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큰 화제를 모으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 제95회 아카데미 어워드가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양자경 주연, 다니엘 콴·다니엘 샤이너트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이하 <에에올>)가 감독상, 작품상 등 주요 부문에서 7관왕을 하며 기염을 토했다. 이번 아카데미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두 배우 본상이었다. 여우주연상에는 <에에올>의 양자경이 <TAR 타르>(2023)의 케이트 블란쳇을 누르고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남우주연상은 재기의 아이콘 <더 웨일>(2023)의 브렌든 프레이저가 3파전 양상의 격전지에서 수상에 성공했다. 그의 경쟁상대는 <앨비스>(2022)에서 앨비스 프레슬리에 완벽하게 빙의된 오스틴 버틀러와 지금 이 기사에서 다룰 콜린 파렐이었다.
오랜 기간 부침을 겪다 이번 <더 웨일>에서 272kg의 거구를 연기하며 재기에 성공한 브렌든 프레이저. 아역부터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 올렸으며 앨비스 프레슬리라는 슈퍼스타를 완벽하게 본뜬 오스틴 버틀러. 두 배우의 연기는 이른바 ‘차력쇼’에 가까운 연기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특수 분장과 극단적인 감정을 지녀야 하는 캐릭터를 연기했기에 두 배우의 연기는 ‘힘’에 방점이 찍힌다. 지난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라미 말렉의 <보헤미안 랩소디>(2018) 같은 연기가 이런 종류에 속한다. 강도가 높은 만큼, 이런 종류의 연기는 객석에 큰 자극을 쉽게 줄 수 있다.
그에 비해 콜린 파렐이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연기한 ‘파우릭’은 ‘힘’으로 연기하는 부류의 캐릭터가 아니다. 파우릭은 아일랜드의 외진 섬에 사는, 바보 천치 같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촌뜨기일 뿐이다. 외형적 특징이 도드라지거나, 유명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감정의 극단을 달려 끝내 폭발하지도 않는다. 힘의 연기가 아닌 만큼 세 후보 중 관객에게 가장 '덜'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콜린 파렐이 연기한 파우릭은 세 후보 중 가장 세밀하고 정교함을 요구한다.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충분히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와야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친구에게 의절을 당했다는 이유로 하루종일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캐릭터 자체가 지닌 매력이 아닌 배우의 디테일을 통해 관객을 설득해야만 성립되는 영화다. 하지만 콜린 파렐은 초정밀 반도체같이 난이도가 매우 어려운 연기를 끝내 성공시킨다.
콜린 파렐은 사실 믿고 보는 배우다. 검증된 연기력과 철저한 분석, 그리고 사람 자체가 지닌 다양한 매력이 있다. 당연히 그의 이름이 포스터 상단에 올라가 있는 영화는 적어도 연기로 실망할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마치 어떤 상황에 등판해도 무실점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최강 마무리 같은 콜린 파렐이지만, 놀랍게도 이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것이 생애 첫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였다.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이니셰린의 밴시>)과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킬러들의 도시>)의 영예를 얻은 적은 있어도 한 번도 그는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의 커리어가 독립/예술 영화와 대규모 영화를 넘나들기 때문에 유달리 큰 영화제에 지명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연기력과 명성을 고려했을 때 한 번도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아쉽게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작품마다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는 콜린 파렐의 소름 돋는 배역들을 지금부터 살펴보자.
<폰 부스> - 스투 세퍼드
콜린 파렐의 이름을 할리우드에 널리 알린 첫 주연 작품 <폰 부스>(2002). 물론 같은 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의 상대역인 법무부 검찰관 대니 위트워를 연기하며 큰 호평을 받았지만, 비로소 <폰 부스>에서 그의 연기가 만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목처럼 공중전화 부스에서 영화의 거의 모든 상황을 할애하는 <폰 부스>는 잘나가는 미디어 에이전트 스투 세퍼드가 우연히 받은 한 통의 전화로 수화기 너머 미지의 상대로부터 협박 받는 스릴러 영화다. 저 멀리서 저격용 총으로 그를 노리는 괴한은 스투의 목숨을 담보로 그의 삶을 서서히 파멸시키려 한다. 스투와의 통화를 방해하며 재촉한 전화 부스 밖의 포주를 쏘아 죽이거나,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불륜 사실을 밝히게 하는 등 몰아세우는 상대 때문에 스투는 철저하게 자신의 악행을 모두 밝혀야 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정체도 모르는 괴한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1시간 넘게 받는 상황은 공포 이상의 연기가 필요하다. 특히 여러 부정한 일을 벌인 존재라면, 공포 이상의 억울함, 분노, 자신의 악행에 대한 고찰, 삶의 파멸을 목도하는 절망 등이 좁디좁은 공간에서 교차할 것이다. 원래 스투 역에 캐스팅 예정되었던 짐 캐리도 콜린 파렐처럼 디테일을 연기하는 배우다. (물론 익살과 과장으로 가득한 그의 전성기 시절 코미디 연기만을 생각한다면, 그도 힘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착각하겠지만 짐 캐리의 정극 연기는 확실히 정교하다) 콜린 파렐의 젊은 패기와 세밀함은 이런 한정적인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단순히 힘만으로 감정의 극단을 연기한다면, <폰 부스>가 지닌 매력은 크게 반감되었을 것이다. 히치콕의 서스펜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폰 부스>의 연출에 콜린 파렐은 가장 적합한 연기를 했다.
<킬러들의 도시> - 레이
콜린 파렐은 마틴 맥도나의 페르소나다. <킬러들의 도시>(2009)로부터 <이니셰린의 밴시>까지 총 4편의 장편 연출작 중 콜린 파렐이 등장하지 않은 영화는 <쓰리 빌보드>(2017) 단 한 편뿐이다. <이니셰린의 밴시>가 콜린 파렐에게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선사했다면, 마틴 맥도나의 첫 장편 <킬러들의 도시>는 그에게 골든 글로브를 가져다주었다. 대주교를 암살하고 영국으로부터 벨기에의 브뤼헤로 도망친 킬러 레이와 켄(브렌단 글리슨)은 2주 간의 휴가를 보낸다. 하지만 보스는 켄에게만 레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콜린 파렐과 브랜단 글리슨의 '혐관' 서사는 사실 <킬러들의 도시>가 원류인 것이다. (여담으로 ‘자살하면 죽여버리겠어’라는 밈의 출처 또한 이 영화의 스틸컷이다)
동상이몽의 블랙코미디. 킬러라는 소재를 사용했지만, 죄책감이라는 동기가 더 크게 작동해야 하는 기이한 영화 <킬러들의 도시>는 그야말로 연기의 격투장 같다. 물론 종목으로 따지면 힘을 주로 사용하는 격투기보다, 스텝과 타이밍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펜싱에 가깝다. 콜린 파렐은 죽임 당할 위기에 처한 킬러 레이를 연기했다. 마틴 맥도나와 함께하는 콜린 파렐을 상징하는 부위가 하나 있는데, 바로 눈썹이다. 유달리 마틴 맥도나의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가혹하고 난데없는 일이 일어나 억울해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그에 맞춰서 여덟 팔 (八)자 눈썹으로 내내 죽상을 하고 돌아다니는 그의 얼굴은 인상 깊다.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기 전 <킬러들의 도시>는 파렐의 매력에 빠지는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킬링 디어> - 스티븐
콜린 파렐을 스타덤으로 올린 <폰 부스>가 물리적인 감금에서 나오는 여러 감정을 분출했다면,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킬링 디어>(2017)의 스티븐은 상황에서 오는 폐쇄성을 겪는다. 성공한 심장 전문의인 스티븐은 어느 날 미지의 소년 마틴(배리 케오간)을 만나는데, 그때부터 스티븐의 안정적인 가정은 기이한 일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란티모스의 영화 세계가 늘 폐쇄적이었지만, <킬링 디어>는 그 폐쇄성의 가장 정점에 달하는 영화다. 초자연적인 신의 징벌이 스티븐이라는 한 남자를 지배할 때, 그의 가족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다루는 일종의 우화 혹은 신화에 가깝다.
<폰 부스>의 스투가 젊은 패기로 절망을 연기했다면, 15년이 지나 완숙한 연기자가 된 콜린 파렐은 덤덤하게 광기를 연기한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이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지속될수록 악의 면모가 드러난다. 공허하지만 불안한 눈빛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고압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하는지에 집중한다면, 이렇게 서늘한 영화가 없다. 어쩌면 콜린 파렐은 상황에 적합한 배우일지도 모른다. 주체적으로 서사를 이끌고 나가기보다는, 영화가 인물에게 내던진 상황에 대응하는 존재에서 빛을 발한다. 전자가 힘을 연기한다면, 후자는 정교해야 한다.
<애프터 양> - 제이크
앞서 소개한 세 영화에 비해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2022) 속 제이크는 가장 정적이 인물일 것이다. 최근 애플 TV의 최대 흥행작 <파친코>의 연출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코고나다의 정수는 사실 <애프터 양>이다. <애프터 양>은 <폰 부스>처럼 서스펜스를 자극하지도 않으며, <킬러들의 도시>처럼 블랙 코미디적이지도 않고, <킬링 디어>처럼 이미지의 자극과 고압적인 상황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안드로이드 인간 ‘양’(저스틴 H. 민)이 어느 날 고장나면서, 기억 장치를 수리하려다 ‘양’의 기억을 발견하는 여정을 기록한 영화다.
콜린 파렐의 정교함은 <애프터 양>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덤덤히 안드로이드 ‘양’의 기억을 같이 더듬으면서, 고요함 속 깊이를 만들어낸다. 타인의 기억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추론해보는 일. 마치 영화가 이미지를 제시하면, 그로부터 감정을 겪어내는 관객처럼 콜린 파렐은 덤덤하게 안드로이드 ‘양’의 세상을 되짚어보려 한다. 이런 연기는 반드시 절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 아닌 타인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세상을 탐구하기 위해선 감정의 문은 열되, 그것이 절대 범람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콜린 파렐의 제이크는 그가 탐구한 ‘양’의 기억장치처럼, 영화의 감정과 관객 사이의 또 다른 기억장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애프터 양>을 보고 무언가 자그마한 동요가 있었다면, ‘양’의 세계와 관객의 세계 사이를 이어준 제이크의 고요가 아니었을까?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