었다. 191cm라는 장신에 긴 팔과 다리라는 천부적인 신체 능력은 운동에 최적화된 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마임에 관심이 생겨 돌연 마임 연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마임과 코미디로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1930년대 초반 영화계에 입성하여 배우의 길을 걸었다. 1934년 샤를 바호아 감독의 단편 <짐승 같은 놈>(On Demande Une Brute)과 1936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단편 <왼쪽을 주의하라>에 출연하며 프랑스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때부터 자크 타티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자크 타티의 분신 ‘윌로’라는 캐릭터는 그의 영화 초기부터 함께하진 않았다. 타티가 공식적으로 윌로라는 캐릭터를 영화에 등장시킨 것은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윌로씨의 휴가>(1953)부터다. 영화는 노르망디 인근 휴양지에 순박하고 어리숙한 윌로씨가 등장하여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물론, 이후 영화에 등장하는 ‘레인코트’를 걸친 윌로는 아니지만, 파이프를 물고 매번 한 박자 늦게 행동하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윌로의 모습이다. 사실 자크 타티는 자신의 초기작에서도 윌로의 모태가 되는 인물을 그려냈다. 1947년 단편 <우체부 학교>를 기반으로 2년 뒤 살을 붙여 만든 첫 장편 <축제일>(1949)에 등장하는 어리숙한 프랑스인 우체부 ‘프랑수아’는 외양은 다르지만 윌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선의가 가득함에도 계속 사고만 치는 프랑수아가 최신 기술을 적용한 미국식 우체부들을 따라잡으려 노력하는 모습은 이후에 등장하는 윌로의 전형적인 성격과 유사했다. 그때부터 자크 타티의 페르소나 윌로는 평생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평단과 흥행의 반비례 곡선
자크 타티를 둘러싼 후대의 평가는 프랑스 코미디계의 거장이자 1940~70년대를 풍미하는 씨네아스트라는 점이 주를 이룬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는 2008년 발표한 ‘가장 아름다운 영화 100선’에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1967), <윌로씨의 휴가> 2편을 선정했다. 다작하는 감독은 아니었지만, 그의 영화는 발표할 때마다 평단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조나단 로젠바움과 프랑스 영화이론에 정신적 지주였던 앙드레 바쟁(카이데 뒤 시네마의 창간인이기도 하다)의 지지와 신뢰를 받은 자크 타티는 비평계에서 코미디를 경유하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거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평론가들의 지지와 총애에도 불구하고, 자크 타티의 영화는 큰 부침을 겪게 된다.
첫 장편 <축제일>과 두 번째 장편 <윌로씨의 휴가>, 그리고 첫 컬러 영화인 <나의 아저씨>(1958)까지 자크 타티는 세 영화 연속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소박한 프랑스의 풍경과 아이러니를 자아내는 코미디의 조합이 프랑스의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하지만 타티는 이후 9년간 신작을 발표하지 않았고, 그 기간 초대형 세트를 동원한 심미적 도시를 그려낸 <플레이타임> 작업에 몰두했다. <플레이타임>은 여전히 그의 페르소나 윌로씨가 등장했지만, 전작들처럼 프랑스의 목가적 풍경을 다루는 소박한 영화는 아니었다. 여전히 코미디와 슬랩스틱이 영화 전반을 감싸지만, 거대한 도시와 현대 문명에 불화하는 아날로그적인 윌로씨의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운 자크 타티의 신작은 보다 더 거대한 담론을 다루고자 했다.
타티의 영화치고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으며, 엄청난 세트 투자에 몰두했던 터라 <플레이타임>은 평단의 호평과 별개로 흥행에 완벽히 실패했다. 그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이후 투자를 받아 만든 <트래픽>(1971) 또한 흥행에 실패하며 더는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의 유작이 된 TV 영화 <퍼레이드>(1974)를 끝으로 타티의 영화에 투자를 시도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1983년 폐색전증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자크 타티는 영화를 만들길 원했다. <혼란>이라는 가제의 각본을 작업하던 자크 타티는 이 영화를 끝으로 윌로씨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려내고 싶어 했던 윌로의 죽음 어떤 모습이었을까?
프레임과 사운드의 마법사
흥행에 참패하며 외로운 말로를 보낸 그였지만, 자크 타티의 작품은 영화 미학을 몇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크 타티는 프랑스의 또 다른 거장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영화의 사운드를 가장 창의적으로 쓴 감독이었다. 동시에 그는 한 프레임 안에 모든 요소를 조형적으로 균등하게 분배하는 연출법을 사용하여, ‘프레임의 민주주의’를 일군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플레이타임>은 당대 프랑스 영화가 시도하지 않았던 65mm 필름으로 촬영하였는데, 이는 작금의 넓은 화각을 보여주는 IMAX 필름과 거의 유사한 방식이었다. 또한 모더니즘 건축 양식에 큰 영향을 받은 <플레이타임> 속 도시 세트는 마치 프랑스의 천재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양식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의 프레임은 원근법을 차용하면서도 모든 인물의 움직임을 균등하게 담아낸다. 통상적인 영화 문법에서 주인공은 화면의 중앙에 가장 큰 형태로 위치하여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반면에, 자크 타티는 주인공 ‘윌로’의 행위 너머로 여러 인물이 서로 다른 움직임을 가져간다. 가령, <플레이타임>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는 여러 칸의 집이 모여있다. 타티는 아파트 창 너머로 여러 세대의 움직임을 균형 잡히게 보여준다. 화면의 어느 요소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아도, 그 움직임이 흥미로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동시에 자크 타티는 ‘사운드’를 통해 코미디를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이었다. 타티의 영화는 무성영화를 연상하게 할 만큼 대사량이 적지만, 대사의 공백을 생활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 소리의 반복이 마치 찰리 채플린 시절의 무성 영화 코미디가 사용한 슬랩스틱의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의 영화에는 시각과 청각의 영민함이 가득 서려 있었다.
이런 자크 타티의 영화를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서대문에 위치한 서울 아트 시네마에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26일까지 이어질 특별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자세한 안내는 하단 링크를 방문하여 알 수 있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