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는 아카데미와 배우조합상(SAG), 전미의 비평가상을 비롯, 세계 전역 굴지의 영화상들을 모두 휩쓸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는 연출, 각본 부문뿐만 아니라 연기 부문의 모든 섹션(여 주연/남녀 조연)을 석권함으로써 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작품으로 연기상을 받은 배우들(양자경, 키 호이 콴, 제이미 리 커티스) 모두 아카데미와 같은 메이저 시상식 수상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카데미에서 아시아 배우로는 95년 만에 처음으로 양자경과 키 호이 콴이 각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오랜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적 전통과 다양성 존중의 시작을 동시에 역설하기도 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제이미 리 커티스

양자경과 키 호이 콴의 수상이 그들의 커리어, 그리고 사회/문화적 맥락에서의 큰 화제성을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64세의 제이미 리 커티스의 첫 아카데미 수상(여우조연상)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은 다소 부당하게 느껴진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1978년 존 카펜터의 공포 영화 <할로윈>으로 데뷔한 이래 40여 년간 <할로윈> 시리즈뿐만이 아니라 여러 공포영화의 ‘final girl’(공포 장르의 관습 중 하나인 끝까지 살아남는 소녀를 말한다)로 출연하며 “호러의 여왕”(Queen of Horror)으로 활약했다. 80년대에 성행하기 시작해서 2000년대까지 십대들의 전유물로 사랑받았던 슬래셔 장르는 제이미 리 커티스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제이미 리 커티스 (사진 출처=Getty)

호러 퀸의 서막, <할로윈>(1978)

커티스가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것, 그리고 현재까지 꾸준히 그 선택을 지켜온 것에는 그녀의 엄청난 부모, 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의 영향이 지대하다. 첫째로, 연기 경력이 없던 그녀에게 (40여 년 동안 지속될 시리즈의 서막인) <할로윈>의 주인공 ‘로리 스트로드’ 역할이 주어진 이유는 그녀의 엄마이자 황금기 할리우드의 스타, 자넷 리 때문이었다. 영화의 프로듀서, 데브라 힐은 자넷 리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보여준 연기로 공포의 아이콘으로 알려졌던 것을 떠올려 커티스를 특별히 캐스팅했다.

궁극적으로 데브라 힐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초저예산으로 제작되었던 <할로윈>이 엄청난 흥행과 컬트 팬덤을 얻게 되면서 제이미 리 커티스는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의 거의 모든 슬래셔 영화의 주인공으로 동원되며 ‘비명 여왕’(scream queen)이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이런 영화들이 커티스의 필모그래피를 빼곡히 채워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들 중 그 어떤 영화도 그녀의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인지하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데뷔 이후로 5년간 수많은 공포영화들을 전전하던 그녀에게 영화의 제목과 같은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바로 존 랜디스 감독의 <대역전>(Trading Places)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1983년에 개봉된 이 작품에서 커티스는 거리의 여자이자 주인공들의 조력자, ‘오필리아’ 역을 맡았다. <대역전>의 라임라이트는 주연을 맡았던 에디 머피와 댄 애크로이드에게 집중되었겠지만 영화는 커티스가 호러 퀸 이미지를 버리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던 <대역전>은 커티스에게 첫 연기상인 BAFTA(영국 아카데미) 조연상을 안겨주었다.

<대역전>에서 오필리아 역으로 '대역전'한 제이미 리 커티스, 사진 출처: IMDB

<대역전> 이후 커티스는 다양한 작품에서 ‘비명 여왕’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서 활약하게 된다. 특히 1988년에 개봉된 코미디,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에서 그녀는 아버지, 토니 커티스를 능가하는 코미디 배우로 변신한다. 생애 첫 코미디 연기로 그녀는 BAFTA와 골든 글로브를 포함한 다양한 영화상의 후보로 지목되며 할리우드 산업 내에서 주연급 여배우로 부상한다. 그 다음 해에 커티스는 캐스린 비글로우의 세 번째 작품 <블루 스틸>의 주인공을 맡으며 액션 장르에 도전한다. 이 작품에서 커티스는 근무 첫날, 강도를 사살하게 되어 음모에 빠지는 경찰, 메건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후로 <트루 라이즈>(제임스 카메론, 1994)에서 <프리키 프라이데이>(마크 워터스, 2004), <유, 어게인>을 거쳐 최근작, <나이브스 아웃>(라이언 존슨, 2019)에 이르기까지 커티스는 다양한 장르 영화에서 빛나는 배역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이제껏 단 한 번의 침체기로 거치지 않고 할리우드의 최고 배우로 등극했다.


배우의 성공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티스가 정복하지 못한 땅이 있다면, 아카데미였다. 그녀의 연기 커리어 4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아카데미의 연기 부문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95회 아카데미에서 커티스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은 그러한 면에서 역사적이고도 상징적인 사건이다. (커티스가 호러 퀸의 신화를 이끌기도 전에) <싸이코>로 스릴러 장르의 아이콘이 되었던 자넷 리조차 1960년 아카데미 조연상 수상은 실패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후로도 보수적인 아카데미는 호러나 장르 영화의 후보보다는 캐릭터에 집중하는 전기 영화나 휴먼 드라마의 캐릭터에 주요 연기상을 수여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시 말해 커티스의 이번 수상은 그녀가 고군분투했던 커리어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엄마, 자넷 리도 이뤄내지 못한 장르 시네마의 승리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능가하는 명배우가 된 제이미 리 커티스: (왼쪽부터) 토니 커티스, 자넷 리, 제이미 리 커티스 (사진 출처=Ron Galella)

두 번째로 커티스는 스타의 자녀 출신 배우로서 가장 ‘성실히’ 커리어를 다져온 “네포 차일드 Nepo Child (Nepotism 족벌주의, 특권층 아이의 줄임말)”로서 진정한 승자다. 아카데미의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 와 같은 대배우의 딸로서) 자신이 할리우드에서 가장 오리지널한 ‘네포 차일드’였던 것을 인정하며 그녀의 부모가 배우로서 얼마나 큰 영감이 되었는지 고백했다. 그녀의 언급처럼, 할리우드에 셀럽을 부모로 가진 수많은 배우가 있지만 이들 중 누구도 제이미 리 커티스처럼 아주 조금씩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자리를 잡아왔던 인물은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진 특권이라면 스타 배우 출신의 부모가 아니라, 그들의 연기를 보고 다지고 배워왔던 커티스의 겸손이자 그녀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존중이다. (그녀가 수상소감에서 영예를 돌렸듯이)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그녀의 오스카 수상은 수십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존재하고 있지만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아카데미를 포함해 그 어떤 시상식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뛰어난 배우들, 그들 모두의 수상이기도 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