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국 BBC에서 가상으로 복원한 예수 얼굴을 본 적 있다. 2천 년 동안의 자료와 물적 증거들을 토대로 복원한 얼굴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예수 얼굴과 판이했다. 두툼하고 우락부락한 인상이었다. 튀르키예나 시리아 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부리부리하고 텁수룩한 인상의 사내였다. (최근 그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고 그 얼굴이 떠올랐던 건 괴이한 연상이었을까?) 특별하지도 위대해 보이지도 않는 범부의 얼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툼하고 우락부락한 예수의 얼굴?
흔히 알고 있는 예수의 얼굴은 갸름한 말상에 머리를 기른 귀공자 타입에 가깝다. 비쩍 마른 몸과 영험해 보이는 눈빛은 그가 겪은 수난과 고뇌를 오랫동안 표상해 왔다. 우아하고 신비로우며 범접할 수 없는 귀기마저 씐 듯한 얼굴. 그 얼굴이 예수의 실체에 가깝다는 건 이제 와 돌이킬 수 없는 선입견일 것이다.
하지만 복원된 얼굴을 보고 뭔가 거대한 신화의 밑동이 해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숱한 신화와 전설과 기적의 배면을 살짝 들여다본 기분이랄까. 모종의 신화로 각색된 누군가의 삶이 얼마나 많은 수사와 장식으로 포장되어 오랫동안 유전되어 왔는지, 새삼스러운 각성이 들었다. 예수는 목수라 알려졌지만 당시 가나안 지방의 지질학적 정황상 석공이었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물리적이고도 과학적인 검증은 기존의 신비감이나 초인적인 능력을 깎아내리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2천 년 넘도록 서구 문명의 가치와 권위를 담지하고 있는 예수의 경우, 그가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근본적인 거부감을 갖는 신자도 있다. 그들에게 예수는 절대신의 표상이자 우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들 자신이 세속적으로 취하고 있는 모든 권력과 신념의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바로 거기에 맞서 <마태복음>(1964)을 연출했다.
파시즘과 종교적 억압에의 반항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 그리고 동성애자였던 파졸리니가 예수를 영화로 재현한다고 했을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극우 파시즘과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대립이 첨예한 시절이었다. 파졸리니는 그 어느 쪽에서도 배척당하는 이단아였다. 극렬 공산주의자이자 동성애자라는 혐의가 늘 그의 이름 뒤에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신념과 내밀한 취향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었다. 밤마다 로마의 으슥한 뒷골목을 어슬렁대며 섹스 파트너를 찾아다녔던 이력이 결국 그의 도덕적 맹점이 되고 끔찍한 죽음의 빌미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스스로 자신이 만든 영화를 삶 자체로 살아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예수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파졸리니만의 예수가 그렇게 탄생했다.
파졸리니는 원래 시인이었다. 고향 프리울리의 방언으로 지은 젊은 시절 시들은 아직도 이탈리아 문학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군인이자 억압적인 파시스트였던 아버지와의 끝없는 싸움이 그의 생 전반을 지배했다. 반면에 어머니 수잔나 파졸리니와의 애정은 지고지순했다(<마태복음>에서 어머니가 마리아 역할로 직접 출연했다). 파리니에게 파시즘은 곧 아버지의 권위 및 폭력을 의미했다. 그건 곧 이탈리아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억압과 도덕적 위선의 가면을 의미했다. 파졸리니의 삶은 그 폭력과 맞서 싸우는 투쟁의 전말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마태복음>은 복음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극적으로 재구성된 대사나 상황 따위 없다. 엄밀히 말해 배우들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예수 생전의 복장과 의례 및 공간 등을 영화적으로 재현했으나 모든 대사는 다른 성우들의 음성으로 더빙됐고, 전문 배우는 거의 쓰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부 시골을 가나안 삼아 배우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행동과 말들을 다큐멘터리 찍듯 그대로 옮긴다. 모든 대사가 복음서에 쓰인 그대로이며 모든 상황이 복음서에 나온 장면들을 실사화했다. 예수 역할은 스페인 출신의 경제학도 엔리케 이라조퀴라는 대학생이 맡았다. 굉장히 선이 곱고 수려한 얼굴이지만, 더빙된 성우 목소리로 전달되는 설법들은 매우 강력하고 새된 느낌이다. 잦은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형형하다. 선 굵은 선동가로서의 예수 이미지를 고스란히 표출한다.
예수의 후광은 민중의 그림자였다
주로 자연광을 사용한 영상은 흑백의 음영을 때론 음울하게, 때론 찬란하게 드러낸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화면은 언뜻 고요한 듯하지만,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기묘한 엇박자 느낌으로 조절된 역동성이 고조된다. 모든 인물은 개인의 개성이나 독자성이 지워진 채 모종의 집단성 안에서 기계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제어되어 있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당시 대학생이었다)이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출연하나 베드로인지 도마인지 유다인지 구분 안 갈 정도로 모든 인물의 특징이 극도로 중화되어 있다. 그 안에서 예수는 독자적인 개인인 동시에 어떤 궁극적 전체의 대표 이미지가 된다. 후광은 하늘의 빛이라기보다 많은 민중들에 둘러싸인 공통선과 현실적 영욕의 음영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강조된다. 이른바 사람들 속에 사람의 고통과 능욕으로 스스로 빛나는 현실 속의 예수가 탄생하는 셈이다.
반복하건대 이 영화에서 극적으로 꾸며진 내용은 전혀 없다. 예수에 대한 인간적 감정이나 신앙이나 고해의 요소 또한 일절 없다. 오로지 복음서에 쓰인 내용 그대로를 영상으로 옮겼을 뿐이다. 성경 구절을 해석하거나 판단하거나 신봉하는 흔적 또한 찾을 수 없다. 무신론자 파졸리니는 신이라는 이름이 세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왜곡되거나 과장되면서 민중을 현혹하는지, 혹은 신이라는 우상으로 인간의 현실적 자율성과 내적 분열이 통제되는지 고발하려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예수를 추앙하지도 폄훼하지도 않았다. 다만, 대지를 두 발로 밟고 버티며 스스로의 삶을 일구는 사람들의 진정한 얼굴을 예수를 빗대 드러내고자 했을 뿐이다.
20여 년 후, 마틴 스코세이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을 토대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을 연출했다. 전 세계 기독교 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그 작품은 인간 예수의 고뇌와 욕망을 실존적 차원에서 심도 있게 파헤쳤다. 예수도 결국 사람이었으며, 사람으로서의 한계와 조건을 고스란히 껴안은 채 메시아로 거듭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고찰했다는 점에서 <마태복음>의 뒤를 잇는 문제작이었다. 하지만 파졸리니의 작품은 예수라는 개인보다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회적 원칙과 법규들에 대한 문제 제기에 가까웠다.
황량하고 건조하나 끈적끈적한 진짜 얼굴
예수가 신의 아들이었는지, 어느 이름 모를 빈민의 자손이었는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가 복음서 중에서도 ‘마태복음’을 차용한 것도 그 이유다. 예수의 탄생과 그 족보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되는 ‘마태복음’은 신약과 구약을 잇는 연결점(신약의 첫 장이다)이자 예수라는 존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일종의 계보서이다. 파졸리니는 2천 년 동안 인류의 영도자로 추앙받아온 예수를 지상으로 끌어내려 새로운 십자가, 요컨대 삶의 모든 열악하고 비루한 기본 조건들 자체가 이미 누군가에겐 날 때부터 짊어지고 나온 십자가라는 사실을 선언하듯,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건 파졸리니 개인의 십자가인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 모든 이에게 부여된 오욕과 수난의 기본 전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삶 자체가 이미 모든 이의 어깨를 짓누르는 십자가인 것이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고 황량하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차 없이 전개된다. 모든 게 중화되었기에 오히려 적나라하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끈적끈적하다. 뭔가 못 볼 걸 봐버린 듯한 황망함마저 느껴진다. 향후 파리니의 유작이 되는 <살로 소돔의 120일>(1975)의 무지막지한 노골성이 이미 이때부터 잠재되어 있었다는 느낌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진실이 끔찍할 정도로 잔혹하게 발가벗은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결국 최선의 진심이 최고의 도발로 이어진다는 진리의 한 양상을 현시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의 모공을 봤다고 하면 어떨까. 그 모공 속에 숨은 성과 속의 찬란할 이중성을 기꺼워할 뿐, 밀치지도 맹목에 빠지지도 말지어다.
강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