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영어 공부 하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영문 타이틀은 'BEEF'다. BEEF, 소고기만 뜻하는 게 아니다. '불평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속어로는 '싸움'을 뜻한다. 드라마 시작 4분 만에 이 타이틀은 완벽히 납득되는데, 줄거리는 이렇다.

돈도 없고, 미래도 안 보이는 재미교포 핸디맨 대니(스티븐 연). 친척에게 사기를 당한 부모님은 한국으로 귀국해 힘든 삶을 살고 있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 폴(영 마지노)은 게임이나 코인 등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그는 지금 엉망이다. 그런데, 마침, 고맙게도 쇼핑몰 주차장에서 흰색 벤츠 SUV가 시비를 걸어오는 게 아닌가. 욕설을 날린 채 내달리는 그 차를 쫓아 대니는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제발, 흰색 차를 따라가지 말아 줘..

벤츠를 모는 운전자에게도 사정은 있다.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엘리 웡)는 성장환경은 가난했어도 부유한 일본계 예술가 남편과 결혼해 어엿한 회사를 일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자괴감만 드는 우울한 날이 계속된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즈음 할인 매장 주차장에서 웬 낡은 트럭이 앞에서 알짱댄다. 손가락 욕을 날리고 통쾌하게 따돌렸다. 아니 따돌린 줄 알았다.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분노의 질주는 엄청난 여파를 불러오고, 두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벌한 복수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과 인간관계를 갉아먹는 싸움을 시작한다.

에이미 역의 엘리 웡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인간들의 막장 싸움극 같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것은 분노, 공허, 그리고 삶의 의미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다. 각 에피소드 제목들에 담긴 의미도 심상찮은데, <성난 사람들>의 감독 이성진은 영향력 있는 텍스트와 영화를 참조해 각 에피소드에 맞는 타이틀을 만들었다. 오늘은 <성난 사람들> 회차별 제목과 연관 텍스트를 정리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니, 직접 드라마를 보고 의미를 곱씹자. 참고로, 인용문의 번역본이 없는 경우 필자가 번역했고, 이 경우 영어와 한국어를 병기했다.


1화. 새들은 노래하는 게 아니야, 고통에 울부짖는 거지

“The trees are in misery, and the birds are in misery. I don’t think they sing. They just screech in pain… Taking a close look at what’s around us, there is some sort of harmony: It’s the harmony of overwhelming and collective murder.” — Werner Herzog

나무들도 비참한 상태고, 새들도 비참한 상태입니다. 새들은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을 뿐입니다..... 이곳(정글)을 자세히 둘러보면 일종의 조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압도적이고 집단적인 살해의 조화입니다.

베르너 헤어조크

1화의 제목은 아마존 정글에 대한 무모하고도 광기에 찬 로케이션을 감행했던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의 <피츠카랄도>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버든 오브 드림스>(Burden of Dreams)에서 영감을 받았다.

에이미와 대니는 나무나 새들처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에이미는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하고, 부부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며, 딸을 끔찍이 사랑한다. 대니 또한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키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언제라도,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돼있다. 하지만 두 인물의 내면에 자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뒤틀린 자아는 우연히 촉발된 추격전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각 에피소드에 오프닝에 사용된 그림은 대니의 사촌형 '아이작' 역의 데이빗 최가 그렸다.


2화. 살아있다는 황홀함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만,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조셉 캠벨

조셉 캠벨은 그의 유명한 1988년 TV 인터뷰에서 “'살아있음의 황홀을 느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라 묻는 빌 모이어스의 질문에 위와 같이 답한다. 에이미와 대니는 복수에 점점 더 집착할수록 그들 정신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파고들고 숨겨진 충동과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 파괴적인 복수를 감행하며,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황홀감을 느끼는 듯하다. 가족의 압박, 자본주의, 인종차별, 공허함을 향하던 애매한 분노는 실재하는 눈앞의 적으로 옮겨가고 그들을 깨어나게 한다.


에이미와 그의 남편 조지

3화. 내 속엔 울음이 산다

내 속엔 울음이 살고 있다. 밤이면 그건 날개를 파닥이며 나온다. 그 억센 발톱으로 사랑할 대상을 찾으며

실비아 플라스의 時 '느릅나무' 중

시 「느릅나무」에서 실비아 플라스는 밤이면 사랑할 대상을 찾으며 울부짖는 그녀 내면의 어두운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이미는 자신의 회사를 매각해 돈을 벌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자신 안의 어두운 부분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분노한다. 교회에 나가 찬양부를 이끌고, 건전한 놀이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부모님에게 새 집을 선물한 뒤에도 대니 내면의 공허함은 그대로다. 많은 것을 이룬 뒤에도 둘의 내면엔 여전히 '울음이 살고 있다'.


대니 역의 스티븐 연

4화. 동시에 얻을 수 없을 뿐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단지 모든 것을 한 번에 가질 수 없을 뿐이다.

베티 프리단

어느 컨퍼런스에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활동가인 베티 프리단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여성들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나요?' 그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한 번에 가질 수는 없다고. 회사의 앞날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출장을 떠난 에이미는 성공한 사업가로 청중 앞에 선다. 어렵게 사업을 일군 경험을 말하며 에이미는 '누가 뭐라 해도 여러분은 다 가질 수 있다'라고 베티 프리단이 그랬던 것처럼 청중을 격려한다. 세속의 기준에서 에이미는 이상적인 가족, 그림 같은 집, 성공적인 경력까지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이후 드라마의 전개는 결혼, 부모 노릇, 커리어, 개인적 성취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모든 걸 한꺼번에 가질 순 없는 법이다.


나오미 역의 애슐리 박

5화. 이토록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존재

우리는 비밀이 매우 많은 사람들이야. 그 내적인 깊이가 가장 놀라운 점인데, 우리의 이성보다 더 놀라운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우리는 그냥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주위를 살필 수는 없어. 우리 마음에 대하여 우리가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다 가짜 지식이야. 우리는 모두 충격적일 만큼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지.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 '바다여, 바다여' 中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 「바다여, 바다여」에서 영감을 받은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성난 사람들>의 주인공들이 감추려고 하는 내면의 비밀들을 보여준다. 에이미는 대니의 동생 폴과 은밀한 시간을 가지고 그의 남편 조지(조셉 리)는 특별한 친구를 사귄다. 에이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던 나오미(애슐리 박)는 불현듯 옷 보관 커버에 자신의 몸을 눕히는데, 커버 지퍼를 닫는 모습이 마치 관뚜껑을 덮는 것 같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비대해진 자아를 끌어 안은 채, 진짜 모습과 속셈은 숨기며 외롭게 살아간다.


<성난 사람들> 6화~10화 제목에 얽힌 의미는 아래 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화기획자 하치